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학교에서 배운 이야기는, 학교 문턱을 넘으면서 잊어버린다고 말합니다. 시험을 치르며 풀어내야 하는 지식은, 시험지를 내고 교실문을 나서면서 잊어버린다고 말합니다. 시험을 잘 치러 1등도 되고 5등도 되는 우리들이지만, 정작 1등이고 10등이고 100등이고 꼴등이고, 우리 머리에 남는 이야기나 지식이란 하나도 없다 하여 틀리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요새 아이들이 한국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우리가 일제한테 억눌린 햇수도 제대로 모른다면서 서글퍼 합니다. 그런데 1950년에 한국전쟁이 터졌든, 일제강점기로 눌린 햇수가 서른여섯 해이든 서른일곱 해이든, 이런 지식을 머리에 품는 우리들은 '한국전쟁이 우리한테 무엇을 어떻게 남겼는가'와 '일제강점기로 우리 삶터가 어떻게 비틀렸는가'를 얼마나 깨닫거나 헤아리고 있을는지요. 서울 인구를 알고 구와 동을 안다 하면 서울을 잘 안다고 할 수 있을는지요. 대통령 이름을 외면 한국을 잘 안다고 할 수 있을는지요.
성경을 여러 번 읽어 하느님 말씀을 잘 알 수 있으나, 성경을 읽는다고 꼭 하느님 말씀을 잘 알 수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잘 알면서 이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많으며, 하느님 말씀은 모르지만 살아가는 매무새가 하느님 말씀과 같은 길인 사람도 많습니다.
천재라 하고 똑똑하다 하는 사람 많으며, 서울대니 연고대니 이대니 하는 대학교를 나오는 사람은 해마다 수천 수만입니다. 그런데 그 천재이며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모두 배웠을 도덕이나 철학을 올바르게 지키는 사람은 몇 사람쯤 된다고 손으로 꼽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쓰레기 안 버리기가 환경보호는 아닙니다만, 적어도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도록 삶자락을 붙잡는 사람은 얼마나 된다고 손으로 꼽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학교를 다닌 열두 해에 걸쳐, 학교에서 '전쟁을 슬퍼하고 평화를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교사나 동무 들이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 모르나 제가 떠올리지 못할 수 있을 텐데, 제 짧은 머리로는 교과서에 이러한 이야기는 한 줄도 안 적혀 있었다고 느끼는 한편, 아무도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우리 집에서도, 우리 이웃집에서도, 우리 마을에서도 '전쟁을 슬퍼하고 평화를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따로 들은 적이 없다고 느낍니다. 어릴 적 즐겨보던 텔레비전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일은 없구나 싶고, 군대까지 마치고 난 1998년에야 처음으로 본 권정생 님 동화책을 쥐기까지, 입발린 소리로라도 이러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 어린이책을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요즈음 아이들한테는 훌륭한 나라밖 어린이책이 많이 옮겨져서 읽을 수 있고, 나라안 좋은 어린이책도 많이 나와 넉넉히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초등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좋은 청소년책'이나 '훌륭한 청소년책'은 씨가 마릅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는 아름다운 책 하나 쥐어지지 않습니다. 대학생이 되어도 올바른 책 하나 쥐어지지 못합니다. 회사원이 되고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는 어버이가 되어도 빛곱고 해맑은 책 하나 쥐어질 겨를이 없습니다.
(2) 전쟁을 일으키는 사회
1999년 8월 8일부터 출판사 일꾼이 되어 일했습니다. 이때 들어간 일터에서 웃사람들은 아침에 늦게 나와 신문을 펼치고, 낮밥을 먹고 나서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낮잠을 자거나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새내기 일꾼은 새벽바람으로 나와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낮밥을 먹은 다음에도 느긋하게 쉴 수 없었습니다. 고되게 창고정리를 하든 몇 백 상자에 이르는 책을 등짐으로 나르든 아랑곳않는 웃사람들이었습니다.
