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SA 기준에도 안 맞는 미래형교육과정

제2차 미래형교육과정 개편 토론회 내용 분석④

등록 2009.04.21 09:38수정 2009.04.2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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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작과 오류투성이로 나타났지만 결과는 큰 차이 없다는 일제고사와 수능점수 결과 후폭풍으로 사회와 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시험이 많아진 것은 물론이고 0교시, 7교시 부활 등으로 학생들은 더욱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일제고사 이전부터도 이런 현실에 대해 걱정이 많아 여러 개선책이 제시되었습니다. 일제고사 법제화를 내세운 미래형교육과정 연구팀도 시간에 비해 효율이 낮은 이런 체제를 비판하고 시대에도 뒤떨어진다고 걱정합니다. 그래서 세계적 추세에 맞춰 핵심역량을 도입하고 교과군, 학년군 도입, 무학년제, 교과 교실제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과 방안들을 다루고 싶지만 연구팀 자료는 공청회에 가서만 받을 수 있고, 공식 홈페이지에 관련 자료들도 올려놓지 않아 내용을 알기가 어려워 몇 가지만 살펴보려고 합니다.

 

  정작 가장 중요한 성찰(반성) 역량은 빠져

 

글로벌 창의인의 핵심역량 - 자존적 자기 이해 능력, 의사소통능력, 논리력, 상상력/창의력, 문제해결력, 시민공동체 정신, 리더십(제1차 미래형교육과정 토론회 자료집)

 

  먼저 핵심역량이란 지식과 대비되어 기능들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핵심역량이란 개념이 제시된 건 2007년입니다. 참여정부 말기 혁신위가 제안한 미래교육비전 2030(안)에는 핵심역량을 중심으로 교육과정과 평생교육 체제를 개편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이 때 제시한 핵심역량은 창의력, 갈등관리 ․ 문제해결력, 협동 ․ 의사소통능력,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적극적 시민성, 예술 ․ 문화적 감성입니다.

 

  핵심역량은 유럽 교육과정이나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미래 사회 발전 방향에 맞춰 학교교육을 역량개발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합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빠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PISA에서 핵심 역량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라고 제시한 성찰(반성적 사고) 능력이 빠졌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유럽에서는 도구를 상호교류하며 사용할 것, 이질 집단에서 상호교류할 것, 자율적으로 행동할 것 3가지는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7차교육과정이 강조하는 자기주도적 학습이론의 바탕이 된 비고츠키 교육이론이나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핀란드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작년 교육과정 평가원 토론과정에서도 비판적 사고력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물론 나라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내용이 나올 수는 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성찰능력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협력의 중요성도 점점 강조되고 있습니다. 국제표준을 지향한다는 교육과정이 정작 OECD국가 교육평가척도가 되는 PISA기준에도 못미친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좋은 말만 갖다 붙인다고 교육이 바뀌나?

 

  핵심역량이 어떻게 교과마다 구체적으로 반영되느냐도 내용만큼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제시된 내용 따로 교과내용 따로 되면 하나마나한 개편안이 될 것입니다. 자료를 보면 자꾸 2007년 개정교육과정과 연동하여 적용할 것이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1-2년 안에 적용만 고민하다보면 빚좋은 개살구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7차교육과정에서는 교육내용 30%감축을 내세웠지만 실제 교과별로 들어가면 압축된 내용으로 오히려 내용이 어려워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수준별 교육과정을 내세워도 교과별로 제각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작년에 국가교육과정포럼에서 보니 연구자들이 "우리가 언제 총론 연구자하고 각론연구자끼리 얘기나 해보았나?", "교과내 과목연구자끼리도 소통이 안되더라" 고백하는 걸 들었습니다. 아이디어 수준인 "수준별 교육과정"을 전국 학생에게 적용한 것은 큰 문제라며 앞으로는 어떤 내용이든 신중하게 연구하고 충분한 실험을 거친 뒤에 도입하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다 실험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현장교사로서 기가 막혔습니다.

 

  미완의 작품이지만 비슷한 내용을 제안한 혁신위(안)은 2015년부터 2020년에 적용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개선은 신중하게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과군, 학년군 도입 - 합리적인 기준부터 마련해야

 

  그럼 교과군, 학년군 제도는 어떤 것일까요? 이것도 역시 2007년 미래비젼(안)에 나와있고, 교과군제도는 현재 고등학교 2, 3 학년 선택교육과정에서 부분도입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학년군별 접근을 하는 경우가 많고, 단독 교과와 교과군 제도가 혼용되어 있습니다. 2008년 교육과정평가원에서 발표한 자료 예시안을 보면 대강의 상이 그려집니다.

   

a   2008년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열린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선진화방안 연구 > 보고서에 제시된 안입니다.

2008년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열린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선진화방안 연구 > 보고서에 제시된 안입니다. ⓒ 신은희

2008년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열린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선진화방안 연구 > 보고서에 제시된 안입니다. ⓒ 신은희

 

 

  현재 학교교육과정을 보면 학년마다 너무 많은 교과와 내용 때문에 제대로 교육이 안이뤄진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최소수업시수를 제시하고 학교가 선택하게 하여 자율성을 존중한다고 합니다. 특히 고등학교는 선택을 아주 강화한다고 합니다. 언뜻 내용만 보면 그럴싸하고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이것이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조금만 생각하면 그림이 그려집니다.

