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가지 위에 눈 내렸나 하였더니 맑은 향 있으므로 꽃임을 알겠네…."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李奎報)의 한시 '배꽃(梨花)'의 일부분이다. 하얀 눈꽃을 닮은 이 배꽃이 남녘에 활짝 피었다.
전라남도 나주와 함께 배의 주산지로 꼽히는 순천시 낙안면 일대에 요즘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금전산과 오봉산이 감싸고 있는 낙안면은 우리들에게 '낙안읍성민속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 이 일대는 분지형 지형이어서 배의 품질이 좋고 당도도 높다고 소문이 나 있다.
저만치서 배꽃을 처음 본 순간, 밤 사이 때 아닌 하얀 눈이 내린 줄만 알았다. 그 풍경이 시선을 압도한다. 자연스레 발길이 멈춰선다. 금세 배꽃의 매혹적인 향기가 코끝을 파고드는 것 같다. 마음까지도 황홀해진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배꽃이 눈처럼 하얗다. 달빛처럼 환하다. 화려함도 매화와 벚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은은한 분위기는 여러 가지 봄꽃 가운데 으뜸이다. '꽃 중의 제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온통 새하얀 배꽃에 휩싸여 있다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내 몸이 착해지고, 마음까지도 새하얗게 변한 것 같다. 꽃잎 하나하나 훑어보니 가을에 탐스럽게 열리는 과일보다도 더 매력적이다.
Y자형으로 잘 가꾸어진 배나무 아래에선 풀이 적당히 자라 싱그럽다. 호밀인 것 같다. 호밀은 여름쯤까지 자라도록 놔두다가 베어 내 퇴비가 되도록 하는 작물이다. 호밀은 또 병충해가 나무로 올라가는 것을 막아준다. 여러 모로 배나무에 득이 된다.
새하얀 배꽃이 한참동안 넋을 앗아간다. 요즘 온 나라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에 비교할 수 없는 색다른 매력이다. 그것도 잠시. 인공수분을 앞둔 배나무에서 농부들의 진한 땀 냄새가 묻어나는 것 같다. 올 가을 풍성한 수확을 빌어본다.
배꽃이 활짝 핀 이곳 순천시 낙안면에선 오는 11일과 12일 이틀 동안 배꽃잔치가 열린다. 여느 축제에 비해 규모가 크진 않지만 실속 있다. 흩날리는 배꽃 아래서 듣는 기타 연주와 가야금 병창은 그윽한 멋이 있다. 관광객들을 봄의 향연으로 유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배로 만든 음식 수십 가지도 전시된다. 봄나물 캐기, 쑥 부침, 배 깍두기 담기 등 체험프로그램도 준비된다. 배꽃마을과 가까운 낙안읍성민속마을을 돌아보는 것은 덤이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널리 알려진 보성 벌교도 지척이다.
2009.04.09 09:35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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