허울은 좋은 조합원 출판사였으나, 새내기 일꾼은 한 해 동안 비조합원이어야 하면서 비정규직이어야 했습니다. 싫으면 나가야 했고, 일을 배우려면 이렇게 해야 했으며, 푸대접이나 낮은대접은 반드시 달게 받아야 했습니다(이제는 이렇게 하지 않는 틀로 바뀌었다고 하고 그 출판사는 조합원 제도를 없앴습니다). 저는 고졸이기에 대졸취업자와 견줄 수 없습니다만, 이무렵 대졸로 중소기업에 들어간 사람들 평균 연봉이 2200만 원이었고, 가장 많이 받는다는 사람은 3500만 원이었습니다. 저는 그 출판사에서 연봉 700만 원 조금 넘게 받았습니다. 제가 그 출판사를 나온 다음 제 뒷자리로 들어온 사람부터 비로소 대접이 살짝 나아져 연봉 1200만 원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신문배달만 하며 살다가 책 만드는 일을 하게 된 저로서는, 어떻게 보면 처음으로 겪는 '사회살이(회사살이)'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출판사 사장은 저보고 '출판사도 조직이고, 조직은 (종규 씨가 일한 신문보급소와) 다른데 여기에 최종규 씨가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바깥으로는 조합원 출자 회사인데다가 사장이며 평사원이며 금을 긋지 않는다고 내세워졌지만, 또한 학력에 따른 푸대접이 없다고 알려졌지만, 안으로는 여느 큰회사와 다를 바 없는 위아래가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 류우키치는 고등학교 시절에 공산주의를 좋다고 했던 일이 있었다. 사회개혁 운동에 흥미를 가졌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마을에 와 보니 그가 품고 있던 경제적인 이상향이 아무런 투쟁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실현되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공산주의 마을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마을 전체가 사랑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 가톨릭교 자료문헌의 사진에서 보아 오던 보물들이 열쇠도 잠그지도 않은 상자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나중에 종치기 노인에게, "그런 보물들을 좀더 소중히 하시지요?" 하고 말하자, "아아, 그런 유물도 소중합니다만,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십니꺼. 백 사람의 천주교 학자가 나오기보다는 말입니더. 한 사람의 개종자가 나타나기를 기도하고 있십니더." 하고 대답하였다 .. (26, 28쪽)
출판사 사장이 가끔 가다가 읊는 '조직'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피식피식 웃곤 했습니다. '그 조직이라는 데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회사라는 데는 군대처럼 주먹다짐과 몽둥이찜질은 없는데 뭐가 힘들지요?' 하고 속으로 대꾸하곤 했습니다. 저한테는, 군대에 있을 때처럼 총질이나 주먹질이나 몽둥이질이 없는 회사가 더없는 하늘나라처럼 여겨졌고, 이런 데에서 하는 일이란 너무도 손쉬우면서 벌이가 많다고 느껴졌습니다. 지오피에서 생명수당까지 하여 받던 병장 달삯은 이만육천 원쯤밖에 되지 않았으나, 비록 한 달 일삯이 62만 원밖에 안 되는 출판사살이였지만, 출판사에서는 군대와 견주면 '한 달 일삯을 날마다 받는' 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회사라는 곳은 군대처럼 총질-주먹질-몽둥이질은 없으나, 어쩌면 더 무섭다고 할 돈질이 있더군요. 돈으로 사람을 나누고 돈으로 계급을 가르며 돈으로 사람을 매겼습니다. 돈으로 일거리가 만들어지고 돈에 따라 사람값이 달라지고 돈을 휘둘러 사람을 부렸습니다.
