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74) 사랑혼인

[우리 말에 마음쓰기 616] '사랑해서 혼인하다'와 '연애결혼'

등록 2009.04.22 12:01수정 2009.04.2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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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해서 혼인하다'와 '연애결혼'

.. "두 분이 연애 결혼 하셨어요?" ..  《최은숙-미안 네가 천사인 줄 몰랐어》(샨티,2006) 47쪽


서로 마음에 들기에 짝을 이루어 함께 삽니다. 서로 마음에 들지는 않으나 등떠밀리듯 한 살림을 차리기도 합니다. 서로 마음에 들면서 이루는 짝이라 할 때에는 '연애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꼭 마음에 들지는 않으나, 누군가 다리를 놓아서 이루는 짝이라 할 때에는 '중매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일본 한자말인 '결혼' 앞에 '연애'나 '중매'를 붙인 이 낱말들이 쓰인 지는 얼마 안 되었지 싶습니다. 우리는 예부터 '혼인'과 '혼례'라 했을 뿐이고, 일본 한자말이 쓰인 햇수는 썩 길지 않기 때문입니다.

 ┌ 연애결혼(戀愛結婚) : 연애에서 출발하여 이루어진 결혼
 ├ 연애(戀愛) : 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함
 ├ 중매결혼(仲媒結婚) : 중매로 이루어진 혼인
 ├ 중매(仲媒) : 결혼이 이루어지도록 중간에서 소개하는 일
 │
 ├ 두 분이 연애결혼하셨어요?
 └ 두 분이 사랑해서 혼인하셨어요?

오늘날 국어사전에는 '연애결혼'과 '중매결혼'이라는 낱말이 실립니다. 새로운 사회에 걸맞게 두루 쓰이는 낱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연애'란 무엇일까요. 연애는 그저 연애일 뿐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서로 즐기고 함께 나누는 '사랑'을 한자로 덮어씌운 말일까요.

 ┌ 두 분이 사랑해서 함께 사셨어요?
 ├ 두 분이 사랑해서 짝을 맺었어요?
 ├ 두 분이 사랑해서 짝궁이 되셨어요?
 ├ 두 분이 사랑해서 짝지로 사귀셨어요?
 └ …


서양 언어학을 받아들이면서 '관용구'라는 말투로 우리 말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우리 말로 하자면 '상말'인데, 상말이란 "상스러운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는 뜻이었고, '상스러운' 사람이란 누구이냐 하면 "한문을 모르는 어리석은 여느 사람"입니다. 토박이말로는 '상말'이고 한자말로는 '속담(俗談)'인데, 둘은 같은 뜻입니다. 한자로 빚어낸 '고사성어'나 '사자성어'는 거룩한 낱말이라 여기고, 그러니까 한자말로 하자면 '고귀'한 낱말로 치면서, 여느 사람들이 손쉽고 살가이 주고받던 말은 깎아내린 셈입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 상스럽다고 하는 말,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쓴다고 하는 토박이말이란 따로 어떤 틀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늘 홀가분합니다. 오늘날 '연애결혼'이라고 쓴다면 '사랑결혼'이라고도 쓸 만큼 홀가분하고, 그냥 '사랑해서 혼인하다'처럼 풀어서 쓸 만큼 틀에 얽히지 않습니다. 굳이 국어사전에 올려지지 않아도 즐겁게 쓰는 말이요, 국어사전에 안 실렸다고 하여 거리끼거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숨쉬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 사랑결혼
 ├ 사랑혼인
 ├ 사랑맺음
 ├ 사랑삶
 └ …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우리 말을 가르치면서, 우리 국어사전에 한자말이 54%가 되느니 70%가 넘느니 하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한자말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없고, 한자말도 우리 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54%라느니 70%라느니 하는 한자말이란 무엇이느냐 하면, '일본 콘사이스' 사전을 '한국 콘사이스' 사전으로 옮겨내면서(일본에서 내는 일어사전 이름도 '콘사이스'입니다. 한국에서 나오는 '콘사이스' 사전은 이름부터 올림말까지 온통 이 일본사전을 베꼈습니다), 우리가 안 쓰는 숱한 일본 한자말이 가득가득 실리면서 이루어진 54%요 70%입니다. 더구나, 옛날 양반이나 사대부 같은 한문권력을 움켜쥔 사람들끼리 쓰던 한자말을 잔뜩 담아 놓았기 때문에 한자말 푼수가 아주 많은 듯 보여질 뿐입니다.

