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의 다른 글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우리 부부가 1991년 3월 9일 결혼하고 신혼살림을 시작한 집은 송파구 석촌동의 어느 단독주택의 반지하였습니다. 그 집은 남편회사가 도보로 5분 이내 거리에 있는, 남편이 결혼하기 전까지 1층 주인집 거실과 연결된 방 한칸에서 보증금 1000만 원에 자취생활을 하던 집이었습니다. 자취방은 화장실이 반지하에 따로 떨어져 있었고, 난방도 주인집 보일러와 연결되어 있어서 총각 혼자 자취방으로는 그런대로 무난하게 살 수 있었지만, 한 가족이 살림을 차리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집이었습니다.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둔 30대 후반의 안주인은 1년 가까이 과묵한 총각을 지켜보고는 나름 맘에 들었는지 애인이 없으면 좋은 아가씨를 소개해 주겠다고도 했답니다.그 총각이 저와 결혼을 하게 되어 1층 자취방을 떠나고자 했을 때, 주인 아주머니는 때 마침 반지하에 자취하던 학생들이 이사를 가게 되었다며 그곳에서 신혼살림을 차리면 안되겠냐고 하더랍니다.평소 색다른 반찬이라도 만들면 맛 보라며 전해 주던 주인 아주머니와의 따뜻한 정도 있었고, 회사에서 아주 가깝다는 이유로 보증금을 500만 원 더 올려주고 반지하 방 이사를 결정했습니다.그 단독주택은 1층은 주인집이, 2층에 1가구가 세들어 살고, 반지하에는 우리집을 포함하여 4세대가 살고 있어서 총 6세대가 사는 집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게 된 반지하 신혼집은 주인집 대문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난 현관문을 열고 두 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왼쪽으로는 싱크대가 있는 부엌이 시작되고, 맞은편은 세탁기와 기름보일러가 설치된 화장실, 오른쪽으로는 작은 방, 그리고 싱크대가 끝나는 곳에는 안방으로 들어가는 방문이 있었습니다.안방에 앉아 바깥을 향한 창문을 바라보면 주인집 마당이 위치하고 있어서, 간혹 마당을 오고가는 사람들의 다리가 보이곤 했습니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다리가 보이던 반지하 신혼집골목길 반지하집에는 총 4가구가 살았습니다. 건너편 옆집 반지하에 세들어 사는 종국이네를 선두로 바로 옆방에 살던 수민이네, 그리고 저는 한달 간격으로 첫아이를 낳은 젊은 새댁들이었습니다. 새댁들은 아이들중 누가 갑자기 설사를 하거나 열이 나면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이런저런 조언을 듣기도 하고, 아기에게 예방접종을 맞추기 위한 정보도, 보건소 위치를 확인하는 것도, 이유식을 먹이는 시기와 만들어 먹이는 법을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신랑들이 출근한 아침이면 부지런히 설겆이와 청소를 마치고 빨래를 삶아 세탁기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현관문 밖 골목길에 건조대를 내어놓고 빨래를 널었습니다. 그리고 별다른 일이 없으면 함께 모여 차를 마시기도 하고, 비가 내리는 날은 부침개를 부쳐 나눠 먹기도 했습니다.해가 질 무렵이면 골목으로 나 있는 현관문을 통해서 각자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음식냄새로 오늘은 수민이네가 된장찌개를, 종국이네는 김치찌개를 끓인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김치라도 담구는 날이면 맛을 보라면 서로 김치를 나눠 먹던 새댁들과는 달리,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우리집과 현관문을 마주 보는 유리네는 새댁들이 쉽게 말을 걸기 어려운 집이었습니다. 위로 5살쯤 된 아들과 두 돌쯤 되었을까? 자박 자박 걸어다니는 딸 유리를 둔 엄마는 툭하면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해서 골목 분위기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하고는 했습니다. 아직 어린 아들에게 학습지 공부를 시키면서 이것도 모르냐고 매를 들기 일쑤였고, 외출하기 위해 현관문을 잠그는 동안 소리없이 사라졌다고 유리의 등짝을 후려치기도 하여 새댁들을 긴장시키기도 했습니다. 늦은 저녁에는 유리 아빠와 잦은 부부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새댁들이 듣기 민망할 정도의 험한 말도 유리아빠에게 곧잘 쏟아 부어 골목길 새댁 남편들에게도 유리엄마는 인기없는 사람이었습니다.그런 유리엄마가 저와 조금은 마음을 터놓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우리집 저녁메뉴로 육개장을 끓이던 날, 골목길에 육개장 냄새로 진동하게 되어 작은 냄비에 육개장을 담아 유리엄마에게 맛을 보라며 전해 주었더니, 그후 유리엄마는 저에게만은 가끔씩 속에 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고는 했습니다.그동안 가난한 집에 맏며느리로 힘들게 살아 온 이야기, 유리의 돌날 달랑 금반지 1돈 가져오면서 10명도 넘는 친구들을 데려왔다는 시아버지 이야기, 자그마한 건축사무실에 다니는 유리아빠의 만족스럽지 못한 수입 등이 유리엄마가 신경을 곤두서게 했던 이유인듯 보였습니다.속내 털어놓던 유리엄마, 정 많던 주인 아주머니 잘 살고 있을까1년 동안 살았던 반지하집에서의 생활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장마철이 되어 많은 장대비라도 쏟아지는 밤이면 행여 하수구가 막혀 우리집으로 빗물이 스며들까봐 남편과 저는 여러번 잠에서 깨어 밖을 내다보기 일쑤였고, 겨울이면 환기가 제대로 되지않아 장롱뒤와 천정에 시커먼 곰팡이가 잔뜩 피어 돌도 안된 어린 딸을 둔 우리 부부로서는 내내 찜찜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의 일만 제외하면 비슷한 또래의 이웃들과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살아가는 반지하방에서의 생활이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92년 3월, 남편의 회사가 성남에 있는 공단으로 이사를 하면서 우리집도 회사가 가까운 성남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떠나는 것을 많이 섭섭해 했던 주인 아주머니를 비롯하여, 골목길의 가족인 종국이 엄마, 수민이 엄마, 그리고 유리엄마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성남으로 떠나 온 후 지금까지 20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건만 가끔씩 그 골목길 식구들의 안부가 궁금해 지고는 합니다.우리 딸아이를 서로 며느리 삼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던 종국이네와 수민이네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종국이와 수민이는 어떤 모습으로 잘 자랐을지… 유리엄마는 좀 더 편안한 얼굴로 살 수 있을만큼 형편은 나아졌는지… 신혼여행에서 돌아 온 우리 부부에게 결혼 선물로 커다란 스테인리스 주전자를 사 준 주인아주머니는 지금도 그 집에 살고 있는지… 초등학교에 다니던 주인집 두 딸아이는 이제는 어엿한 아가씨가 되었을 텐데 어떤 모습인지… 가끔씩 생각이 납니다.지금도 스테인리스 주전자에 끓인 무우차를 컵에 따라 마실 때면, 정월 대보름날 아침 여러가지 나물과 차르르 윤기가 흐르는 찰밥을 쟁반에 담아 건네 주던 살가운 주인 아주머니의 안부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세입자 이야기" 응모글 덧붙이는 글 "세입자 이야기" 응모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반지하 #석촌동 #스텐레스 주전자 추천136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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