스물다섯 철부지로서는 세상을 너무 몰랐는데, 출판사에서 우리한테 토요일이고 일요일이고 공휴일도 없이 일을 시켰음에도 '시간외수당'과 '특별수당'을 주어야 하는 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영업을 뛰면서 '퇴근 뒤에도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해야' 했지만 '야간수당'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일이 늦어지며 저녁을 먹어야 하면 4000원 안으로는 사 주기는 하는데, 이 4000원짜리 밥을 먹으면 일을 일찍 끝냈어도 저녁 아홉 시까지는 엉덩이를 회사에 비비고 있어야 했습니다. 서울도서전 같은 자리나 꾸준히 있는 가판대 영업은 언제나 주말을 통째로 바쳐야 했음에도, 저녁나절 술 한잔 값(다문 만 원이라도)조차 받을 수 없었습니다.
.. 류우키치가 방사선을 전공해서 육체를 상하게 되는 책임은 하느님에게 지울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류우키치가 무엇을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스스로 선택한 길을 어떻게 나아가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하느님께는 나폴레옹이 황제이든 농부이든 상관없다. 황제로서 옳으냐 옳지 못하냐가 문제인 것이다. 하느님 앞에서 세계 역사에 빛나는 나폴레옹은 낮추어지고, 아무도 모르는 무식한 농부 이시도로는 영광의 빛을 받았다 … 의사로서의 출발에 앞서 병상생활을 경험한 일이, 이제부터 환자를 치료하는 데 얼마만큼의 도움이 될 것인가 하고 생각하면, 결코 헛되이 지낸 2개월만이 아니었다. 병을 앓아 보지 않은 의사는 환자의 심리를 모르기 때문에 세심한 염려를 하지 않는 법이다 .. (36, 44쪽)
어이없는 일감이 있고, 말이 안 되는 위아래 계급이 나뉘어졌지만, 바깥으로는 훌륭한 책을 만든다고 알려지고 이름이 높은 출판사였기에, 군말 없이 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내 시간이 하나도 없고 내 젊음이 갉아먹히고 있었음에도 '책 만드는 일'을 배운다는 보람으로, '나는 이렇게 겪어내고 치러내며 배우되, 내 뒤에 들어오는 사람한테는 이렇게 겪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조그맣게 꿈을 꾸며 버티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 뒤에 들어오는 사람한테 '나를 부렸던 웃사람이 하듯 건방끼'가 몸에 배어 있음을 느끼면서 놀랐습니다. 내 마음과 달리 내 몸은 톱니바퀴에 착착 맞물리면서 바보가 되어 버림을 느끼면서 슬펐습니다. 이리하여, 내 삶을 돌려놓고 내 생각을 바로잡고자 '출판노조'를 알아보았고, 출판노조 지부장을 맡던 선배한테 팩스를 넣어 출판노조 입회서를 보내려 했습니다. 선배한테 전화를 걸어 신청서를 회사 팩스로 받는데, 이 문서를 회사 웃사람이 먼저 알아보고는 '아니 이게 뭐야? 우리 회사는 조합인데 누가 노조에 가입한다고 그러는 거야?' 하고 소리를 쳤고, 제가 그 노조입회서를 쓴다고 하니까, 웃사람들이 발칵 뒤집어져서 두 시간도 넘도록 회의를 했습니다.