이를테면, '시인'을 찾으면 열 가지 한자말이 나오는데, 시쓰는 사람을 가리키는 '詩人'과, 받아들인다는 뜻을 가리키는 '是認' 말고는 우리가 안 쓰는 한자말 '시인'이 여덟 가지 실렸습니다. 더구나 우리한테는 '받아들이다'라는 토박이말이 있기 때문에 '是認'이라는 한자말을 딱히 쓸 까닭이 없기도 합니다. '사장'을 찾아보면 모두 서른 가지가 넘는 한자말이 실리는데, 한자말 '사장' 가운데 정작 우리가 쓰는 낱말은 두어 가지뿐이지만, 회사 사장을 가리키는 한자말을 빼고는 모두 다 우리 토박이말이 있는데, 우리 스스로 토박이말을 밀어내고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우리 국어사전에는 '스쿨걸'과 '스쿨보이' 같은 영어에다가 일본 회사이름과 일본 학자이름도 실려 있고, 프랑스니 영국이니 미국이니 하는 물건이름과 상표이름과 학자이름마저 실려 있어서, 토박이말 푼수가 몹시 적은 듯 보여지게 됩니다.

또한, '신나다' 같은 토박이말은 국어사전에 실리지 못합니다. 사전을 엮는 국어학자들 말로는 "'신나다'는 용례가 많지 않아서 올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자들이 말하는 '용례가 없다'는 무엇이냐 하면, 신문이나 잡지나 학술보고서 따위에 이 낱말이 거의 안 쓰인다는 소리인데요, 지금 맞춤법으로는 '신 나다'처럼 띄어쓰도록 되어 있으니 '신나다'처럼 붙여서 쓴 보기를 찾기가 어려울밖에, 아니, 이런 보기는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 나다'처럼 띄어서 쓰인 보기를 찾으면 대단히 많기 때문에, 이렇게 자주 쓰이고 흔히 쓰이는 토박이말이라 한다면 마땅히 '신나다'로 붙여서 올림말로 삼아야 함을 알게 될 테지만, 학자들은 당신들 생각을 조금도 바꾸지 않습니다. 우습다면, '재미나다'나 '성나다'는 올림말이 된다는 대목입니다. '신나다'는 안 되고.

 ┌ 사랑해서 혼인하다 (연애)
 └ 혼인한 뒤 사랑하다 (중매)

오롯한 우리 말을 한국사람 스스로 읽고 보고 배우는 한국말사전이란 아직 없다고 해야 할까요. 한국말사전을 엮는 분들 스스로 한국말 빛깔이 어떠하며, 이러한 빛깔을 어떻게 살려내면서 사전 하나 여미어야 좋을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셈이라고 할까요. 우리 깜냥껏 우리 생각을 이야기하고, 우리 삶을 담아내는 말틀을 이루어내지 않는다고 할까요.

사랑을 해서 혼인을 하니, 상말로든 관용구로든 "사랑해서 혼인하다" 같은 글월을 국어사전에 살포시 담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사랑이 싹트지 않았으나 어찌 되었든 혼인을 하고 지내는 동안 차츰차츰 사랑이 싹트게 되는 사랑맺음이라는 뜻으로 "혼인한 뒤 사랑하다" 같은 글월을 국어사전에 함께 넌지시 담을 수 있습니다.

담고자 하는 우리 뜻이 또렷하고 튼튼하고 밝다면, 얼마든지 우리 말과 글을 가꾸는 길을 갈고닦게 됩니다. 싣고자 하는 우리 넋이 싱그럽고 아름답고 넉넉하다면, 언제나 우리 말과 글을 일구는 길을 추스르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연애결혼-중매결혼' 같은 낱말은 그대로 써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랑결혼-사랑혼인'처럼 요 한 가지는 새롭게 담아내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한결 나은 길을 찾으면 됩니다. 우리 손으로 좀더 싱그러운 길을 헤아리면 됩니다. 우리 온마음으로 한껏 북돋울 길을 뚜벅뚜벅 걸어나가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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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쓰기 #토박이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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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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