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한 여학생, 강박장애 앓는 남학생

[경험담] 학교 보건실을 찾는 아이들...도움이 필요해요

등록 2009.04.01 11:43수정 2009.04.01 11:56
0
원고료로 응원
보건실에서 학생들을 상담하고 지도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정신적으로 위험에 처한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정신적인 문제를 따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이들 중에는 학교에서 지정된 상담 공간에 찾아가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무슨 문제가 있어 상담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시선 때문이다.

이에 비해 보건실은 아픈 아이는 누구든지 갈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인지, 가정폭력, 학교폭력, 우울증, 자살 사고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다른 데가 아프다는 이유를 대고 비교적 자유롭게 찾아온다.

성적 스트레스에 자해, 강박 장애 앓는 아이들
a  수능 시험장에서의 수험생. 과도한 학업과 입시 스트레스가 학령기 아동 정신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수능 시험장에서의 수험생. 과도한 학업과 입시 스트레스가 학령기 아동 정신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 권우성


경기 A시의 고등학교. 학기 초 2학년  여학생이 상처를 입었다며 보건실을 찾아왔다. 밴드만 주면 자기가 붙이겠다는데, 마침 아이들이 없어 보건교사가 상처를 직접 보지 않고는 밴드를 줄 수 없다고 했더니, 망설이다가 손목의 시계를 푼다. 두꺼운 시계 줄을 풀고 나니 손목에 거즈를 댔고, 젖혀보니 칼로 자해한 자국이 선명했다. 자꾸만 떨어지는 성적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스스로 자해한 것이었다.

충남 B군의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보건교과서에 실린 정신건강 우울 척도 부분을 스스로 측정해보고 점수가 높게 나오자 보건교사에게 상담을 신청했다. 부모님의 이혼 과정에서 심리적인 충격을 받아 좀처럼 심리적 안정을 찾지 못하며, 내내 죽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기 C시의 고등학교. 감기로 보건실에서 쉬고 있던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 자꾸만 끙끙 앓는 소리를 내 보건 교사가 살펴보니, 이불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상담을 해보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강박 장애를 앓았으나, 고 3이 될 때까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진급해왔던 것. 온 몸을 밧줄이 감고 있다는 생각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고 3이 되고 학업 스트레스까지 가중되자, 증세가 더욱 심해져 죽고 싶다는 괴로움에 절로 나오는 괴성을 막으려고, 가까스로 이불로 틀어막고 있었던 것.

자살충동 느낄 때, "친구부터 찾는다" 55.2%

비단 이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기는 특별히 정신 건강에 문제가 없더라도 정체성 혼돈으로 마음이 불안정한 아이들은 쉽게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청소년이 동경하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잇따른 자살 소식이 들려오고, 사회, 경제적으로 안전망이 위축되면서, 지난 10년 동안 우리 나라 자살률이 2배 가까이 증가되었다는 소식도 보도된 바 있다.


실제로 2005년 11월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교육연구회(초중고 현직 보건교사들이 주축이 된 교육시민단체, 사단법인 보건교육포럼의 옛 명칭)가 전국 초등학교 5·6학년, 중1·2·3학년, 고등학교 1·2·3학년 총 1400명을 대상으로 자기기입식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95% 신뢰수주에 2.6±%P) 최근 3년간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시도를 해본 적이 있는가에 대하여, 초중고 학생 16.3%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중 3.0%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13.3%는 시도는 하지 않았지만, 심각하게 유혹을 느꼈다고 답했다. 특히 수능 성적 등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한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나도 그럴 것 같다는 학생이 무려 11.1%에 이르렀고,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학생은 겨우 58.5%에 그쳤다.


한편 자살 충동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으로 친구(55.2%)를 가장 많이 꼽았고, 그 다음은 부모(27.8%), 교사(3.7%)로 꼽아, 학교에서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더욱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2005년 3월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교육연구회의 조사에서는(초등학교 5·6학년, 중학교 1·2·3학년, 고등학교 1·2·3학년 2117명 대상, 95%신뢰수준에 2.1±%P)자신이나 혹은 친구의 자살 동기에 대하여, 무려 19.4%의 학생이 성적으로 1순위로 꼽아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심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일제고사 거부 학교는 '강력' 지도하면서...

이처럼 입시 및 성적 스트레스, 가정의 해체, 또래 관계의 문제 등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는 청소년 우울 및 자살, 정신건강 문제는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매우 심각한 건강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과학기술부나 관련 부처의 대응은 외국의 사례와 비교해 볼 때 매우 미온적이며 피상적이다.

첫째, 미국 등 선진국은 초·중·고등학교에서 보건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운영하면서, 교과서의 상당한 지면을 정신건강에 할애하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는 의사소통법을 가르치고, 중·고등학교에 이르러서는 우울, 자살의 징후나 예방법, 자가진단법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얼마든지 정신 건강도 문제가 나타날 수 있으며, 이 때는 적절한 도움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 2007년에서야 17대 국회에서, 2009년부터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학생들이 체계적으로 보건교육을 배우도록 의무화 하는 학교보건법 개정안이 오랜 진통 끝에 통과되었다. 이후 지난해 9월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초등학교 5·6학년, 중학교 1개 학년, 고등학교 1학년에 한 하여 재량활동 시간에 연간 17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보건교육을 실시하도록 고시하였다. 