저는 아무 일도 못하며 멀뚱멀뚱 회의실 밖에서 두 시간 넘도록 기다립니다. 회의를 마친 웃사람들은 '최종규 씨는 아직 우리 회사 조합원이 아니니 노조입회서를 써서 보내도 된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하려면 먼저 우리(출판사 간부)한테 허락을 받고 하라'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때나 이때나 하나도 안 달라졌지만, 책마을에는 노조가 있어도 허울뿐인 노조만 있고, 책마을 일꾼 권리를 지켜 주는 '제대로 된 노조'가 없습니다. 노동법에 따라 권리가 지켜지는 책마을 일꾼은 아예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으며, 외주일을 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뿐 아니라 정규직으로 일하는 책마을 일꾼도 '사장 마음이나 눈에 안 들면' 그날로 목아지가 달아나는 무시무시한 불법이 어엿하게 날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 류우키치는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아사쿠라 조교수는 자주 있는 일이었으므로, 드러내 놓고 화를 내지는 않았다. "어떤 이유로 800으로 정했나요?" "참고서에 써 있었으니까요." "학문은 진보하는걸세." 조교수는 가르치는 자세로 말했다.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그것이 몇 년에 발행된 것인가 보아 두는 법이야. 800 뢴트겐이란 옛날 학설이지. 참고서는 오래된 학설을 모은 것이 많아. 새 지식은 달마다 나오는 새로운 전문잡지를 늘 읽어야 얻어진다네. 요즈음은 자궁암에는 심부량 2000 뢴트겐 이상을 필요로 한다는 의견이 많고, 또 내 경험도 그래요. 그래서 2000으로 한 것이오." 빨간 넥타이는 많은 환자 앞에서 주의를 받자 크게 체면을 손상당했다는 생각에 흥분했다. "그러나 이것은 내 담당 환자니까 내 생각대로 치료할 권리가 있습니다. 산부인과 환자를 물리요법과가 함부로 치료해선 곤란해요." "그러나 자네, 이 환자를 뢴트겐으로 치료하려고 전문가인 우리에게 소개한 게 아닌가? 뢴트겐은 뢴트겐과에 맡기면 되지 않나? 그것이 환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양심적이 아닐까?" … 빨간 넥타이의 안면 혈액량이 다시 변했다. "뢴트겐학의 기초도 모르면서 낡은 문헌만을 알고, 그것만으로 치료하는 날엔 환자가 골탕을 먹을 뿐이네. 또, 어떻게 하면 환자를 살리나 그것만이 우리 소원이어야 하네. 의사는 환자에게 서비스해야지 환자에게 서비스를 받아서도 안 되네." .. (61∼63쪽)
사회에서 치는 경력은 열두 달을 채워야 합니다. 다른 출판사에 들어가려 해도 열두 달이라는 숫자를 채워야 알아 주고 일삯을 달리 받습니다. 그러나, 이 출판사에서 더 견디어내기 힘들었습니다. 적어도 열두 달을 채운 다음 저한테 '조합원 가입 자격'을 주겠다고 하는 그 자리에서 사표를 내놓고 '잘 먹고 잘 사시오' 하는 한 마디를 남기고 물러나려고 했지만, 사람이 사람다움을 추스르면서 일하지 못하도록 하는 굴레에서는 그런 경력 따위는 부질없는 노릇이 아닌가 느꼈습니다. 오히려 그런 경력이 있으면 저한테 부끄러운 티끌이 되지 않겠는가 느꼈습니다.
열두 달을 며칠 안 남긴 어느 날, 정작 잘못은 자기가 했음에도 꼬랑지 비정규직인 저한테 갖은 쌍욕을 퍼붓던 출판사 사장한테 '나는 입이 없어서 욕을 안 하는 줄 아느냐? 어따 대고 욕이고 주먹을 휘두르려 하느냐?'면서 그 자리에서 그만둡니다. 그러고는 책마을에서 몸담는다는 일이 너무 몸소리쳐지도록 싫어 앞으로는 책마을에 발을 디디고 싶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동안 이래저래 모아 놓고 있던 책들 가운데 1/3을 헌책방에 내놓습니다. 떠나보내자고, 또 떠나보내자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 달을 조용히 지내는데, 이렇게 발뺌을 하면서 내 몸만 깨끗(?)하게 둔다 해서 내가 좋아하는 책이 나아질 수 없다고 느낍니다. 이리하여, 저를 불러 주는 다른 출판사에 들어가, 이번에는 영업이 아닌 국어사전 기획자로 일합니다. 이곳에서는 세 해를 몇 달 못 채우고, 뜻하던 국어사전 또한 마무리를 짓지 못하며 나오게 되었지만, 출판사에 몸담은 일꾼이든 출판사를 꾸리는 사장이든 누가 누구 위에 올라설 수 없는 노릇인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똑같은 '한 사람'으로 바라보면서 어깨동무를 하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책 하나를 고맙게 빚어내지 못하겠다고 느낍니다. 