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노 전 대통령을 동정할 수 없는 까닭

비교우위는 절대선이 아니다

등록 2009.04.08 10:37수정 2009.04.08 10:37
0
원고료로 응원

검찰. 5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자세로 수사에 임하길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박연차씨와 강금원씨의 비자금을 수사하는 검찰의 태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검찰의 수사는 피의자의 범법 혐의가 어느 정도 노출된 상태에서 착수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옳다.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이 피의자를 수사하는 것은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한 법적 증거 확보 과정이므로, 혐의가 노출되지 않았거나 피의자에 대한 피해자나 제3자의 고소 고발이 없는 상태에서 검찰이 단지 수사대상자(이 상태에서는 피의자나 용의자가 아니다)의 범법 행위에 대한 의심이나 막연한 개연성만으로 수사에 임하게 된다면 표적수사 시비가 불거질 수밖에 없고, 만에 하나 수사 대상자가 무고하다면 당사자에 심각한 인권 침해나 명예 훼손의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공정해야 할 국가 공권력의 남용이며 사법정의 구현에도 어긋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이 박연차씨와 강금원씨를 집요하게 추적하여 불법행위를 밝혀낸 것은 검찰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기보다는 정권의 구미에 맞춘 기획수사이며 표적수사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검찰의 잘못된 태도를 지금 비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번 표적수사의 대상자가 전직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고로 검찰은 현 대통령과 가족 그리고 측근들에 대해서도 퇴임 이후에 지금과 같은 자세로 비리와 비위를 파헤쳐주리라 기대한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은 일반인보다 엄한 사법적 잣대와 도덕적 잣대로 감시해야 하고, 퇴임 후에는 임기 중에 자행된 모든 권력형 비리와 비위 행위에 대해 사법적, 도덕적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법치의 취지에 부합되므로 이명박 대통령뿐 아니라 그 후의 대통령들에게도 지금과 같은 집요한 자세로 권력의 비리를 낱낱히 수사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노무현 지지자가 노무현을 망쳤다

 

민주개혁세력 지지자의 한 사람으로서 박연차씨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백을 접하는 심경은 착잡하고 당혹스럽다.

 

그 동안 노 전 대통령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시비는 분분했을지라도, 청렴과 도덕성에서 만큼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아마도 많은 지지자들은 "노전대통령이 퇴임 직후 조카사위가 박연차씨로부터 500만 달러를 수수한 것을 인지했다"는 문재인 전 수석의 발표를 접하면서도 '적어도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불법 자금을 챙긴 것은 아니니까...'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대통령의 임기 말인 2005~6년 미처 갚지 못한 빚을 해결하기 위해 부인 권양숙 여사가 부탁하고 받았다는 노전 대통령의 직접 고백은 '노 전 대통령은 청렴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믿음에 종지부를 찍게 하고 말았다.

 

<정상문 비서관이 혹시라도 자신이 한 일로 진술하지 않았는지 걱정>이라며 자신의 잘못을 부하에게 떠넘기지 않고 몸소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이는 노 전 대통령의 살신성인을 "역시 진실하다"거나 "재임 중 얼마나 청렴했으면 빚이 남아 있겠는가?"라며 칭찬하는 시각도 없지 않지만 나는 노 전 대통령의 고백과 사과에 전혀 감동을 느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 잘못을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현 대통령이나 역대 타 대통령의 부패와 비견하여 상대적으로 도덕적 우월감까지 피력하는 일부 지지자들의 행태에는 역겨움을 넘어선 토악질을 느껴야 했다.

 

검찰의 표적수사가 부당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설사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씨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았다고 해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청렴한 인물이라는 주장에 여전히 동의한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앞으로 얼마만큼의 비리가 또 드러나야 당신들은 그의 잘못을 인정할 것인가? 이럴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을 돕는 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친위 측근들과 묻지 마 지지자 바로 당신들이 망쳤다.

 

사과의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가 아는 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은 불의와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러한 믿음에 근거하여 타자(他者)의 비위와 비리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지며 분개하던 노 전 대통령의 기개는 충분히 분노할만 했으니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고 치자.

 

세력에서 수(數)에서 능력에서 거대 수구세력에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민주개혁세력을 구여권의 기득권이라거나 자신들만의 잣대로 세운 개혁 프레임에 맞지 않는다 하여 당을 나누고 편을 갈라섰던 그들이었다. 여권 인사가 정권과 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여 배신자로 몰아세우는가 하면 절대 열세였던 대선정국에서 여권 후보에게 힘을 보태주지 않기도 했었다.

 

그들은 거대 수구정권의 일방 독주를 견제할 민주개혁세력의 대동 결집이 필요한 시점에서도 홀로 마이웨이를 고수해 왔다. 그들 스스로의 마음 깊은 곳에 '차떼기와 티코떼기', '끝까지 잡아떼는 파렴치한과 어느 시점에서는 사실을 고백하는 양심' 정도로 비견할 수 있는 상대적인 비교우위를 절대적 선과 악으로 둔갑시켜 스스로를 정의로운 존재로 각인한 도덕적 우월감이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착잡하고 비통한 심정으로 모진 글을 써내려가면서도 노 전 대통령과 지지 세력이 민주개혁세력과 도저히 함께 갈 수 없는 인물이거나 세력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나 또는 우리들이 아니면 안된다"는 독선이 싫은 것이며, 부패와 구태를 청산하지 않고 인물을 내치려고 하여 끝없이 반복되는 분열과 대립의 마인드가 싫은 것이다.

 

이 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의 귀가 좀 순해지길 바란다. 타자에 대해서 특히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관대해지고 스스로에 대해서 좀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세워 민주개혁세력이 크게 단합할 밑거름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사람은 누구라 할지라도 결코 완벽할 수 없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것은 기개라고 할 수 있지만 사람에 대한 편견으로 사리 분별을 잃는 것은 어리석고 미련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4.08 10:37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박연차 #검찰수사 #불법자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와 음악 오디오 사진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다양성의 존중, 표현의 자유 억압은 절대 못참아,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아파트 놀이터 삼킨 파도... 강원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3. 3 이성계가 심었다는 나무, 어머어마하구나
  4. 4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5. 5 7년 만에 만났는데 "애를 봐주겠다"는 친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