연간 50시간 이상 집중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을 위한 보건교육을 실시해야 태도까지 교정할 수 있다는 WHO의 연구보고와 비교해 볼 때, 17시간의 보건교육 시간으로는 성교육, 질병의 예방과 치료, 흡연 및 약물 남용 예방, 비만예방, 정신건강 증진 등 학생들에게 필요한 수업을 제대로 제공하는 것이 어렵다. 

일부 학교에서는 2009년부터는 법적으로 반드시 실시하도록 하는 보건교육 시간도 편제하지 않거나 축소하고 있는 상황.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학교에 대하여는 강력한 장학 지도를 펼치면서도, 법으로 강제된 보건교육에 대한 교육당국의 장학지도는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소극적이다.

전국 16개 시도 보건 장학사, 20명 내외

a  천안시 한 초등학교에 설치된 구강보건실.

천안시 한 초등학교에 설치된 구강보건실. ⓒ 윤평호


둘째, 교육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가족부의 학생정신건강증진사업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학생정신건강증진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보건교사가 주축이 되어 학생 정신 건강 실태조사를 실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표준화된 설문지를 통해 아이들의 정신건강 수준을 조사하고, 선별하는 작업을 하여, 문제 학생의 경우에는 전문가와 연계하라는 것인데, 통계 지원이나 보건교사를 도울 보조인력의 배치 등 행정 지원도 전혀 없이 보건교사 1인이 수많은 학생들의 설문지만을 바탕으로 정신건강증진 사업을 실시하는 것은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한편 보건복지가족부도 산하 정신보건센터를 중심으로 아동청소년 정신보건사업을 실시하고 있는데, 학교의 협조가 없으면 어려운 데다가 막상 학교와 협조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담임교사나 보건교사 등 학교의 교사와는 공유하지 않고 있어, 아이들과 직접 생활하는 교사가 배제되는 결과가 발생해, 오히려 유기적인 협조를 저해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가족부가 서로 앞다투어 학생 정신건강증진 사업을 실시해야한다며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통계 처리, 결과 활용, 학생정신 건강을 위한 보건교육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정책화할 것인가 하는 굵직한 의제는 뒤로 빠진 채, 각 부처의 상층부로만 집계되는 통에, 교과부 따로 보복부 따로 지침을 내려 보내고 있는 양상인 것이다.

셋째, 교과부나 학교의 업무 구조 역시 학생들의 정신 건강 문제를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경우, 학생건강안전과가 학생들의 정신건강증진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데, 교사 출신의 보건 연구사 1인이 전국 초·중·고 모든 학생들의 건강 관련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교육청은 더 심각하다.

전국 16개 시도에 보건교육과 학생 건강문제를 관장할 교사 출신의 보건 장학사는 겨우 20명 내외로, 전국 만 여개 초중고 학교를 장학 지도하는 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학교 현장의 아이들 건강 문제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예방 차원에서 정책화하는 것은 생각해볼 수 조차 없는 형국이다.

더구나 학교에서는 아무런 근거 없이 학교장 재량에 따라 관행적으로 보건실을 체육보건급식부서로 배치하다보니, 보건교사가 오히려 영양사가 없는 학교의 급식 업무를 담당한다거나, 정수기, 물탱크 학생 안전공제회 보험 업무 등 학교 시설·행정관리를 담당하는 사례까지 있다. 학생들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 문제를 돕도록 국가가 배치한 보건교사가 학교내 관행적인 부서 분장 때문에 전혀 엉뚱한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학생 건강 문제는 법적으로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사항도 아니다 보니, 학교 안에서 보건교사 1인이 아이들의 건강문제를 혼자 공론화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일례로 우유급식 실시 유무는 올해부터 학교운영위원회 심의사항으로 편입되었다. 법적으로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도록 할 것인가는 학부모와 학교가 논의할 사항이지만, 아이들의 실제적인 신체적, 정신적 건강문제에 대하여는 학부모와 학교가 굳이 머리를 맞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이들 건강검진, '정신건강'도 체크해야

넷째, 전국 초·중·고 학생들이 학교보건법에 따라 실시하는 종합건강검진 항목에는 정신 건강 부문이 제외되어 있다. 수년간 보건교사들은 현재 학생 종합 건강검진이 성인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아이들 발달 상황에 적합하지 않고, 오히려 일생에서 가장 건강한 시기이므로, 아이들의 발달 특성에 맞게 학생건강검사를 전문성 있게 재편해야한다고 주장해왔으나, 그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현재 학생건강검사는 키, 몸무게, 비만도, 결핵검사, 소변 검사 등 신체적 건강검사가 주를 이루고, 건강조사서라는 설문 형태의 문진표로 학생들의 전반적인 건강태도를 파악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나 정신 건강에 대하여 심도 있는 조사가 가능한지, 현장의 보건교사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아이들이 신음하고, 아이들이 고통 받는 현장을 살리겠다는 정책들이, 오히려 부처이기주의와 정책 현시주의에  편승하여 아이들과 교사를 괴롭히고 있다.

자살 사고의 징후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만 알아도, 감기에 걸릴 수 있는 것처럼 마음도 감기가 걸릴 수 있는 것이라고 배울 수만 있어도, 관련 부처간 유기적인 협조 속에서 일관된 제도와 정책이 제대로 뒷받침만 되어도, 아이들을 충분히 수렁에서 건져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김지학 기자는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교육연구회 정책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지학 기자는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교육연구회 정책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보건교과 #보건교사 #학교보건 #정신건강 #우울, 자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4. 4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5. 5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