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쓴 겹말 손질 (59) 길을 걷는 도중

[우리 말에 마음쓰기 603] ‘자아로 향하는 길을 걷는 도중’ 다듬기

등록 2009.04.08 11:50수정 2009.04.0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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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는 도중

 

.. 이처럼 의미 있는 역전 관계는 자아로 향하는 길을 걷는 도중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흔히 발생한다 ..  《가와이 하야오/햇살과나무꾼 옮김-판타지 책을 읽는다》(비룡소,2006) 125쪽

 

 "의미(意味) 있는 역전(逆轉) 관계(關係)는"은 "뜻있는 뒤집기는"으로 다듬고, "자아(自我)로 향(向)하는"은 "나한테 가는"이나 "나를 찾아가는"으로 다듬습니다. "결정적(決定的)인 순간(瞬間)에"는 '고비에'나 '고빗사위에'나 '아슬아슬한 때에'로 손보고, '발생(發生)한다'는 '일어난다'로 손봅니다.

 

 ┌ 도중(途中)

 │  (1) 길을 가는 중간

 │   - 나는 학교를 가는 도중에 친구를 만났다 / 시청으로 가는 도중에

 │  (2) 일이 계속되고 있는 과정이나 일의 중간

 │   - 강의 도중 / 근무 도중 / 회의 도중에 급한 연락이 왔다 / 식사 도중에

 │

 ├ 길을 가는 도중

 │→ 길을 가다가

 │→ 길을 가는데

 │→ 길을 가는 가운데

 └ …

 

 창작하는 글을 쓰는 분이나 번역하는 글을 쓰는 분이나, 국어사전을 제대로 찾아보는 일은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국어사전이 그리 올바르지 않고, 알맞지 않으며, 반갑지 못하기에 잘 안 찾아보는지 모릅니다. 국어사전을 애써 뒤적여 보았자 말을 좀더 알차게 배울 수 있지 않으니까요. 국어사전을 힘써 살펴 보았자 글을 한결 아름답거나 알맞게 익힐 수 있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아쉽고 모자라더라도 국어사전을 넘겨 보아야 합니다. 어설프고 어줍잖더라도 국어사전을 살펴야 합니다. 비록 얄딱구리한 대목이 많은 오늘날 우리 국어사전이지만, 얄딱구리한 대목이 무엇인지를 국어학자들이 알게 하는 한편, 우리 동무와 우리 뒷사람한테 국어사전 잘잘못을 깨우치면서 우리 나름대로 새 국어사전을 엮을 기틀을 닦아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나마 이런 국어사전이라도 뒤적일 줄 아는 우리 손길이었다면, "길을 가는 중간"을 뜻하는 '도중'을 넣는 "길을 가는 도중" 같은 말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참말 "길을 가는 도중"이라고 적어 놓으면 뭘 말하는 셈일까요. 무슨 소리가 되나요.

 

 ┌ 학교를 가는 도중에 → 학교를 가는 길에 / 학교를 가다가

 └ 시청으로 가는 도중에 → 시청으로 가는 길에 / 시청으로 가다가

 

 우리가 외국사람도 아니고, 한국사람인데, 한국사람 주제로 한국말을 엉터리로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외국사람도 아닌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엉망진창으로 해도 되겠습니까.

 

 엉터리 말을 하든 엉망진창 말을 하든, 서로 알아듣기만 하면 그만인 셈일까요. 터무니없는 말을 하든, 앞뒤가 어긋난 말을 하든 대충 쓰기만 하면 되는 셈인가요.

 

 아이들 앞에서 형편없는 말을 해도 괜찮은지요. 아이들 앞에서 욕지꺼리만 내뱉지 않으면 괜찮은지요. 아이들한테 우리 어른들 못난 말투를 고스란히 물려주어도 괜찮은지요. 늙으신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어설프고 모자란 말을 들려드려도 괜찮은지요.

 

 '역할'은 일본 한자말입니다. 그렇지만, 나날이 이런 일본 한자말을 일본 한자말로 느끼는 사람이 줄고, 이런 말을 왜 쓰지 않아야 한다고 외쳤는가를 잊는 사람이 늡니다.

 

 일본 한자말이라는 소리는, 우리가 일제강점기로 억눌려 있을 때 이 나라에 들어와서 쓰이게 되었다는 낱말이라는 얘기입니다. 일본이 미워서 이런 한자말을 쓰지 말자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 삶과 넋과 얼이 송두리째 짓밟히면서 우리 꿈과 우리 뜻과 우리 앞날을 조금도 펼치지 못하게 되었기에, 이제는 우리 꿈이며 뜻이며 앞날이며 아름답고 힘차게 가꾸는 우리 말을 쓰자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구태여 우리 삶을 억누르던 말을 쓸 까닭이 없고, 우리가 굳이 우리 꿈을 짓밟던 말을 쓸 일이 없으며, 우리가 괜히 우리 앞날을 가로막는 말을 쓸 구실이란 없습니다.

 

 ┌ 강의 도중 → 강의를 하다가 / 강의를 하는데

 ├ 근무 도중 → 일하다가 / 일하는데

 ├ 회의 도중에 → 회의를 하는데

 └ 식사 도중에 → 밥을 먹다가 / 밥 먹는데

 

 우리는 우리 삶을 살릴 말을 쓰면 됩니다. 우리 꿈을 이룰 말을 쓰면 됩니다. 우리 뜻을 펼칠 말을 쓰면 됩니다. 우리 앞날을 가꿀 말을 쓰면 됩니다.

 

 있는 그대로, 아낌없이, 꾸밈없이, 넉넉하게, 우리 생각이며 넋이며 얼이며 고이 담아낸 말을 주고받으면 됩니다. 우리 말로 우리 몸을 가꾸고 우리 마음을 다스리면 됩니다.

 

 우리가 우리를 알아 가도록 하는 말임을 느끼면 됩니다. 우리 생각이 튼튼해지도록 돕는 말이 무엇인가를 느끼면 됩니다. 나와 너를 찬찬히 돌아보면서 어깨동무하는 말은 어떠한가를 느끼면 됩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꾸준하게, 한결같이.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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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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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11:50ⓒ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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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중복표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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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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