네 해가 조금 못 되는 세월에 걸쳐 출판사에 몸담았음에도 그동안 제 이름이 박힌(편집자로서) 책은 하나도 빛을 보지 못했지만, 책에는 땀뿐 아니라 사랑을 함께 담아야 하고, 책마을 동료를 껴안는 믿음이 있어야 하며, 나 스스롤 더 낮추는 매무새가 아니라 내 이웃을 나와 함께 높이면서 섬길 줄 아는 넋이 있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 오늘은 히틀러식 사각 수염을 기르고 한 가닥 머리를 이마에 늘어뜨리고 거리를 으스대며 걷고 있는 청년도 10년 후에는 히틀러를 잊어버리고, 50년이 지난 후에는 히틀러의 이름을 역사시험 때나 기억할 정도가 되리라. 이와사키다, 스미토모다 하는 그 공장의 직공까지 어깨를 으스대며 걸어다니고 있으나, 전쟁 갑부란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유미일 야닝스는 이미 쇠퇴하고, 릴리앙 규슈, 라몽 나바로의 이름도 희미해 가고, 그레타 갈보의 검은 망토도 언제까지나 인기를 끌 수는 없는 것이며, 구리시마 스미코, 메다마의 마츠노스케들도 이름조차 벌써 입에 오르지 않게 되었다 … 시간 안에 생활하는 자에게 영원히 알려지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허위 속에 살고 있는 자들은 진리와는 인연이 없는 중생들이다 … "세상의 여론에 현혹되지 말고 조용히 침착하게, 어제의 다음을 공부하자." .. (197, 202쪽)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좋은 책이 하나 태어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좋아 오래도록 사랑받는 책이라 한다면, 출판사 일꾼부터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는 가운데 땀과 품이 모아져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줄거리를 담았다 한들 출판사 일꾼이 평화를 깃들어 놓지 않은 책이라면, 이 책을 쥐어드는 사람들한테 훌륭한 줄거리뿐 아니라 아무런 사랑이 이어질 수 없다고 배웠습니다. 비록 좀 어설프거나 어수룩한 줄거리를 담았다 하여도 출판사 일꾼이 평화를 살포시 담아 놓은 책이라면, 이 책을 쥐어드는 사람들한테는 그 아쉬운 줄거리를 슬기롭게 삭여내는 마음밭을 일으키는 가운데 고운 사랑으로 밝고 즐겁게 살아가게 됨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싸우는 아이'가 아닌 '사랑하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미워하는 아이'가 아닌 '믿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회사는 틀림없이 돈을 벌어야 꾸려질 테지만, 돈벌이는 사랑과 믿음으로 이루어야지 싸움과 미움으로 이루어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남보다 더 벌어들이는 돈이 아닌, 남과 함께 나누면서 서로 흐뭇한 돈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출판사로서는 높은 수금율을 보여주어야 할 일이 아니요, 나라살림으로서는 더 높은 경제성장율을 보여주어야 할 일이 아니라, 출간종수가 적어도 한결 빛나는 책을 내놓을 일이요, 나라살림으로서는 세금수입이 적어도 허튼 데에 돈이 새지 않도록 다스리고 간수할 줄 아는 손길로 다스릴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3) '작은 사람'임을 사랑한 삶 《영원한 것을》
1909년에 태어나 아무런 종교 없이 살다가 1928년에 의과대학생으로 시골집에서 공부하며 처음으로 '천주교 집성 마을'에서 지내는 동안 '종교 모임'이 아닌 '삶 동아리'를 조금씩 느끼는 가운데, 일본이 일으킨 만주사변에 따라 군의관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고, 군복무를 겨우 마치고 예전 대학교와 천주교 집성 마을로 돌아와 가난한 농사꾼 딸과 혼인하여 조용히 학문 외길을 걷다가, 스스로 걸은 '방사선학과'에서 퀴리 부인과 마찬가지로 지나친 방사능 중독에 걸린데다가 1945년에 일본이 전쟁이 지며 맞은 나가사키 원자폭탄 뒤탈로 모든 소담스런 삶자락을 잃고 나서 병자리에 누워 지내는 몇 해 사이, 자기 지난날을 돌아보며 있는 그대로 제 발자취를 적바림한 책 《영원한 것을》을 읽습니다. 이 책을 쓴 나가이 다카시라는 이는 모두를 잃고 책 몇 권을 남겼는데, 이 책들은 하나같이 세계 여러 나라로 옮겨지며 크나큰 울림을 퍼뜨렸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찾아서 읽은 《영원한 것을》이 처음 우리 나라로 옮겨진 해는 1964년이고, 제가 읽은 책은 1993년에 찍은 판입니다. 이밖에 《묵주알》과 《만리무영》이라는 책도 우리 말로 옮겨졌습니다.
