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버린 우리 말투 찾기 (14) 깊은 통찰을 제공

[우리 말에 마음쓰기 614] '삶의 양식의 변화와 함께'는 무슨 소리일까

등록 2009.04.20 16:08수정 2009.04.2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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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 티베트에서 나온 최근의 정보는 중국이 티베트인에게 부여한 간접세의 징수에 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폴 인그램/홍성녕 옮김, 알마, 2008) 122쪽

 

"티베트에서 나온 최근(最近)의 정보"는 "요사이 티베트에서 나온 정보"로 손봅니다. '티베트인(-人)'은 '티베트사람'으로 손질하고, "부여(附與)한 간접세의 징수(徵收)에 관(關)한"은 "내도록 한 간접세와 얽혀"나 "내게끔 하는 간접세가 어떠한지"로 손질해 줍니다.

 

 ┌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

 │→ 깊이 생각하게끔 한다

 │→ 깊이 꿰뚫어보게 한다

 │→ 깊이 살펴보도록 한다

 └ …

 

어릴 적부터 말을 알맞게 배우지 않았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말을 알맞게 하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대학교를 나오고 나라밖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여도, 지식은 쌓되 말씀씀이를 알뜰히 배우지 않았다면, 자기가 얻은 지식을 알뜰히 펼치는 글쓰기나 말하기는 하지 못합니다.

 

영어를 아무리 잘하고 한문을 아무리 많이 외웠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말과 글을 알뜰히 익히지 않았으면, 나라밖 책을 우리 말로 옮길 때에는 엉터리가 되기 일쑤입니다. 어쩌면, 나라밖 책에 적힌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모르며,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엉성하게 옮길밖에 없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 깊은 깨우침을 던져 준다 (x)

 ├ 깊은 생각을 건네준다 (x)

 └ …

 

보기글을 보면, '洞察'과 '提供'이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요즈음 번역가들은 이러한 낱말은 잘 안 쓰고 '깨우침-생각'이나 '던지다-건네다' 같은 낱말을 곧잘 넣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토박이 낱말을 넣었다고 하여도 말투가 얄궂습니다.

 

"깨우침을 던지"거나 "생각을 던지"는 일은 우리 말에 없으니까요. 우리 말투에 없으니까요. 우리 말투는 "깊이 깨우치게 한다"나 "깊이 생각하게끔 한다"이니까요.

 

그런데, 이처럼 "깨우침을 던진다"라든지 "통찰을 제공한다"라든지 "질문을 던진다" 같은 말투를 쓰는 까닭은, '우리 말에는 없는 말투를 새로 빚어내어 우리 말 테두리를 넓히려는 생각'이었을까요? 어느 번역가는 우리 말투에는 없는 번역 말투를 일부러 쓰면서 우리 말 너비와 깊이를 새롭게 가꾸고자 한다고 밝히기도 합니다.

 

 ┌ 깊은 깨우침으로 이끈다

 ├ 깊이 깨우치도록 이끈다

 ├ 깊은생각을 하도록 이끈다

 ├ 깊이 생각하도록 돕는다

 └ …

 

우리들은 우리 말을 가꾸어야 합니다. 틀림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 말은 어떻게 가꾸어야 할까요. 우리 말은 어떻게 가꿀 때 슬기롭고 아름답고 훌륭하게 거듭나게 될까요. 번역 말투를 들여놓으면서? 서양말을 고스란히 쓰면서? 일본 한자말을 거침없이 쓰면서? 우리 말투를 무너뜨리거나 허물면서?

 

한 마디를 하건 두 마디를 하건, 한 줄을 옮기건 두 줄을 옮기건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옮겨서 보여주려고 하는 글을,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마음이 되어서 옮겨야 합니다. 글을 읽는 사람 눈높이여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 생각과 마음과 넋과 눈높이는 온통 '얄딱구리한 번역 글월에 찌들거나 물든' 모습인지 모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도, 아이들 읽는 동화책도, 어른들이 읽는 신문도, 어른들이 보는 방송과 인터넷도, 죄다 번역 글월에다가 얼빠진 말투이니까요. 아무래도 번역가 한 사람을 탓해 보아야 아무런 쓸모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번역책이 나아진다고 해서 탈바꿈하거나 옳은 길로 접어들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ㄴ. 삶의 양식의 변화와 함께

 

.. 기술과 함께 삶의 양식이 바뀔 때, 그리고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가 삶의 양식의 변화와 함께 일어날 때, 개인과 도시 공동체 양쪽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일이 일어난다 ..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정혜진, 녹색평론사, 2007) 63쪽

 

"삶의 양식(樣式)"은 "살아가는 모습"이나 "살림살이"나 "삶 매무새"로 손봅니다. '확대(擴大)'는 '늘어남'으로 다듬고, '변화(變化)'는 '달라짐'으로 다듬으며, '양쪽(兩-)'은 덜어냅니다. '득(得)'은 '도움'으로 고쳐 줍니다.

 

 ┌ 재생 에너지 확대가 삶의 양식의 변화와 함께 일어날 때

 │

 │→ 재생 에너지가 삶을 바꾸면서 함께 늘어날 때

 │→ 재생 에너지가 늘어나며 살림살이가 함께 바뀔 때

 │→ 재생 에너지를 늘리며 살림살이를 함께 바꿀 때

 └ …

 

우리가 우리 말투를 잃는 까닭은, 우리 스스로 우리 얼을 잃거나 놓거나 버리거나 내팽개치거나 잊기 때문이 아니랴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깔보거나 업신여기거나 하찮게 다루기 때문은 아닌지, 나아가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짓밟거나 깔아뭉개거나 벼랑으로 내몰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배운 사람일수록 말이 엉망이고, 가방끈 긴 사람일수록 글이 엉터리이기 때문입니다. 배운 사람들은 '말로 먹고살'곤 하며, '글로 밥벌이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 배운 사람들, 글로 살고 말로 사는 사람들 말씀씀이와 글씀씀이는 어떠합니까. 누구한테 배운 말이거나 글인가요. 어디에서 익힌 말이거나 글일까요.

 

생각있이 살면서 글을 쓴다거나, 생각있이 다스리면서 말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생각있는 삶으로 꾸리면서 세상을 헤아린다면, 터무니없는 일이 터지는 사회를 날카롭게 꾸짖는 매무새와 함께, 자기가 쓰는 말과 글도 함께 돌아보거나 추스릴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생각있는 삶으로 여미면서 둘레를 돌아본다면, 낮은자리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들과 맞서 싸울 뿐 아니라, 낮은자리 사람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매무새를 익힐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꿈인지 모릅니다만, 섣부른 바람인지 모릅니다만, 배운 사람은 지식을 머리에 더 넣어 두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사람을 더 널리 살피면서 껴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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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0 16:08ⓒ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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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은 말투 #국어순화 #우리말 #한글 #글다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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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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