▲김금수 전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금수는 조직 혁신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다들 자리 욕심이 강해서'라고 잘라 말한다. 자리 욕심이란 말은 정말 노동계가 그에게 되묻고 싶은 말이다. 민주노총 지도위원에서 하루아침에 정권의 장관급 노사정위원장으로, 또 KBS 이사장으로 노무현 정권에서 노동계 인사 중 최고 자리까지 지낸 분이 노동운동 진영에 대고 자리욕심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다.
내가 알기로 노사정위원장이든 KBS 이사장이든 그가 노동계와 의논하고 그 결과 파견된 자리가 아니다. 개인적인 제의를 받고 개인적으로 떠났다. 또한 나는 그가 그 자리에 있을 때 보인 행보가 친노동자적이었다고 보지 않으며, 이에 대한 비판 또한 많이 제기되었다.
특히 KBS 이사장을 물러나는 과정에서 그는 이명박의 언론장악에 맞선 아주 중요한 싸움을 회피했다. 이런 모습은 노동운동을 대표해서 전략적인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들어갔다고 생각한 많은 노동자들을 실망시켰다.
나는 정권에 자리를 찾아 들어간 사람치고 자리 욕심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자리 욕심이 꼭 나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잘해보고 싶어 갔을 수도 있고, 또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욕망을 무조건 부정해서도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운동가라면 개인적인 욕망과 운동의 대의를 적당한 선에서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까닭에 최근 몇 년 동안 그가 일관되게 살아온 모습이 민주노총의 위기를 타개할 길을 제시해 줄 인물로 과연 적합한지 한 번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어른은 늘 어른이니까, 지당한 말씀만 하는 공자님 대하듯 특정한 사람들을 대하는 관성은 이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어찌됐건 이런저런 인연을 맺은 분들에게 날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 또한 마음 아픈 일이나, 아비가 만든 연장으로 아비가 지은 집을 부수는 심정으로 나 또한 편치 않은 이야기를 썼다.
이수호는 직선제에 대해 '너무 형식에 얽매여 무조건 직선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렵지만 합의해서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다 인터뷰 뒤에는 위기 극복의 방법으로 '민주노총의 지도력을 세우기 위해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했다면 지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직선제는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이다.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했다면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떤 결정을 말하는 것인가. 민주노총에서 직선제는 '너무 형식에 얽매였다'고 표현할 만큼 형식적으로나마 추진된 적이 없다. 그래서 계속 '준비가 덜 되었다, 시기상조다'라는 말만 되풀이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떤 결정은 집행하고, 어떤 결정은 다시 합의해서 바꾼다고 하면 과연 민주노총의 지도력은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하부영은 '외국은 내셔널센터와 단위노조의 역할을 엄밀히 구분한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그 고유의 역할에 집중하고 산별은 산별대로 가는 것이다. 단위노조 운영 방식으로 내셔널센터에까지 고스란히 가져오다 보니 위원장 직선제가 나온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직선제가 가능한가에 대해 나 역시 자신이 없다. 산별노조 위원장들도 마찬가지다. 민주노총의 문제가 과연 직선제를 안 해서 생긴 것이냐는 회의감도 있다'고 말한다. 그가 자신이 없는 건 이해하겠으나 어떤 산별위원장들이 또 그런 말을 했는지 묻고 싶다. 정확하지 않은 산별노조 위원장들의 의견을 자신의 의견에 덧붙이는 이런 방식은 좋지 않다. 하부영이 산별노조 위원장들을 모두 대변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어쨌든 하부영의 인터뷰를 보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외국의 사례를 마치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유럽이 어떻고, 외국이 어떻다고 해서 '우리가 어떡할 수 없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만일 어느 나라엔가 시행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럼 직선제를 할 것인가? 독일식, 스웨덴식 등 많은 사례들 가운데 우리 현실에 가장 맞는 산별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지금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 노동운동은 우리 상황에 맞게 우리가 개척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과정에서 때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의 경험을 자산으로 삼으면 된다.
또한 민주노총의 문제가 과연 직선제를 안 해서 생긴 문제냐는 대목은 본말이 전도된 말이다. 간선제의 폐해와 갈등 때문에 직선제라는 대안이 나온 것이지, 직선제를 안 해서 현재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직선제를 처음 공약으로 내세운 당사자다. 이미 대의원 줄 세우기로 현장의 뜻과는 점점 멀어지는 간선제의 폐해를 보면서 문제의식을 느꼈고, 그래서 당장은 안 된다는 현실 논리들을 받아들여 대의원 확대를 했다. 차차 직선제를 위해 노력한다는 결정을 조직적으로 한 것이다.