글쓴이 나가이 다카시 님은 처음부터 방사선학과에서 뢴트겐을 다루는 의사가 될 생각이 아니었으나, 의대를 마칠 무렵 급성중이염에 걸려 몸이 크게 망가졌고, 이렇게 망가지면서 제 길을 새롭게 걸어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머문 시골 하숙집 마부네 딸아이가 걸린 병 때문에 깊은 밤에 이이를 업고 병원에 맡기고 나서 사랑이라는 데에 처음으로 눈을 떴고, 마부네 딸아이가 전쟁터로 끌려가는 글쓴이한테 준 로사리오 묵주 하나와 천주교 교리문답서를 가슴에 간직하면서 '제 고향나라인 일본이지만, 이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일본 젊은이뿐 아니라 중국 젊은이 모두 괴롭게 죽어 가야 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온몸으로 뼛속 깊이 받아들입니다. 다른 동료는 거의 모두 저승으로 떠났으나 글쓴이는 용케 살아남아 전역을 하여 시골 하숙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이곳에서 더욱 제 몸을 바쳐서 '고향나라며 고향사람이며 옳은 길을 가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천주교 세례를 받고 하숙집 딸과 혼인을 합니다.
그러나 전쟁을 뒤로 하고 평화를 사랑하려던 삶은, 일본이 전쟁을 그치지 않고 자꾸자꾸 새로 이어나가는 가운데 끔찍하게 깨어집니다.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누구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만, 전쟁을 싫어하며 조용히 살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바뀌어 버리고, 이 잿더미 사이에서 또 한 번 용케 살아남은 글쓴이는(마침 병원에서 일했고, 병원 건물은 아주 튼튼했기에) 더 끔찍한 아픔과 죽음과 전쟁을 맛보면서, 1951년에 숨을 거두는 날까지 당신 스스로 보아 오고 치러 온 눈물과 웃음을 글로 남기게 됩니다.
.. (마부의) 딸은 부끄러워서 잠시 망설였으나, 밤중이라 보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류우키치가 자꾸 권하자 할 수 없이 류우키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고, 크리스마스의 축하에 지친 마을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마부가 앞에서 초롱불을 밝히며 간다. 불빛이 비추는 그 공간으로 내리는 눈이 보였다. 가도 가도 똑같은 하얀 눈 위에 또 하얀 눈이 반짝이며 내리고 있다. 류우키치는 그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면서 말없이 걷고 있었다. 등에 업힌 마부의 딸의 심장이 바로 왼쪽 등에서 격심하게 뛰고 있었다. 열이 높아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목덜미에 닿는 머리카락과 열띤 숨결이 간지럽다. 개가 뛰어나와서 짖어댔다. "닥쳐, 수상한 사람이 아니야." 류우키치는 외쳤다. 대학은 모두 잠이 들어 있었다. 큰 복도를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저편 끝까지 메아리친다. 어디선가 전화의 벨이 울리고 있었다. 외과병동 수술실만은 환하게 전등이 켜져 있었고, 밝은 창 밑의 배기관에서는 스팀이 하얀 김을 뿜고 있었다. 류우키치는 그것을 보면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정경이란 모두가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했다 .. (74쪽)
