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암으로 오르는 길. 길옆으로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안병기
돌배나무·동백나무가 아름다운 암자 초여름, 지리산 차일봉 아래 자리 잡은 천은사의 새벽은 싱그러웠다. 먼저 각성한 계곡 물소리와 새소리가 아직도 깜깜한 미망에 사로잡혀 있는 지리산의 봉우리들을 흔들어 깨운다. 어둠이 소스라쳐 저만치 달아난다. 물러나는 어둠의 뒤를 따라 나도 천은사를 떠난다. 가장 가까운 산내암자인 삼일암부터 들릴 것이다. 먼발치서 산 안개가 떠나가는 나그네를 배웅한다.
잠시 노고단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가다가 이내 오른쪽 숲길로 접어든다. 키 큰 소나무와 키 작은 잡목이 길을 사이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얼마 가지 않아 이번엔 꽤 너른 대숲이 나온다. 대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마음속 티끌들이 다 씻겨가는 것만 같다. 조금 더 올라가자 근래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연못이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물이 제법 맑다. 여태 씻지 못한 사바 세계의 찌꺼기들이 있거든 내게 주고 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연못 주위엔 키 작은 차나무들이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
돌계단에 올라서자 이윽고 삼일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흐트러짐 없이 꼿꼿한 자세로 좌정한 모습이다. 전각이라야 법당과 승방과 요사 3채뿐인 단출한 크기의 암자지만 제법 운치가 있다. 키가 족히 7~8m는 돼 보이는 입구의 커다란 돌배나무는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높이 4~5m가량 돼 보이는 동백나무도 자태를 뽐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