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27) 수신(修身)

[우리 말에 마음쓰기 600] ‘도강(渡江)’과 ‘강 건너기’

등록 2009.04.05 13:01수정 2009.04.05 13:01
0
원고료로 응원

 

ㄱ. 수신(修身)

 

.. 공자의 이 말은 참으로 지당한 말이었기에 천고의 명언으로 굳어져 후인들이 대를 이어 수신(修身)의 교훈으로 삼아 왔다 ..  《구 원/김태성 옮김-반 처세론》(마티,2005) 15쪽

 

 '지당(至當)한'은 '마땅한'이나 '옳은'으로 고칩니다. "천고(千古)의 명언(明言)"은 "세상에 둘도 없는 훌륭한 말씀"이나 "오래도록 훌륭한 말씀"으로 다듬고요. '후인(後人)'은 '뒷사람'으로 손질하고, '교훈(敎訓)'은 '가르침'으로 손질해 줍니다.

 

 ┌ 수신(修身) : 악을 물리치고 선을 북돋아서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양함

 │   - 제가는커녕 수신도 못하는 위인들이

 │

 ├ 수신(修身)의 교훈으로

 │→ 몸을 가다듬는 가르침으로

 │→ 매무새를 추스르는 가르침으로

 │→ 몸가짐을 바로잡는 가르침으로

 └ …

 

 몸이나 마음을 닦는 일이라면, 이러한 매무새 그대로 '닦다'라는 우리 말 한 마디면 넉넉합니다. 또는 살을 붙여서 '갈고닦다'라 해 보아도 어울립니다. 글흐름을 헤아리면서 '가다듬다'라든지 '추스른다'라든지 '바로잡다' 같은 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다독인다'거나 '북돋운다'거나 '고친다'든가 '여민다' 같은 말을 넣어도 괜찮습니다.

 

 ┌ 제가는커녕 수신도 못하는 위인들

 │

 │→ 집안은커녕 제 몸뚱이도 못 다루는 사람들

 │→ 집살림은커녕 제 몸 하나 간수 못하는 바보들

 └ …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한문이 있습니다. 중학교 때였나 이 한문을 처음 배웠을 텐데, 이 말은 우리 말이 아닙니다. 한문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하든가요? 이 말 또한 우리 말이 아닌 바깥말이듯,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같은 말을 여느 사람들은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 말'로 다시 풀어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이런 말씀씀이를 돌아볼 수 있다면, '수신'이든 '제가'이든 '치국'이든 우리 삶터나 삶자락이나 어디에나 썩 알맞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몸다스리기'와 '집다스리기'와 '나라다스리기'와 같이, 우리들 누구나 곧바로 알아차리면서 넉넉히 주고받을 수 있는 말로 나아가야 한다고 깨닫게 됩니다.

 

 나부터 즐겁고 수월하고 아름답고 살갑다고 느끼도록 말하고 글써야 합니다. 나부터 사랑하고 아끼고 보듬을 수 있는 말과 글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학문이요 책이요 기사요 교과서요 방송이요 지식이요 종교요로 이어집니다. 첫 자리 우리 말을 알뜰히 살피지 못하면, 다음 자리 일은 죄다 꼬이고 비틀리고 맙니다.

 

 

ㄴ. 도강(渡江)

 

.. 서울은 수복되었으나 아직은 도강(渡江)이 금지되어 있었다 ..  《김병걸-실패한 인생 실패한 문학》(창작과비평사,1994) 179쪽

 

 "금지(禁止)되어 있었다"는 "할 수 없었다"나 "못하게 막았다"로 다듬습니다. '수복(收復)되었으나'는 '되찾았으나'나 '도로 찾았으나'로 손질해 봅니다.

 

 ┌ 도강(渡江) : 강을 건넘

 │   - 한강 도강 / 아이들과 위험한 도강을 했던 그 강변

 │

 ├ 도강(渡江)이 금지되어 있었다

 │→ 강을 못 건너게 되어 있었다

 │→ 강을 못 건너게 막았다

 │→ 강을 건널 수 없었다

 └ …

 

 미국으로 가는 일을 한자말로 '도미'로 적고, 일본으로 가는 일을 '도일'로 적습니다만, 이런 낱말로 적기보다는 '미국 가다'와 '일본 가다'로 적어야 알맞다고 느낍니다. 강을 건널 때에도 그래요. 우리는 "강을 건넜습니다"처럼 적으면 그만입니다. 구태여 '건널 도(渡) + 냇물 강(江)'으로 적지 않아도 됩니다.

 

 ┌ 강건넘

 ├ 나라건넘

 │

 └ (무엇/어느 곳) + 건넘

 

 굳이 한 낱말로 추슬러야 한다면, '강건넘'쯤으로 새 낱말 하나 빚어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이런 말짜임을 살려 '나라건넘'이라 해 보면, 나라밖으로 배우러 가는 일이나 나들이 가는 일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 한강 도강 →한강 건너기 / 한강 가로지르기

 └ 위험한 도강을 했던 그 강변 → 아슬아슬 건넜던 그 강가

 

 조금 더 헤아려 보면, 강을 건너는 일은 딱히 한 낱말로 삼아서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 물을 건너는 일도 그렇습니다. 다리를 건너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예 "강을 건너다", "다리를 건너다", "냇물을 건너다"라 말하면 됩니다. 괜히 이런 말투를 버리고 한 낱말이라는 틀에 매이다 보니 얄딱구리한 말을 쓰게 될 뿐더러, 우리 스스로도 좀더 알맞고 살가운 말투를 잃게 되어요.

 

 어느 나라 말이든 그 나라 사람들 삶을 담아내면서 그 나라 사람들 넋을 살찌우는 말입니다. 어느 겨레 말이든 그 겨레 사람들 삶을 펼쳐 보이면서 그 겨레 사람들 얼을 키우는 말입니다. 이러한 밑바탕을 돌아보지 않고 얕은 지식조각이나 섣부른 지식부스러기로 아무렇게나 말을 하고 글을 쓰고 만다면, 한 나라와 한 겨레 넋과 얼은 어떻게 될까요. 얼마나 무너지고 얼마나 고달프며 얼마나 엉망진창이 되어 버릴까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9.04.05 13:01ⓒ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4. 4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5. 5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