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서 바라본 지룡산 봉우리
이승철
후미대장인 40대 중반의 남성이 불쑥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불교신자인 듯했다. 그러나 우리도 산을 많이 찾는 편이지만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아서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머뭇거리자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우선 저 아래 골짜기에 바라보이는 운문사가 그렇지요. 저 절은 비구니 사찰이거든요. 그리고 수덕사도 그렇고, 계룡산의 동학사도 그렇고요."
"듣고 보니 정말 그런데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요?"
"비구니 사찰은 여성들이 수행하는 곳이어서 평탄한 터를 찾다보니 그렇게 된 것 아닐까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럴듯한 말이었다. 저마다 그럴듯한 이유를 생각해냈지만 정말 왜 그런지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에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운악산 현등사는 산 중턱이잖아요?"
"운악산 현등사도 비구니 사찰이지요? 그런데 그 절이 산 중턱 맞나요? 조금 높은 곳이긴 하지만 역시 물이 많이 흐르는 골짜기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건 마찬가지인데요."
그의 말을 들으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지난해 가을에 찾은 운악산에서 만난 현등사 바로 앞 골짜기엔 정말 많은 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모두 맞거나 틀렸다고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많은 산과 사찰들을 둘러보았지만 그런 쪽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 지룡산 능선길에서 바라본 운문사
이승철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가 우리들 일행 3명이 자꾸 뒤쳐진다. 다리에 쥐가 났던 일행이 아무래도 다리가 불편하여 걸음이 느렸기 때문이다. 능선길 앞으로 상당히 높은 봉우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룡산 상봉이었다. 해발 829미터, 상봉에 오르자 7명의 산악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까지 합류하자 10명이 되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참으로 멋있고 시원하다. 앞쪽으로 높이 솟아 있는 우람한 능선으로 이어진 봉우리는 영남알프스의 주산인 가지산이었다. 오른편의 뾰족한 봉우리는 운문산, 그리고 가지산 왼편에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가 우리와 함께 산행을 시작하여 앞장서 올라간 일행들이 오르고 있는 황등산이었다.
"우와! 저 황등산 봉우리 올라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네요. 거의 골짜기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되잖아요?"
"그렇습니다. 저 골짜기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야 하기 때문에 580미터는 올라가야 합니다. 지친 상태로는 상당히 힘든 코스죠, 게다가 굉장히 가파른 오름길이거든요"
"어이쿠! 큰일 날 뻔 했네. 이 팀에 끼었기 망정이지 저쪽 팀에 끼었다간 어떻게 됐겠어?"
나이 들어 보이는 등산객 한 사람이 그쪽 팀으로 따라가지 않은 것이 무척 다행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6시간 코스라지만 오르내림이 심한 산이어서 여간 힘든 산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등산객들을 죽기 살기 팀과 룰루랄라 팀으로 나누다"왜 산을 그렇게 죽기 살기로 기를 쓰고 올라가지요? 이렇게 룰루랄라 여유로운 산행이 좋은데."
여성 등산객 한 사람이 너무 힘든 산행은 싫다고 한다. 여유롭게 즐기며 산행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 함께 산행한 룰루랄라팀
이승철
"그럼, 오늘 우리 등산객들이 두 팀으로 나뉘었으니까 각각 이름을 붙여볼까요? 지금 저쪽 황등산을 힘들게 오르고 있는 팀은 '죽기 살기 팀' 여기 남아 중간 능선길을 타고 내려갈 팀은 '룰루랄라 팀' 어때요?"
"우와 좋은 이름이네요. 정말 딱 맞는 이름이에요."
내가 이름을 붙여주자 모두들 좋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 후미그룹 10명에겐 여유롭고 느긋하게 산행을 하며 '요산요수(樂山樂水)' 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은 '룰루랄라 팀'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자! 그럼 천천히, 안전하고 즐겁게, 그리고 멋진 경치 두루 둘러보며 내려갑시다. 저 아래 폭포가 있는 곳을 거쳐 내려가겠습니다."
이번엔 후미대장이 앞장을 섰다. 내려가는 길은 상당히 가파른 길이었다. 조심조심 내려가다가 폭포를 만났다. 그러나 이게 웬일, 높은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폭포는 오랜 가뭄으로 말라 있었고, 겨우 어린아이 오줌줄기 같은 물줄기 하나가 우람한 폭포의 위용을 초라하게 지키고 있었다.