글쓴이 나가이 다카시 님은 천주교 신자입니다. 그러나, 이 책 《영원한 것을》을 읽는 내내, 이이한테는 '신자'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또한 '천주교 신자'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이이는 오롯이 한 '사람'으로 살려고 했고, 이렇게 살려는 몸부림과 애씀으로 빛줄기 하나를 보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동안 로사리오 묵주알과, 가난한 농사꾼 딸이 손으로 떠 준 털옷 한 벌과, 당신 온삶이 바쳐진 방사선학과 논문 한 묶음이, 몸을 버티고 마음을 지켜 주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 류우키치는 부드러운 스웨터를 손에 받았다. 그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 그 자체였다. 받기는 했으나 이내 받아들이가 아쉬웠다. 받아들면 이 사랑의 보따리는 하루노의 손에서 떨어진다. 그러면 둘은 만주와 일본으로 영원히 떨어져 버릴 것이다 … 먹고사는 것이 곤란한 정도는 아니었으나 극장에 간다든가 다방에 갈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또 그런 세계를 동경하는 일도 없었다. 류우키치가 분을 바른 하루노의 얼굴을 본 것은 결혼식을 하던 그날 하루밖에 없었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보지 못했다. 하루노의 화장대 서랍 속에는 쓰다 남은 분이 굳어진 채로 뒹굴고 있었다 … 류우키치는 가톨릭에서는 첫째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둘째로 자기를 사랑하고, 셋째로 남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을 사랑하기 전에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를 올바르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기심과는 다르다. 자기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우선 노력하는 것이다 .. (79, 101, 108쪽)
사이사이 천주교 교리라든지 하느님 이야기라든지 몇 대목씩 나오곤 합니다. 그렇지만 글쓴이는 이 책을 읽는 이한테 천주교로 잡아당기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천주교를 믿는 분들이 더 깊은 믿음으로 파고들도록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이 책 겉에 적혀 있는 몇 마디 말처럼 '전쟁을 그만두자! 영원히 전쟁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천주교를 믿는 사람이든 천주교를 안 믿는 사람이든, 우리들은 전쟁을 그만둘 뿐 아니라 몰아내야 한다고 외칩니다. 우리 온몸으로 평화를 찾아야 한다고 외칩니다. 평화가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요, 평화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외칩니다.
전쟁을 부추기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요, 전쟁을 막지 않으려는 믿음 또한 믿음이 아니라고 외칩니다. 평화를 북돋우는 믿음만이 믿음이요, 평화를 온누리에 가득 펼치려는 믿음만이 믿음이라고 외칩니다.
.. 류우키치는 여기(만주에 있는 어느 성당)에서 다시 로사리오를 높이 쳐들어 흔들어 보였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아이들은 큰소리로 외치고 여자들은 방긋 웃었다. 가공스런 동양귀(일본군) 중에도 가톨릭 교인이 있다! 적 안에도 같은 하느님을 믿는 자가 있다! 이 사실에 그들은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 로사리오의 알들이 눈물에 젖어 버리고 말았다. 류우키치는 그때 절실히 느꼈다. 이 세계 안의 모든 민족은 일치할 수가 있다. 이렇게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켜, 몇 천 리나 떨어져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서로 죽이는 이러한 어리석은 짓을 하는 대신에 사랑으로써 일치할 수가 있는 것이다 .. (156쪽)
이리하여, 학교도 전쟁이요 사회도 전쟁이요 병원도 전쟁이요 정치도 전쟁이요 공동체도 전쟁이요 종교도 전쟁이요 학문도 전쟁이요 집살림도 전쟁이요 남녀사랑도 전쟁이요 여론과 유행 모두 전쟁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영원한 것을》입니다. 우리가 아끼고 돌보아야 하는 무엇이 있다면 '바로 이곳 이때에 있는 나와 너'이며, 우리가 멀리하고 꺼려야 하는 무엇이 있다면 '바로 이곳 이때에서 동떨어진 모두'임을 이야기하는 《영원한 것을》입니다.