직선제는 이처럼 간선제 문제에 대한 대안의 하나로 제기된 것이며 그 고민은 12년 전에 이미 시작됐다. 그래서 지금 '직선제를 안 해서 생긴 것이냐'라고 묻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굳이 그 물음에 대답한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문제의 상당 부분이 정파의 역기능을 가장 활용하기 쉬운 간선제라는 선거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답하겠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문제는 직선제를 안 해서가 아니라 간선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병호다. 단병호는 지금까지 인터뷰했던 어떤 분들보다 가장 강력한 어조로 직선제를 반대하고 있다. 그동안 직선제가 추진되어 온 과정을 보면, 이른바 좌파에서 제기했고 우파는 세가 있기 때문에 간선제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결국 여러 상황에 떠밀려 억지로 하게 된 모양새였다.
그런데 우파가 아닌 좌파로 분류되는 단병호가 강한 어조로 직선제를 반대하는 것은 좀 뜻밖이다. 단병호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주최한 노동포럼에서 직선제에 대한 강한 반대를 표명했다.
그는 '직선제는 반드시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못을 박은 뒤 말을 시작했다. 민주노총은 연맹의 연합이기에 조직형식상 맞지 않고, 현재처럼 (노동) 현장이 죽어버린 상태에서는 직선제가 아무 소용이 없으며, 지역이나 연맹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것을 거대 조직인 민주노총에서 실시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 지도부가 직선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건 운동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고민에서 나온 듯하다'는 대목은 직선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나를 가리킨 말이다. 그는 직선제 실시로 일어난 문제가 민주노총을 돌이킬 수 없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도 말해 직선제 실시에 대해 몹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직선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집행부는 나뿐만이 아니다. 2001년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 출마했던 단병호-이홍우 후보 조는 "비정규직 문제를 과감히 받아 안을 것"이며 "모든 의결-집행과정을 공개하고 대의원 직선과 민주노총 임원 직선제 규약을 개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다.
물론 직선제 공약은 민주노총의 2기 임원선거에서 이갑용-고영주 후보조가 내걸면서 공식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내가 그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면 영광인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내건 공약이었던 직선제를 이제 와서 부정하려면 적어도 과거에 자신이 한 말에 대한 해명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공약이었던 사안을 마치 이전 집행부에서만 내걸었던 것처럼 거론하는 것은 어찌 보면 비겁한 일이다. 대전과 경남 등 지역본부의 예를 들어 직선제의 폐해를 말하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직선제를 문제 없이 운영한 조직의 사례 또한 많다. 어느 걸 취하고 어느 걸 버리면서 더 나은 제도를 만들어갈 것인가는 시행하는 우리 몫이다. 어떤 선거건 갈등 없는 선거는 없다. 그러나 어떤 갈등이 조직의 새로운 에너지로 순기능을 할 것인가, 역기능을 할 것인가는 이를 집행하는 지도부의 의지가 상당 부분 좌우한다.
나는 갈등이 반드시 나쁘다고 보지 않으며, 현재 간선제와 정파싸움 구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보다 더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는 선거 때 정파 후보 뽑는 기능으로만 작동한다. 선거 안건이 없을 때는 대회 성사조차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갈등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라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마찬가지로 연맹의 집합체라는 조직형식상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그동안 민주노총이 조합원 총투표를 몇 차례 성사시켰던 경험에 조금만 더 노력을 보탠다면 충분히 직접민주주의를 발현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말 조직형태가 문제라면 대의원대회 결정에 맞게 직선제를 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게 옳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과제로 두고 진행하면서 조합원 총투표 때 했듯 각 연맹들이 산하 단위노조들의 투표를 진행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부분이 근본적인 문제여서 안 된다고 하는 건 정말 형식논리에 빠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직선제의 여러 장점들지금까지 민주노총의 많은 문제 가운데 주로 직선제 반대에 대한 재반론을 폈다. 마지막으로 특정 인물이나 특정 발언 말고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대한 답을 해야 할 차례다. '직선제가 반드시 민주적인 것이냐'하는 물음말이다. 민주주의의 원칙에 얼마나 부합하고, 조직의 민주주의를 얼마나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인가 하는 게 사실 가장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직선제 시행을 함께 고민했던 우리가 낸 결론은 이렇다.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투쟁과 직선제 쟁취 투쟁의 역사였다. 그래서 반드시 직선제가 민주적이냐고 직설적으로 묻는다면, 어떤 제도도 완전히 민주적이긴 힘들겠지만 적어도 간선제와 견준다면 직선제가 더 민주적이라고 답하겠다. 촛불정국에서 대의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못해 대중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처럼 이미 민주노총의 간선제는 그 기능과 신뢰를 모두 상실한 상황이다.
