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러운 돌담, 누가 허물었나?

'슬로시티' 담양 창평 돌담 일부 허물어져... 복원 시작

등록 2009.04.18 18:48수정 2009.04.18 18:48
0
원고료로 응원
a

예스러운 돌담. '슬로시티'로 지정된 담양 삼지천 마을의 돌담이다.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 이돈삼


여행길에 돌담길이라도 만나면 마음이 먼저 반긴다. 아름다움과 예스러운 정취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면 애틋한 감정까지 묻어난다. 이런 연유인지 최근엔 '돌담문화재'라는 게 생겼다. 문화재청이 역사의 가교를 잇는 근·현대에 쌓여진 돌담을 문화재로 지정·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곳 가운데 하나가 전라남도 담양 삼지천 마을의 돌담길(등록문화재 265호)이다. 이 돌담은 전형적인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모나지 않은 화강석 계통의 둥근 돌을 사용하고 있다. 돌과 흙을 번갈아 쌓아 줄눈이 생긴 담장도 있고, 되는 대로 쌓은 담장도 있다.


담 아래에는 큰 돌, 위로 갈수록 작은 돌과 중간 정도의 돌이 사용됐다. 마을 안길을 따라 S자형으로 자연스럽게 굽어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해 준다. 돌담의 길이가 자그마치 3㎞를 넘는다. 돌담은 또 여러 채의 전통 한옥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전통마을의 가치도 높여주고 있다.

이 돌담은 담양군 창평면을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하게 만든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겉으로 드러난 돌담은 옛 가옥과 함께 '슬로시티' 창평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최근 이 돌담 가운데 일부가 공사업체에 의해 허물어져 창평을 아끼고 돌담을 사랑하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a

돌담과 어우러진 고택. '슬로시티'로 지정된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이다. ⓒ 이돈삼


a

돌담길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는 알림판.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에 서 있다. ⓒ 이돈삼


며칠 전 삼지천 마을에서 소공원 조성 공사를 하던 한 업체가 이곳 돌담 30여m를 허물어버린 것. 사립문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다. 지난 2월 담양군과 계약을 맺은 이 업체는 1억 원을 들여 동상과 사립문을 설치하고 나무를 심는 등 주변 환경을 정비해 왔다.

게다가 이 일대는 문화재청에 의해 지표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 창평현원 복원을 위한 작업이었다. 마땅히 조사가 끝날 때까지 원형대로 보존해야 했다. 이와 관련 담양군은 공무원의 지시를 받고 철거가 이뤄졌는지, 공사업체의 착오였는지 자세한 철거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담양군 관계자는 "철거된 부분은 돌담에 시멘트 기와가 올려져 있어 한옥 기와로 대체할 계획이었다"면서 "지표 발굴조사가 끝난 뒤 보수작업을 벌이려고 했는데, 업체와의 의사소통이 잘못돼 빚어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라남도는 고증자료를 활용, 훼손된 돌담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키로 하고 18일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했다. 이 작업에는 전남도 문화재위원인 박강철 조선대 교수와 김희우 호남대 교수 그리고 전통 담 시공기술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전남도는 또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행정절차를 제대로 지켰는지 자체 감사를 하고, 관련 공무원을 문책하도록 담양군에 지시했다. 담양군의 자체 감사 결과가 미흡할 경우 직접 감사에 들어가겠다는 게 전라남도의 방침이다.

a

허물어진 돌담을 복원하던 사람들이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있다. 오른쪽 끝에 보이는 부분이 며칠 전 허물어졌다가 18일부터 다시 쌓고 있는 곳이다. ⓒ 이돈삼


a

18일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마을. 허물어진 돌담을 다시 쌓고 사립문을 설치하는 공사가 펼쳐지고 있다. ⓒ 이돈삼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돌담이다. 담장은 돌과 흙을 번갈아 쌓은 토석담. 아래는 비교적 큰 화강석을, 중단 위로는 어른 주먹만 한 정도의 돌을 쌓아 올렸다. 담 위에는 또 기와로 지붕을 얹기도 했다.

야트막한 돌담 위로는 빨갛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담장 위에는 또 호박 덩굴이 늘어져 있었다. 돌담으로 이어진 마을이 푸근하고 정겨운 이유다. 그 담장 너머로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같이 놀기를 권하기도 했다.

하여 돌담은 추억의 공간이다. 그리움이다. 정갈하면서도 아름다운 돌담길은 추억의 풍경이다. 요즘엔 도회지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게 돌담이다.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닥치는 대로 초가집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면서 사라져버렸다.

깔끔하게 정비하는 것도 좋고, 허물어진 곳을 보수하는 것도 좋다. 관광자원으로 만들어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관광자원화 한다는 미명 아래 무조건 개·보수하고 정비하는 일은 자제됐으면 좋겠다. '슬로시티'답게….

a

돌담. 같은 돌담이어도 격이 다르다. '문화재'다. '슬로시티' 담양 삼지천마을 돌담길이다. ⓒ 이돈삼


a

'슬로시티'로 지정된 전남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마을에는 전통가옥과 어우러진 돌담을 보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 이돈삼


#돌담길 #돌담문화재 #슬로시티 #창평 #돌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아파트 놀이터 삼킨 파도... 강원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3. 3 나의 60대에는 그 무엇보다 이걸 원한다
  4. 4 이성계가 심었다는 나무, 어머어마하구나
  5. 5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