경쟁을 외치니 학교도 전쟁입니다. 돈벌이라는 경제만 외치니 사회도 전쟁입니다. 환자가 아닌 의사를 앞에 두니 병원도 전쟁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아름다이 어우르도록 돕지 않으니 정치도 전쟁입니다. 사랑을 앞에 놓지 않으니 공동체도 전쟁입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 하지만 스스로 우상이 되니 종교도 전쟁입니다. 이 모두를 올바르게 밝히며 알리지 못하니 여론이고 유행이고 전쟁입니다.
.. 11시 2분. 뻔쩍! 하고 빛났다. '앗!' 하고 외치는 소리가 입에서 나올까 말까 할 사이에, 우라카미 일대의 땅위에 물건이란 물건은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천지는 불바다가 되어 갔다. 이 원자폭탄이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말이었다 … 내 집의 탄 자리의 좁음이여. 있었다. 역시 있었구나. 잿더미 위에 조금 높게 나타나 있는 검은 것이. 하루노여! 부엌 뒤쪽 그릇이 깨어진 조각 옆에.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 뼈가 되어 … 이리하여 모든 것이 없어지고 말았다. 집도 없어졌다. 재산도 없어졌다. 가난한 살림 속에서 짜내어 어린 것들의 교육을 위해 하루노가 모아 놓은 많지 않은 재산도 재로 화해 버리고 말았다 … 조국은 패전했다. 건국 이래 한 번도 항복한 일이 없었던 일본이었기 때문이 이 전쟁에서도 절대로 지지 않는다고 허세에 허세를 부리며 견디어 왔으나 실력의 큰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우라카미 교회도 전멸에 가까웠다. 동양 제1의 대성당은 벽돌산으로 화하고, 1만 명 신자 중에 8천 명을 주님이 불러 가셨다. 몇 세기의 박해에도 꿈쩍 않고 그대로 자라나 여기까지 커진 것도 물거품이 되었다 … 정신이 든 것은 새벽녘이었다. 하늘이 훤하게 밝아지면서 별 그림자가 엷어졌다. 곤토비라 산위의 샛별이 크게 빛나고 있다. 류우키치의 머리는 맑은 아침 바람에 점차로 정상적인 의식이 되돌아왔다 .. (235쪽, 244∼246쪽)
옆지기는 이 책 《영원한 것을》에 나오는 나가사키시 우라카미 마을 같은 데에서 우리가 살 수 있으면 아주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마을은 원자폭탄을 맞아 조각조각 부수어졌습니다. 이제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 예순 해가 훨씬 지났으니 예전처럼 되살아났는지 모릅니다만.
아무래도 우리 나라에서는 우라카미 마을처럼, 믿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마을이지만 그 어떤 얽매임이나 부추김이나 잡아당김이 없는 스스럼없고 열린 마을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틀림없이 어딘가에 있을는지 모르나, 있는 마을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발디딘 모든 마을마을에서 새로운 마을을 일구어야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있으면 좋지만 없으니 새로 빚어낼밖에요. 있으면 즐거이 누리지만 없으니 힘들고 고되어도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새로 닦아낼밖에요.
모자람 아쉬움 하나 없이 깨끔한 살기 좋은 마을이 있으면 더없이 반갑지만, 우리 스스로 모자람 아쉬움 하나 없이 깨끗한 살기 좋은 마을로 우리 터전을 가꾸자고 다짐하면서 하루하루 한 땀 두 땀 흘릴 수 있다면, 비록 우리가 우리 뜻을 거의 이루지 못하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아간다고 해도 살며시 웃으면서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참된 천주교라면 바로 이러한 자리 이러한 때에 믿음을 두고 있다고 느낍니다.
영원한 것을
나가이 다카시 지음, 이승우 옮김,
바오로딸(성바오로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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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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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전쟁’을 슬퍼하고 ‘평화’를 사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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