직선제를 하면 대의원 구조가 바뀐다. 한국노총 산하에서 이중 삼중 간선제로 어용노조에 계속 장악되었던 철도노조처럼, 큰 규모의 노조는 직선제로 바꾸는 일 자체가 수십 년 동안 싸워야 얻어낼 수 있는 투쟁의 산물이다. 단위노조들은 회사에서 대의원을 장악하고 나면 평생 민주파를 뽑기가 어렵다.
직선제일 경우 선거에서 떨어져도 자신을 지지해준 조합원들을 보고 다시 활동할 근거를 찾지만, 간선제는 그럴 여지조차 없다. 그래서 직선제를 그토록 쟁취하기 위해 피 흘려 싸운 것이다. 우리는 직선제 쟁취를 위해 싸운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한국노총도 민주적으로 변화한다고 직선제를 추진하면서 위원장 선거를 대의원간선제에서 선거인단제도로 바꿨다. 본뜻이야 어떻든 직선제가 좀 더 조합원들에게 민주적인 제도로서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정파의 대립과 갈등 문제도 직선제를 통해 새롭게 바꿔볼 수 있다. 실제 현장 조합원들은 정파를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간선제에서는 자기들 뽑아줄 대의원을 줄 세우고 선거에만 개입해서 권력 잡는 행태가 가능했지만,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선거에서는 정파 영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파나 조직에 대해 잘 모르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 공약과 정책과, 선거운동원들로 승부해야 한다. 이것이 직선제가 가진 또 다른 장점이다.
또한 내 손으로 직접 위원장을 뽑으면서 조직에 대한 소속감과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대의원이 뽑은 위원장과 내가 직접 뽑은 위원장은 다르다. 뉴스를 통해 위원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조직의 선거를 통해 위원장을 '알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80만 조합원의 직접 투표로 뽑힌 위원장은 그 위상과 책임감이 이전과는 다르게 된다.
80만 조직이 움직이는 선거를 통해 민주노총은 조직에 대한 선전도 할 수 있고, 곁에서 선거과정을 지켜보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할 수 있는 기회로도 삼을 수 있다. 민주주의와, 정체성 확립과, 지도력 복원과, 선전홍보 효과와, 조직 확대에 직선제가 기여할 수 있는 여지는 이렇게 많다.
민주노총의 최고 의결기관인 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를 시행하기로 결정했고, 2009년 연말 선거에서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 결정을 성실하게 이행할 의무가 있다. 지금부터라도 대의원대회의 결정을 실천하기 위해 충분한 선전과 조합원들에 대한 교육 등의 사전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금속노조 선거처럼 사전 홍보와 교육 없이 그냥 제도만 달랑 시행해서는 자칫 대기업 노조들만의 경합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 적극 홍보하고, 적극 교육하고, 적극 나서야 한다. 직선제에 대해 알리는 선전과 교육과정 자체가 조직 혁신을 위한 실천 활동이다.
하고자 하면 방법을 찾고, 피하려 하면 구실을 찾는다그런데 지금 민주노총은 현장의 조합원들이 직선제를 우려하고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노총과 노동운동 진영의 이른바 여론 주도층 인사들이 직선제에 대한 반대여론을 자꾸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말로는 '조직의 결정' 운운하면서, 몸은 자꾸 조직의 결정과 따로 가려고 하는, 그것도 상층부의 일부 활동가들이 모여 여론을 호도하고 마음대로 결정하는 행태가 반복된다면, 민주노총은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매게 될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투쟁이든, 실천이든 하고자 하면 방법을 찾을 것이고, 피하려 하면 구실을 찾을 것이다. 무엇이든 하고자 찾는 방법 속에 우리가 다시 살 길이 있다. 아직 길로 보이지 않지만 그곳을 향해 가는 우리 걸음들이 모인다면, 어느새 그게 바로 우리가 찾는 '길'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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