▲ 천문사 대웅전과 마당가에 세워놓은 불상
이승철
폭포를 지나자 골짜기 길이었다. 골짜기 하류로 내려오자 물이 조금씩 많아진다. 그 하류 한 부분에 천문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찰 앞마당에 들어서자 근래 벌인 공사의 흔적이 역력하다. 새로 지은 건물 한 채는 한식집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마당가에는 특이한 모양의 불상 몇 개가 안치되어 있고 경내는 조용하기만 했다. 마당가에는 수많은 옹기항아리들이 즐비한 장독대가 예스럽다. 천불전도 대웅전도 굳게 잠긴 모습이었다. 절집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돌을 깎아 세운 듯한 역시 특이한 모양의 일주문 뒤쪽으로 황등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웅장하다.
버스는 도로가 지나는 마을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 버스에 올라보니 황등산을 올랐던 죽기 살기 팀 등산객 몇 명이 우리들보다 먼저 내려와 있는 것이 아닌가. 놀라운 모습에 일행들이 경탄을 금치 못한다. 정말 대단한 등산실력이었다.

▲ 특이한 모양의 천문사 일주문과 뒤로 바라보이는 황등산
이승철

▲ 나물을 넣고 비빈 비빔밥과 홍어회 미역국과 막걸리 등 푸짐한 뒤풀이상
이승철
"역시 죽기 살기 팀들은 실력이 대단하네요."
우리 일행 한 사람이 황등산 등산객에게 농담을 하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들은 처음 듣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팀에서 먼저 내려와 있던 다른 사람이 사정을 말해주자 그때서야 빙긋 웃는다. 음식은 길가에 있는 음식점 '복숭아 꽃 살구꽃'에 차려 놓고 있었다. 장소만 빌린 것이다.
곧 산행 뒤풀이가 이어졌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음식은 막걸리와 소주, 그리고 세 종류의 나물무침과 홍어회를 곁들인 저녁이었다. 힘든 산행을 마친 회원들이 나물과 고추장 참기름으로 밥을 비벼 맛있게 먹는다. 더구나 홍어회와 쇠고기 미역국까지 곁들이니 그 맛이 가히 꿀맛이었다.
"오늘 모두 무사히 산행을 마친 여러분들 참 대단하고 멋있습니다. 죽기 살기로 황등산을 오른 여러분들도 대단하지만 룰루랄라 산행을 즐긴 여러분들이 더 멋지십니다. 자! 건배합시다!"
푸짐하고 맛있는 저녁에 홍어회를 안주 삼아 마시는 뒤풀이주 한 잔이 모두를 즐겁게 하고 있었다. 마침 음식점 안 한쪽에 풍물놀이 기구들인 징, 장구, 꽹과리가 보인다. 내가 꽹과리를 집어 들고 '진오방진' 한 가락을 모두에게 선사했다. "얼쑤!" 누군가의 추임새가 등산객들의 흥을 돋워주고 있었다.

▲ 동산리 처진 소나무
이승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매전면 동산리에 있는 '처진 소나무'를 잠깐 둘러볼 수 있었다. 이 소나무는 옛날 어느 정승이 지나갈 때 스스로 가지를 숙여 인사하듯 했는데 숙인 그대로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는 전설을 안고 있었다.
높이 14미터에 수령이 200여 년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가지들이 수양버들처럼 밑으로 늘어져 있는 모습이 여긴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유송이라고도 불리는 이 소나무는 이렇게 아주 특이한 모습이어서 천연기념물 295호로 보호받고 있는 소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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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왜 죽기살기로 오르죠? 룰루랄라 산행, 이렇게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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