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쁜 벤치마킹

등록 2009.04.20 09:32수정 2009.04.2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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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개별꽃

개별꽃 ⓒ 안병기

개별꽃 ⓒ 안병기

 

 

꽃 나라에서 실시되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개별꽃은 

선거운동 와중에

다른 후보로부터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자신의 이름을 도명(盜名)했다는 혐의였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억울한 누명이다

당신이, 별꽃이란 꽃이

어떻게 생겨먹은 꽃인지 난 모른다

우연히 스친 적도 없다

게다가 유권자의 혼동을 줄여주려고

개자 접두어를 덧붙이는 등 

나름대로 성의까지 표시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남의 이름을 불법 차명했다고

끝내 내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덧씌운다면

이 나라의 정치 도의는 막장이라 할 것이다

 

날 함부로 허위 비방하지 말라

난 절대 남의 이름 따위나 도용하는 

파렴치한 꽃이 아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일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내가 다른 꽃의 이름을 도용한 것이라는 판정을 내리면

내 성을 갈든가

즉각 정계에서 은퇴하겠다 

그리고 재단을 만들어서

꽃수술만 빼고

나머지 전 재산을 반드시 이 사회에 헌납하겠다

 

개별꽃의 이런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꽃 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개별꽃이 별꽃의 이름을 표절한 것이라는,  

따라서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개별꽃은 결국 후보를 자진 사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재산을 헌납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올봄,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개별꽃은

여전히 건재한 모습이다

재산 헌납 약속은 어찌 돼 가는지

줄기 꽃받침 꽃잎 꽃수술 등

내가 작년에 들여다봤던

그의 재산 가운데 하나도 축난 게 없는 듯하다고 했더니  

개별꽃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하길

그 세련된 정치기술

모두 인간세상에서 배운 것이라 말한다

사람 사는 세상이나

꽃들 사는 세상이나 어찌 그리 한결같은지

선거 중에 한 약속은 왜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지.

 

2009.04.20 09:32ⓒ 2009 OhmyNews
#개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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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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