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업장 앞에 선 오대호 작가
이상기
인간 오대호는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대학 기계공학과에 들어갔다가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아 졸업을 하지 못했다. 이후 지방의 공대 기계과와 미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그는 1990년대 음성군 삼성면에 기계자동화 공장을 세워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IMF때, 받은 어음들이 부도나는 바람에 회사 문을 닫았다. 이후 2-3년 동안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이때 그는 부가가치 높은 사업이나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예술에서 길을 찾았다. 그 중에서도 예술의 3D 업종인 정크 아트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의 전공인 기계와 조소와 관련이 있다. 그 때가 1999년이었다. 몇 년 뒤 그는 음성군 읍성읍 가섭산 아래 집이 경매에 나온 것을 보고 그 집을 샀다. 이곳에서 그는 6년째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처음 정크 아트에 몰두하면서 그는 5년 뒤에 미술계에 입성하는 목표를 세웠다. 그 결실이 2004년 8월의 국제 마임페스티벌 초대전(춘천)과 10월의 Hi Seoul 페스티벌 초대전(서울)으로 나타난다.
이후 그는 매년 작품 전시회수를 늘려나간다. 2006년에는 함평 나비축제 초대전 등 5회, 2007년에는 서울 N 타워 정크 아트 특별기획전 등 7회 전시회에 참여한다. 2008년에 그는 전주, 아산, 의왕, 안양, 군산, 포항, 구미, 부천, 광주 등 지방 자치단체들로부터 초대를 받아 기획전과 초대전을 연다. 그런데 2009년 들어 자신의 작품 활동을 되돌아보면서 약간의 회의도 들었다고 한다.

▲ 작가 오대호가 아끼는 작품
이상기
이런 식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전시활동을 하면 축제조형물 제작자 밖에는 안되겠구나 하는 자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2009년부터 "정크 아트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예술로서의 가치 부여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3000여 점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 중 그의 작품이 많이 있는 곳이 전남 함평과 충북 청원의 청남대이다.
현재 서울의 갤러리에서 작가 오대호에게 접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작품에 대한 갤러리의 독점권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사실 예술가가 화상에게 코가 꿰이면 그의 작품성과 예술성은 죽는 경향이 있다. 다행히 오대호는 동생의 물질적인 지원으로 2005년부터 정크 아트 주식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를 새로운 문화 Fund로 만들어 나가는 게 정크 아트 작가 오대호의 목표이다.

▲ 에이엘씨 작품
이상기
필자가 동생의 후원을 받은 대표적인 미술가로 빈센트 반 고흐의 예로 들었더니 자신은 그런 차원은 못된다고 겸손해 한다. 또 오대호 작가는 고흐처럼 그렇게 괴팍한 성격을 지닌 것도 아니다. 후덕하고 겸손한 외모에 소탈한 차림이다. 그렇지만 그의 손을 거치면 나무와 고무 돌과 쇠 그리고 플라스틱이 새로운 예술로 탄생하게 된다. 그는 최근 에이엘씨라는 경량콘크리트를 이용한 작품에도 손을 대고 있다. 이것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그의 상상력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정크 아트의 선구자 오대호를 소개한다. 그는 현재 충북 음성에 정크 아트 주식회사를 세우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쓰레기 예술 또는 고물 예술로 불리는 정크 아트와 오대호의 작품 세계를 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정크 아트는 서양에서 비디오 아트만큼이나 주목받는 장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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