 

  맞습니다. 자칫 대입시 중심으로 과목선택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등학교만이 아니라 초중학교도 여러 방향으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개편안에서는 과목 최소 시수를 이야기하지만 수학, 과학, 영어 강화도 강조합니다. 학교가 진공상태에 있는 것이 아닌만큼 자율화가 허울에 그칠 우려가 많습니다.

 

  이외에도 초중학교 학생들은 전학을 많이 하는데, 학교마다 다른 교과선택으로 학습결손이 생길 우려도 큽니다. 초등학교만도 학년마다 담임이 바뀌고 연계가 쉽지 않은데 제도 개선까지 같이 마련되지 않으면 변화는 말로만 그칠 것입니다. 또 선택에 앞서 초중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다면 선택의 기준도 자의적이고 이에 따라 학생들이 배울 내용도 뒤죽박죽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연 그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학생연구와 학급당 학생수 감축 병행되어야

 

  그 동안 교사들이나 교육시민단체들은 교육과정 내용 기준이나 급별 교육에서 아동과 청소년 발달단계를 강조하였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도 막연한 기호에만 따르지 않고 먹기 좋은 것만 먹지는 않습니다. 성장단계별로 필요한 영양소가 다르고 이것도 나라마다 조금씩 달라지듯 교육내용도 시기에 따라 나라에 따라 필요한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이걸 가장 잘 구현한 교육이 슈타이너 학교의 발도르프교육입니다. 우리 교육과정도 이걸 강조하였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누가 00했다는 학문 이론만 있지 구체적인 내용과 기준은 없습니다.

 

  국어교과 시간은 많지만, 연령별로 배워야 할 어휘에 대한 기초 자료도 없어 1학년 교과서나 고학년 교과서나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한글습득이론도 제대로 정립이 안 되어 교사들의 자의적 해석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수학과 과학 교과를 봐도 학생들이 도저히 달성하기 어려운 단계의 내용이 뒤죽박죽입니다.

 

학생발달단계에 대한 실증 연구는 2001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초등 2, 4, 6학년과 중학교 2학년 1만5000여 명을 연구한 <초․중학생의 지적 ․ 정의적 발달수준 분석연구>가 거의 유일한 자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나마 그간 정부 연구자료를 보면 이런 자료마저 전혀 쓰이지 않고 교과학문 논의만 무성합니다. 지금이라도 학교 현장의 구조와 학생들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기초연구부터 시작하여 교육과정의 밑그림을 탄탄하게 그려나갔으면 합니다.

 

a    벨기에 겐트 지역에서 프레네교육을 하는 초등학교 6,7세반 수업모습입니다. 학년군제를 도입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개인 능력의 차이를 나이에 따른 발달차이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 있다고 합니다. 단지 효율성이 아니라 철학적 깊이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 수가 적어 수업을 보는 내내 부러웠습니다.

벨기에 겐트 지역에서 프레네교육을 하는 초등학교 6,7세반 수업모습입니다. 학년군제를 도입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개인 능력의 차이를 나이에 따른 발달차이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 있다고 합니다. 단지 효율성이 아니라 철학적 깊이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 수가 적어 수업을 보는 내내 부러웠습니다. ⓒ 신은희

벨기에 겐트 지역에서 프레네교육을 하는 초등학교 6,7세반 수업모습입니다. 학년군제를 도입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개인 능력의 차이를 나이에 따른 발달차이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 있다고 합니다. 단지 효율성이 아니라 철학적 깊이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 수가 적어 수업을 보는 내내 부러웠습니다. ⓒ 신은희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학급당 학생수 감축은 언급도 안 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내세워도 현재 학급당 학생수로는 문서만 번지르하지 교실 현장의 변화는 끌어내기 어렵습니다. 우리 나라 학생들은 교사와 눈 한 번 맞추기도 어렵고 학습과정을 일일이 보기도 어렵습니다.

 

  이제 제3차 미래형교육과정 개편 토론회가 24일 금요일로 다가왔습니다. 다른 연구과제들도 많겠지만 학생들이 적정한 관심과 배려를 받을 수 있는 인간적 환경에도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핵심역량과 핀란드 교육과정, 비고츠키 연구 내용은 비고츠키 연구자인 배희철 선생님의 자료를 인용한 것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http://cafe.naver.com/vygotsky에서 볼 수 있습니다.
미래형교육과정 개편과정이 너무 빠르고 비공개로 진행되어 걱정이 많습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신중한 연구와 접근이 필요합니다.

2009.04.21 09:38ⓒ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핵심역량과 핀란드 교육과정, 비고츠키 연구 내용은 비고츠키 연구자인 배희철 선생님의 자료를 인용한 것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http://cafe.naver.com/vygotsky에서 볼 수 있습니다.
미래형교육과정 개편과정이 너무 빠르고 비공개로 진행되어 걱정이 많습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신중한 연구와 접근이 필요합니다.
#미래형교육과정 #핵심역량 #학년군제 #교과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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