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에 스러진 마흔 셋 친구야, 잘가라

친구 고 황호석 영전에 바침

등록 2009.04.14 14:09수정 2009.04.14 16:1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고 황호석

고 황호석 ⓒ 유성호

670410.
마흔 셋을 꽉 채웠다. 아직 채울 것이 많은 데 너는 족하다며 고개를 꺾었다. 마른 봄볕 한창인 4월 13일 오후 1시 40분. 너는 그렇게 갔다. 참 많은 걸 남겨놓고. 미처 마음의 준비를 못했기에 우리의 황망함이 더하다. 여기 몇 자 적어서 친구, 너를 기린다.  


황호석. 이름처럼 황소 같던 친구에게 병마가 찾아온 것은 지난해 7월 어느 날. 어깨 통증으로 간단한 물리치료를 받던 친구의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급히 집 근처 경찰병원에 입원했는데, 큰 병원으로 옮기라는 소리에 현대아산병원으로 이송했다.

허리와 다리가 아파 거동이 다소 불편했으나 무슨 병인지 아무도 몰랐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기에 직업에서 오는 만성적인 통증인가 싶었다. 그런데 며칠 후 백혈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나왔다. 가슴 졸이던 우리의 마음이 오그라들었다.

필요한 헌혈증을 모았다. 도움의 손길들이 바삐 움직여 급한 대로 230장을 모았다. 그러는 사이 본격적인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초기에 발견돼 다행이란 소리도 흘러나왔다. 6척 장신에 100kg이 넘는 기골을 가진 너였기에 완치에 대한 불안감은 추호도 없었다.

시간이 얼마 또 흘렀다. 너는 항암치료 여파로 머리를 짧게 깎고 우리를 반겼다. 가지런한 이를 내보이는 너의 살인미소에 우리는 또 한 번 완치의 확신을 가졌다. 낫겠지, 나을 거야, 걱정하지 말라며 우리를 위로하며 배웅하던 너의 모습.    

건강하던 몸에 이상...백혈병 진단


85kg. 체중이 줄었다. 식사도 잘하고 항암제 복용도 잘하고 있다. 8월말엔 집에 잠시 휴가를 나왔다. 40여 일 만에 돌아 온 집. 평안하다. 안락하다. 행복하다. 그날 너의 얼굴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병원서는 골수이식을 준비한단다. 골수은행을 통해 찾다가 적합자가 없으면 가족 중에서 기증자를 찾는다고 했다.

9월 초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골수은행을 통해 알아 본 결과 4명의 기증자가 있어 가능성을 엿보았고, 그중 한 분이 정밀검사 결과가 좋으면 흔쾌히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한가위가 끝나면 정밀검사 결과가 나오고 수술을 통해 완치의 기쁨을 맛볼 것이라 짐작했다.


추석이다. 병원에서 추석을 맞다니, 불효다. 그래서 네 얼굴이 편치 않았나 보다. 그래도 상태가 나빠지지 않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는 네 모습에서 오히려 우리가 위로를 받았다. 너는 웃었다. 너의 웃음은 환상이다. 우리의 심령을 정화시키는 명약이다.     

10월 7일. 환하던 네 얼굴이 오늘따라 다소 힘겨워 보인다.  골수이식 적합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적합도가 높아야 건강보험이 적용되는데. 천문학적인 치료비가 문제가 아니라 적합도가 높아야 수술 후 재발 위험성이 낮을 텐데.

입맛이 떨어졌다. 입안이 죄다 헐었다. 누룽지 삶은 걸 먹고 싶다고 했다. 친구들이 누룽지를 해다 줬다. 무쇠 솥에서 만든 진짜 누룽지다.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일어나야 하는데. 불뚝 일어나야 하는데.

갑자기 치료법이 바뀌었다. 골수이식보다 약물치료로 완치를 기대하는 게 좋다는 병원측 설명이다. 골수이식 수술을 통해 조속한 완치를 기대했던 우리는 실망했다. 그러나 너는 처음처럼 우리를 위로했다. 그리고 병원과 의료진을 믿었다. 한 점 의심도, 불만도 없이.

골수이식 수술의 희망을 바라보며

11월 18일. 너의 부재 속에 너를 위한 음악회가 열렸다. 투병을 위로하고 지친 가족을 격려하는 자리다. 참석자 1인당 일정 금액을 매칭펀드로 기부하는 형태다. 정원 600여 석의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강당에 너를 사랑하는 700여 명이 복도와 계단을 모두 채우고 한마음으로 쾌유를 기원했다. 너는 또 사랑의 빚을 졌다며 부인의 눈물을 통해 울었다.

