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않은' 것 고르는 문제가 왜 이렇게 많아

[28년째 초등교사가 말하는 초등교육이야기 16] 3월 31일, 일제고사 진단평가 문제⑤

등록 2009.04.05 10:46수정 2009.04.0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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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작년 10월 전국 초등학교 3학년 모두가 같은 문제로 일제히 치른 초3 국가수준진단평가와 역시 전국의 모든 6학년 아이들에게 일제히 보게 한 국가수준 학업성취수준 평가 뒤부터 적극적으로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는 아이들과 가까이 있는 현장 교사로서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에는 학교에서 평가업무 담당으로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공문을 처리하면서 우리나라 모든 아이를 대상으로 치르는 일제고사가 시행과정과 내용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교사와 학부모들 중에 '일제고사가 문제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문제를 한 번쯤 그냥 풀어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럴 때 그냥 풀어보는 것도 안 된다고 말씀드리곤 하는데, 그 까닭은 아이들이 읽고 풀게 하는 일제고사의 문항에 문제가 아주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작년부터 평가 문항을 자세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를 분석하면 할수록 점점 더 일제고사는 정말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가 33%나 차지

일제고사로 본 4·5·6학년 진단평가 평가문항을 살펴보다보니 다른 평가 문항보다 유난히 '않은', '아닌', '잘못된' 것을 고르는 문제가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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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사회 28번 6학년 사회 전체 30문항에서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는 모두 10문항이나 됩니다. 26, 27, 28, 29번 문항은 내리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입니다. 고른 '않은' 답을 보면 또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 이부영


평가문항 출제 관련 연수에서 가장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것 중에 하나가 '부정적인 문장으로 물어보는 문제는 출제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정적인 문장으로 물어보게 될 경우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않은 것', '아닌 것', '잘못된 것'을 고르는 문제는 되도록 출제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6학년 사회의 경우 전체 30문항 중 '않은', '아닌', '잘못된' 것을 고르는 문제가 10문항이나 되었습니다. 3문제에 1문제는 '않은', '아닌', '잘못된' 것을 고르는 문제라는 얘깁니다. 26번부터 29번까지는 내리 '않은', '아닌', '잘못된' 것을 고르는 문제인데, 문제 내용까지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이 사실만으로도 평가 문항 출제자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고로, 제가 문제 출제했던 경험으로 볼 때 평가 문항 출제를 할 때 사지선다형 문제에서 가장 내기 쉬운 문제가 바로 '않은', '아닌', '잘못된' 것을 고르는 문제입니다.


6학년 사회 다음으로 4학년 국어 평가지에서 7문제, 5학년 국어 평가지에서 5문제, 나머지 학년의 교과마다 3,4문제가 '않은', '아닌', '잘못된' 것을 고르는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서답형 문제는 1%도 안돼


아이들이 답안지에 직접 답을 쓰는 서답형 문제를 살펴보니 4·5·6학년 모두 합해 13문항입니다. 전체 문항수(1350문항)의 1%가 채 못 됩니다. 그나마 서답형이라고 나와 있는 문항을 살펴보면, 굳이 서답형으로 출제할 필요가 있을까 싶게 단답형 문제가 대부분입니다. 최근 토론과 논술 교육이 강화되고 있는데, 진실로 자기 생각을 서술하거나 논술하는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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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국어 20번 문항 1%도 안 되는 서답형 문제는 대부분 이처럼 단답형입니다. ⓒ 이부영


단순한 암기 지식만을 진단하는 사지선다형 평가

서답형 13문항을 뺀 나머지 1337문항은 모두 네 개의 보기에서 하나의 정답을 찾는 사지선다형입니다. 그런데 사지선다형 문항을 살펴보면, 대부분 단순하게 외워 알고 지식을 묻는 문항이 가장 많습니다.

다음은 5학년 사회 25번 문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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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사회 25번 문항 단순하게 외워서 알고 있는 지식을 묻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면 유치원생도 모두 답할 수 있습니다. OMR카드에 제대로 표기 할 수 있다면요. ⓒ 이부영


어이없게도 혹시 써 놓은 설명만으로는 정답을 못 알아맞히는 아이들이 많을까봐 그림까지 그려주는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아이라면 유치원 아이도 충분히 답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과연 단순하게 놀이 이름을 아는 것이 4학년 사회의 성취수준이고, 5학년 사회 진단평가로 해야 할 마땅한 평가인지 출제자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런 유형의 평가문항은 이것뿐만이 아니고, 선택형 문항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생각의 틀을 가두고, 왜곡된 지식을 주입시키는 평가 문항

평가 문항 출제 관련 연수에서 반드시 나오는 얘기는, 일제고사로 가장 많이 쓰이는 사지선다형 지필검사는 문제가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교육과정 총론에는 물론이고, 평가 문항 출제 관련 연수 자료마다 '사지선다형 지필검사를 지양하고, 수행평가를 지향하라'고 합니다. 저도 이미 선다형 지필검사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선다형 지필검사로 건강진단이 가능합니까?'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번 일제고사에서도 어김없이 선다형 지필검사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 중에 다음 6학년 사회 14번 문항을 예로 들어 문제점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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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사회 14번 문항 그림을 보고 그림에 나타난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닌'것을 찾는 문제인데, 평가 문항에 문제가 많아 이런 문제는 출제하면 안됩니다. ⓒ 이부영


이런 평가 방법은 첫째, 문제의 원인을 폭넓게 해석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림과 같은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적당하지 않은 것'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네 개의 보기 중 3개는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맞는다는 얘깁니다. 자, 그러면 그림에 나타나 있는 도시 문제는 무엇일까요? 차가 겹쳐 있는 그림과 운전자의 말로 미루어 보자면 교통이 복잡한 것, 차가 밀리는 것이 그림에 나타난 문제입니다.

