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191) 시범적

― ‘시범적으로 인터넷 중계를 한다’ 다듬기

등록 2009.04.14 09:17수정 2009.04.1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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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범적 : 시범적으로 인터넷 중계를 한다

 

.. 이번에 시범적으로 인터넷 중계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처음에 연주한 에튀드 두 곡은 그야말로 최고였습니다! ..  《이시키 마코토/박선영 옮김-피아노의 숲 (15)》(삼양출판사,2008) 172쪽

 

 '연주(演奏)한'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친'이나 '들려준'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최고(最高)였습니다'는 '으뜸이었습니다'나 '훌륭했습니다'나 '가장 멋졌습니다'로 손질합니다.

 

 ┌ 시범적(示範的) : 모범을 보이는

 │   - 시범적 운영 / 영어 교육이 몇몇 초등학교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 시범(示範) : 모범을 보임

 │   - 시범 경기 / 시범을 보이다 / 어린이들의 태권도 시범이 있겠습니다

 │

 ├ 이번에 시범적으로

 │→ 이번에 시범으로

 │→ 이번에 한번

 │→ 이번에 처음으로

 │→ 이번부터 한번

 │→ 이번부터

 └ …

 

 모범(模範)을 보인다는 '시범'입니다. 그러고 보니 '보일 示'라는 한자가 앞에 나와, "보이다 + 모범"이 '시범'이었군요. '모범'이란 무엇이냐 싶어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본받아 배울 대상"을 두고 '모범'이라 한답니다. 그러면 "본받아 배울 대상을 보이는" 일이 '시범'이요 '시범적'이라고 할 수 있군요.

 

 그러나 "시범 경기"나 "시범 지역"과 같은 자리에 쓰인 '시범'은 국어사전 말풀이하고는 좀 동떨어졌다고 느낍니다. 아무래도 우리 말 '맛보기'쯤으로 풀어내어야 올바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는 '한 번 해 보는'이나 '미리 치르는'으로 풀어내든지요.

 

 ┌ 시범적 운영 → 시범 운영 / 한번 꾸려 봄 / 맛보기로 이끌어 봄

 └ 시범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 맛보기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범적으로' 무엇인가를 한다고 할 때에는 '한번'이라는 낱말을 넣어 봅니다. 아직 소매 걷어붙이고 할 만하지는 않으니, '어떤 일인가를 미리 알아보고자' 한다는 뜻에서 '한번'을 넣으면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으레 "자, 내가 한번 해 보지." 하고 이야기하니까요. 이때 쓰인 '한번'은 "자, 내가 시범으로 해 보지."나 "자, 내가 시범적으로 해 보지."나 "자, 내가 시험 삼아 해 보지." 하고 똑같은 뜻입니다. 엇비슷한 뜻과 느낌으로 '먼저'나 '미리'를 넣어도 어울립니다.

 

 보기글에 쓰인 "시범적으로 인터넷 중계를 한다고"에서는 "처음으로 인터넷 중계를 한다고"나 "처음으로 한번 인터넷 중계를 한다고"나 "맛보기 삼아 인터넷 중계를 한다고"로 풀어내 볼 수 있습니다.

 

 ┌ 한번 하기

 ├ 맛보기로 하기

 ├ 먼저 하기

 ├ 미리 하기

 ├ 처음으로 하기

 └ …

 

 알맞는 낱말을 알맞는 자리에 넣어야 합니다. 알맞는 말투로 알맞는 느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예부터 고이 이어오면서 쓴 알맞는 낱말과 말투가 있을 때에는 이러한 낱말과 말투를 잘 살피고 살리면서 우리 생각과 마음을 나타내 주면 됩니다. 우리한테 알맞는 낱말과 말투가 없을 때 비로소 바깥말을 살피고 돌아보면서 우리가 받아들여서 생각과 마음을 살찌울 수 있다고 느껴지는 낱말과 말투를 추리면 됩니다.

 

 괜스레 이 말 저 말 생각없이 받아들이지 않도록 매무새를 다스릴 노릇입니다. 낱말수가 많다고 하여 훨씬 훌륭하거나 뛰어난 말이 아닌 만큼, 쓸데없이 어중이떠중이 낱말과 말투를 끌어들일 까닭이란 없습니다. 쓸 만하니까 쓴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들 말씀씀이를 되짚어 보면, 제자리를 잃고 제걸음을 잊은 낱말과 말투가 아무 곳에서나 함부로 쓰이고 있습니다.

 

 업은 아기를 동네방네 뛰면서 찾는다고 하듯, 우리 스스로 우리 품에 고이 안고 있는 넉넉하고 살가운 낱말과 말투를 우리 스스로 잊거나 잃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생각과 마음을 우리 말로 나타내지 못하고 우리 글로 옮겨적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 말과 글뿐 아니라 우리 넋과 얼 모두 헝클어지고 있습니다. 말과 글을 잃는 겨레는 가엾고 딱하지만, 넋과 얼을 잊은 겨레는 훨씬 불쌍하고 안쓰럽습니다. 넋과 얼을 잊어 말과 글을 잃는 겨레한테 어떠한 보람이 있고 어떠한 즐거움이 있으며 어떠한 아름다움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참멋과 참맛을 차근차근 다스리면서, 싱그러운 말멋과 말맛을 차릴 수 있는 우리들로 다시 태어날 때를 고이 기다립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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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4 09:17ⓒ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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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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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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