12월 중순. 걷기가 힘들다. 다리 살이 심하게 빠지고 덩달아 힘도 없다. 7차 항암치료 중 3차를 마치고 '바닥을 기는' 시간이다. 항암제를 맞고 나면 일주일간 몸은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 괴롭다. 그러나 괴로워하지 말자. 나를 바라보는 가족, 은희, 규식이, 원식이가 있음을 기억하자. 너는 그렇게 이를 악 물었을 것이다.

힘들 텐데 목소리가 밝다. 내년 4월이면 항암치료가 끝난다며 "5월엔 집수리 봉사 나가야지"하며 껄껄 웃는다. 인테리어 생업도 미뤄둔 채 봉사현장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발 벗고 달려든 너이기에 듣는 이의 가슴이 뭉클하다.

2009년. 어느덧 해를 넘겼다. 그간 몇 차례의 항암치료가 있었고 불편한 다리는 나을 기미가 없다. 해가 바뀌자 병마와 장기전에 돌입하는 게 아닌가란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 가운데서 넌 이겨낼 것이라고 기도를 부탁했다. 우리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너의 믿음, 너의 헌신, 너의 아름다운 미소를 우리가 얕잡아 본 게 아닌지.

H병원 74병동 32호실. 인동초처럼 견디고 있는 너의 병실 창으로 짧은 겨울 햇살이 비춘다. 날이 갈수록 길어지는 햇살처럼 너의 생명줄도 그리되면 좋으련만. 5차 항암치료를 앞둔 2월 초,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의료진도 상황이 안좋은 쪽으로 전개되자 난감해 한단다. 다시 골수이식 수술 이야기가 나오는 등 불안이 엄습한다.

3월이다. 병실은 춘래불사춘이다. 항암제를 맞으려면 몸 상태가 좋아야 하는데, 아프다. 애써 웃음을 짓지만 미소가 예전 같지 않다. 그 모습이 가슴 아프다. 다시 골수이식 수술을 하자는 병원 측 방침이 선 모양이다. 처음 골수이식, 그다음 약물치료에서 다시 골수이식으로 치료법이 바뀌고 있다. 건강한 우리도 떨린다. 그런 너는 오죽했으랴.     

40도를 넘나드는 체온. 몸은 불덩이지만 오한으로 떨고 있다. 잦은 설사와 예측할 수 없이 들쭉날쭉하는 핼액 수치들. 가장 중요한 백혈구 수치가 잡히지 않고 있다. 미꾸라지마냥 우리의 기대를 빠져나간다. 침상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기복은 있지만 좋아지고 있다는 소식에 감사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불안하게 뒤바뀌는 치료법... 끝내 빛 되어 하늘로 

4월 초순. 부인에게 문자가 왔다. 네가 누룽지를 먹고 싶다고 했다며. 조금 좋아졌다는 소식도 함께. 이제는 그 짧은 문장이 어찌나 큰 기쁨인지.

"살아라, 살아야 한다. 호석아." 그렇게 밤마다 외쳤다.

3월 말이다.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며. 부인과 통화할 때면 울컥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만큼 상태가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고비가 있었다. 항암제가 전혀 듣지 않았다. 회진을 도는 의료진도 더 이상 너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했다. 환자를 고치지 못한 자책이 크리라. 그렇게 돌아서는 의료진에게 너는 말했다지.

"괜찮습니다. 괜찮아 질 겁니다. 잘 견디고 있습니다."

4월 12일 정오. 산소호흡기를 물렸다. 약도 물도 넘기지 못했다. 아무 것도 통하지 않는다. 오직 평강을 구할 뿐이다. 저녁 7시 30분 부인의 문자가 왔다.

'이 밤에 천국으로 이사할 것 같답니다.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함께 할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4월 13일 오후 1시 40분. 땅에서 하늘로 빛 한줄기 올랐다. 오열했다. 가난한 심령으로 태어나 가난한 이들을 돕다가 일찍 하늘로 불려 간 너를 못 잊는 사람들의 눈물이다. 봉사의 달인 고 이동상님에 이어 너마저 잃은 우리의 안타까움이다.

친구,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봉사 현장 이곳 저곳에 남아 있는 너의 땀방울이 이 사회를 따뜻하게 하는 온기가 될 것이다.

"친구, 네 바람도 그렇지?"

a  집수리봉사현장에서. 고인은 언제나 얼굴에 미소를 한 가득 머금고 제 일 처럼 봉사를 했다.

집수리봉사현장에서. 고인은 언제나 얼굴에 미소를 한 가득 머금고 제 일 처럼 봉사를 했다. ⓒ 유성호

#고 황호석 #백혈병 #봉사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4. 4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5. 5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