그런데 도시에서 교통이 복잡하고 차는 왜 밀리나요? 보기 문항 ③과 ④를 보면 사람들이 승용차를 많이 타고 다니는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니 이 문항은 교통이 복잡한 까닭을 이렇게 몰고 가고 있습니다. 승용차를 운전하는 운전자만의 잘못으로요. 물론 일부분 맞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통이 복잡한 까닭은 이밖에도 더 많습니다.

반드시 사람들이 승용차를 많이 몰고 다녀서 교통이 복잡한 것이 아니고, 평소에는 잘 다니던 길이었어도 갑자기 공사를 하거나 교통 사고가 났거나, 고장난 차가 서 있거나 신호등이 고장났을 때도 교통이 복잡하고 차가 밀립니다. 또 길의 구조가 병목 모습을 하고 있거나 두 갈래 길이 합류하는 지점이어도 차가 막힙니다. 그 밖에 갑자기 검문 검색을 한다거나 음주측정을 할 때도 길이 막힙니다. 길 한복판에 커다란 물건이 떨어져 있거나 길이 움푹 파여 있을 때도 길이 막힙니다. 백화점이 세일 기간일 때도, 주변에 큰 행사가 있을 때도 길이 막힙니다.

교통 체증이 생기는 원인이 이렇게 다양한데, 평가 문항을 보면 모든 원인을 승용차를 운전하는 사람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바로 보기에 나오는 알맞은 답이라는 것이 아이들의 생각을 가두게 됩니다.

둘째, 아이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이 평가문항을 보면 도시 문제를 교통 체증과 함께 소음문제로 몰아가기 위해 '빵' '빵'이라는 경적소리를 그림에 나타내 주었습니다. 그래서 보기 ①번 '방음벽 설치'가 또 하나의 도시 문제인 소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답이 아니도록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항에서 잘못된 것은 그림에 '빵' '빵'이라는 경적소리를 표시한 것입니다.

운전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운전 중 경적은 아주 급한 일이 아니고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운전자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상황, 해서는 안되는 상황을 당연한 듯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이 문항을 풀어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적 소리를 울려도 되는구나로 알게 됩니다.

또 하나, 도시문제로 '소음 문제'를 등장시키기 위해 '빵' '빵'을 나타냈는데, 도시 문제에서 소음의 원인은 단지 자동차 경적소리가 아니라 자동차가 달릴 때 나는 소리 때문입니다. 자동차들이 경적을 하나도 울리지 않아도 도로와 만나는 주택가는 방음벽을 설치합니다.

이 문항에서는 아이들이 혹시라도 소음 문제에 대한 답을 잘못할까봐 친절하게 '빵' '빵'을 표시해서 오히려 아이들에게 운전할 때의 태도로 왜곡된 정보를 갖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빵' '빵'이라는 글씨 대신에 도로변에 있는 주택가를 자세히 나타내주었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이 문항에서는 이 그림에서 도시 문제를 '교통 체증'과 '소음 문제'로 몰아갔는데, 그림에 나타난 도시 문제를 하나 더 얘기해 보면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공기 오염' 문제도 있습니다. 해결하는 방법으로 도로변에 나무를 많이 심어 공원을 만든다든지, 자동차 연료로 오염이 적은 천연 연료를 개발하여 사용한다는지, 자전거 타기 운동을 한다든지 하는 것도 있습니다. 자동차와 관련한 도시 문제로 공기 오염 문제가 매우 심각한데 이 평가 문항에서는 빼고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아닌' 것을 고르는 문항의 문제입니다

문항 출제자가 넷 중 하나를 아닌 답으로 제시할 때 보면, 답을 쉽게 맞추려고 일부러 그렇게 낸 것인지는 몰라도 아닌 답을 보면 참으로 어이가 없는 것이 많습니다.

14번 문항의 정답 역시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적당하지 '않은' 것이 ②번 '자동차 연료비 인하하기'인데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시 문제의 하나인 교통체증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반대로 '자동차 연료비를 인상하면 된다'는 말이 성립된다는 얘기입니다.

도시의 교통 체증 문제는 교통 체증의 근본 원인을 밝혀서 그에 맞는 해결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평가 문항을 보면 교통 체증의 원인을 단지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개인 운전자 탓으로만 돌리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풀다 보면, 아이들은 차가 막혔을 때, 그 탓을 승용차 운전하는 사람들에게 돌리고 공연히 운전자들을 욕할 수밖에요. 요즘 어른들이 그러듯이 말입니다.

제가 이런 평가 문항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니까, 어떤 분들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다', '초등학생 문제를 뭐 그렇게 깊게 생각하느냐 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중등에서도 물론이지만 초등학생들의 문제라 해서 평가 문항을 아무렇게나 출제해서는 안 되지요. 오히려 초등학생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세상에서 보고 겪은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때라서 초등학생들의 문제는 중등학생들과는 달리, 좀 더 깊이 생각해서 출제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볼수록 어이가 없고 위험해서 일제고사를 자꾸 반대할 밖에 없게하는 일제고사 평가 문항 문제에 대해서 다음에 계속 얘기해 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볼수록 어이가 없고 위험해서 일제고사를 자꾸 반대할 밖에 없게하는 일제고사 평가 문항 문제에 대해서 다음에 계속 얘기해 보겠습니다.
#일제고사 #진단평가 #평가문항분석 #교육과학기술부 #초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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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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