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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학자들의 진화론 논쟁 <다윈의 식탁>

등록 2009.04.23 16:21수정 2009.04.2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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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윈의 식탁
다윈의 식탁김영사
다윈의 식탁 ⓒ 김영사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과학 전공자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과 두뇌를 지닌 이들은 문과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달라서, 시쳇말로 길게 썰 푸는 일에 약하다고. 단답식으로 정리, 요약하는 것은 잘 하지만, 긴 글을 쓰고 그 글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못한다고. 이런 나의 편견을 한 방에 날려버린 책이 며칠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들었다가 단숨에 읽어버린 <다윈의 식탁>이었다.

 

이 책은 참 재미있다. 물론, 나는 이 책이 신나게 소개하는 도킨스와 굴드의 진화론에 대한 논쟁은 고사하고, 여기에 소개되는 과학자들의 이름마저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진화론에 대해서도 고등학교 때 배운 자연 선택설, 격리설 정도만 알고 있다. 아,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틀렸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이 책은 상정한 독자층이 일반 대중이기에 내용은 크게 어렵지 않다.

 

글을 참 잘 쓰는 과학도

 

이 책 <다윈의 식탁>은 일종의 소설이다. 그보다는 팩션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책은 저명한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의 사망 소식부터 시작한다. 그의 장례식에 세계의 유명한 진화 생물학자들이 대거 참석하는데, 모인 김에 진화론에 관한 토론을 하고, 이를 BBC가 생중계하며, 과학 잡지 <네이처>가 이를 싣는다. 라고 쓴 프롤로그와 그 이후 본문을 읽을 때만 해도 이 작품이 소설인 줄 몰랐다. 그저 작가가 대단한 토론회에 서기로 참석해 보고 들은 '사실'을 정리해 출판한 것 인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것은 작가가 각 학자들이 자신의 책과 논문에서 주장한 내용, 강연에서 한 말 등을 종합해서 서로 옥신각신 토론하는 형식으로 꾸민 팩션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과학도의 인문학적 소양과 역량에 새삼 감탄을 하게 되었다.

 

진화론의 대가들이 벌인 첫날 토론의 제목은 "강간도 적응인가?"이다. 작가도 토론 사회자의 입을 빌려 고백했듯이 선정적인 제목이다. 하지만, 참으로 절묘하다. 만약 진짜로 이런 토론회를 연다면 대중과 시청자의 시선을 확 끌기 위해서 첫날 토론은 분명 이런 수준의 선정적인 제목을 붙일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대중과 미디어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과학도임에 틀림없다.

 

토론의 사회자는 진짜 일어났던 일을 기록한 것으로 오해할 만큼 매끄럽게 토론을 이끌어 간다. 토론자들이 인신공격 비슷한 수준의 말을 하며 흥분하면, 사회자가 끼어들어 흥분을 가라앉히며 화제를 돌린다. TV 토론에서 항상 본 것처럼 사회자가 시간이 다 되었다며 마무리 하거나, 이미 상당히 시간이 초과되었다며 인사하고 토론을 마치기도 한다. 이 토론의 사회자들도 우리에게 익숙한 TV 속 토론 프로그램의 사회자들만큼이나 베테랑이다.

 

다섯 번의 토론을 마치고 공개 강연 후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도 감탄스러웠다. BBC의 기자와 CBS의 기자가 질문한 내용은 생물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 인문학을 전공하고 기자가 되었을 일반 기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고 있었다.

 

너무나도 현실처럼 이야기를 전개해 가기 때문에 식탁후기 부분에서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고백하기 전에는 누구나 사실로 믿을 것만 같다. 그만큼 작가는 진화론 거장들의 토론을 재미있고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구성해 우리 앞에 풀어놓는다.

 

진화론을 알고 싶다

 

이 소설은 논쟁을 통해 도킨스 팀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 대 굴드 팀의 다수준 선택 이론, 유전자를 중시하는 시각 대 유전자 환원주의를 경계하는 시각, 점진적인 진화 대 단속평형론 등을 소개한다. 생물학에 문외한이기에 이 논쟁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고만 생각했던 과학이 지배 이념과 밀착되어 있다고 한 르원틴의 주장은 신선했다. 역시 과학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그가 사는 시대와 지역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인가 보다.

 

생물학자들이 토론하는 형식으로 전개하는 진화론 설명은 자세하고 쉽다. 하지만, 이 한권의 책으로 진화론의 모든 내용과 논쟁을 일반 대중이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학자들의 이론을 담은 저작들을 본문 중간 중간 사진과 함께 소개해 준다. 소설을 끝마치고 나서는 별도의 장(이 책을 만드는데 들어간 재료)을 마련해 학자들의 책을 주제별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제시한다.

 

그 다음에는 도킨스 깊이 읽기라는 장을 마련해 리차드 도킨스와 그의 학문적 성과, 그의 연구서에 대해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게 소개해 준다.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 <눈먼 시계공>, <만들어진 신>은 서점에서 지나가다 본 적은 있다. 특히 <이기적인 유전자>는 읽어볼까 잠시 고민도 했었던 책이다. 하지만, 일반인인 나에게는 너무 전문적이고 어려울 것만 같아 포기했었다.

 

<다윈의 식탁>을 끝까지 읽어 보니 생물학에 문외한인 나마저도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을 읽어 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도서관으로 가서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빌렸다. 문외한인 내 수준으로 과연 볼 수 있는 책인지 아직은 모르지만, <다윈의 식탁>을 읽은 흥분이 가시기 전에 빨리 읽어 보아야겠다.

 

<다윈의 식탁>은 생물학이, 혹은 진화론이 이토록 흥미로운 학문이라고 독자를 유혹하는 책이다. 리차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라는 대학자를 만나고 그들의 매력을 인식하는 덤도 얻는다.

 

이런 <다윈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지 않으실래요?

2009.04.23 16:21ⓒ 2009 OhmyNews

다윈의 식탁 - 논쟁으로 맛보는 현대 진화론의 진수

장대익 지음,
바다출판사, 2015


#다윈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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