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유류사고 500일 '그들만의 이야기'

특별법 제정에도 지원사업은 오리무중... 대법원 판결에 반발

등록 2009.04.28 15:34수정 2009.04.2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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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 앞 1인 시위 태안 기름유출사고 발생 50일인 지난 20일부터 피해주민들과 시민단체가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태안군유류피해대책연합회

▲ 삼성중공업 앞 1인 시위 태안 기름유출사고 발생 50일인 지난 20일부터 피해주민들과 시민단체가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태안군유류피해대책연합회

 

충남 태안 앞 바다에서 발생한 기름유출사고의 지루한 법정 공방이 마침표를 찍던 지난 23일. 피해주민들은 어김없이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고발생 500일부터 서울시 서초구 삼성타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주민들은 국민적인 관심사에서, 이제는 잊혀진 사고로밖에 기억되지 않는 태안 유류사고가 다시금 회상되는 기회를 삼고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23일 '그들만의 이야기'가 되버린 피해주민들의 하루를 함께 해봤다.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다'

 

오전 7시. 태안읍 소재 빌딩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붉은색과 녹색 조끼를 입은 주민들이 인사를 나누거나 이야기하며 모여 있었다.

 

이들이 입은 조끼 뒷면에는 저마다 'xxx 대책위원회'라는 글씨가 크게 새겨져 있었는데, 모두 기름유출사고 이후 만들어진 대책위원회 소속이다.

 

태안군에는 약 15개 대책위원회가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자 인원 점검이 이어진다. "하나, 둘, 셋… 예순, 예순 하나…" 예약한 관광버스는 1대인데 예상보다 인원이 많다.

 

"개인차량 가져오신 분들 있으면 둘셋씩 짝 이뤄서 가기로 하겠습니다."

 

하나둘 차량에 시동을 걸자 차량 배기통에서 저마다 뿜어대는 하얀 연기가 퍼지면서 흡사 안개처럼 자욱해진다.

 

오전 7시 30분. 버스는 삼성중공업이 위치한 서울시 서초동 서초타워로, 일부는 과천시에 있는 농수산식품부로 향했다.

 

농림수산식품부로 향하는 차량에 몸을 실었다. 특별법 제정으로 기름피해지역의 경제활성화 지원사업의 법적 근거가 마련돼 그동안 주민들이 요구한 사업내역을 제출하려고 방문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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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출발 태안 기름유출사고와 관련 대법원 판결이 있던 지난 23일 태안읍 한 빌딩 앞에 모인 주민들이 서울발 버스에 오르전 대화를 나누고 있다. ⓒ 태안군유류피해대책연합회

▲ 서울로 출발 태안 기름유출사고와 관련 대법원 판결이 있던 지난 23일 태안읍 한 빌딩 앞에 모인 주민들이 서울발 버스에 오르전 대화를 나누고 있다. ⓒ 태안군유류피해대책연합회

 

"대통령 오시는데 현수막 좀..."

 

서산 IC를 지나 서해안 고속도로를 얼마 달리지 않아 낯선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오늘 하루 운전기사를 담당하게 될 태안유류피해대책연합회 소속 전상덕씨의 휴대폰이다.

 

"군에서 꽃박람회장으로 가는 길에 걸어둔 현수막 좀 제거해 달라고 하는데요, 대통령 오는데 좀 그렇다고…."

 

23일 안면도 국제꽃박람회 일반 개장에 앞서 지난 2007년 태안 앞 바다 기름유출사고 당시 자원봉사에 참여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개막식이 개최되었다.

 

충남도와 태안군은 안면도 국제꽃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꽃박람회'와 관련된 현수막 이외에는 게시를 비권장하고 있다.

 

앞서 꽃박람회장 개장준비 점검에 나선 이완구 충남도지사도 남면에서 열리고 있는 주꾸미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을 제거하도록 지시했다.

 

이유인 즉,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 부정적인 현수막을 게시하면 오히려 태안에 불이익을 가져오고, 또 자원봉사자에 대한 보은 행사로 열리는 꽃박람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위해서란다.

 

"대통령에게 기름사고 여파가 끝나지 않았단 사실을 알리고 태안에 더욱 관심을 바란다는 마음도 전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는데…" 차안에는 푸념 섞인 말이 오간다.

 

낯설지 않은 피해주민 행동 "이유 있었네"

 

오전 10시경. 과천 정부청사에 도착했다. 수차례 방문한 탓인지 전씨는 방문객을 위해 마련된 별도의 청사 앞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주차했다.

 

방문객은 청사에 들어서면 검사대를 거쳐 금속 탐지기로 소지품을 검사하고 안내데스크로 향해 해당 부처와 방문 목적을 기재하고 담당 공무원과 전화를 연결하는 등 확인 작업을 해야 한다.

 

정부청사를 방문한 것이 처음인 기자와 달리 수차례 방문한 덕분인지 전씨와 김씨는 전혀 어색하지 않게 모든 과정을 마쳤다.

 

"정부부처 공무원 만나는 것이 쉽지 않죠."

"그러네요, 군청 방문할 때와는 천지 차이네요."

 

농림수산식품부 건물로 향하며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기자를 비롯한 민간팀이 어렵게(?) 정부청사로 진입한 반면 같은 공무원인 태안군청 소속 성낙천 과장과 가순선 주사는 이미 농림수산식품부 로비에서 민간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름피해지원 사업, 언제 지원하나?

 

마침내 민관협력팀을 구성하고 H/S(허베이스피리트)피해어업지원단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향했다.

 

피해어업지원단 공무원들은 태안 민관협력팀을 반겼다. 회의 탁자에 앉자 방문 목적을 밝히고 보상팀 공무원들에게 태안군에서 작성한 지원 사업 계획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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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지역 지원사업 어떻게? 특별법이 제정돼 기름유출사고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대한 지원사업이 가능해진 가운데 태안군은 주민 요구 사업이 담긴 사업계획을 농식부에 제출했다. ⓒ 태안군유류피해대책연합회

▲ 피해지역 지원사업 어떻게? 특별법이 제정돼 기름유출사고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대한 지원사업이 가능해진 가운데 태안군은 주민 요구 사업이 담긴 사업계획을 농식부에 제출했다. ⓒ 태안군유류피해대책연합회

특별법이 제정돼 유류피해지역 지원 사업이 가능해졌지만 실제 사업이 이행되기까지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첫째, 사업의 난립이다. 피해어업지원단은 중복사업 여부를 확인하고 정부 및 도, 시, 군 시행여부를 분류해 사업을 신청할 것을 요구했다.

 

"수차례 얘기하지만 태안군에서 정부가 추진해야 할 사업 또는 도, 시, 군이 추진해야 할 사업을 분류하고 난 후 사업 신청을 해야 한다. 기존에 정부에서 하고 있는 사업들이 태안군에서 제출한 사업계획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군에서 자체적으로 분류 작업해 특색 있는 사업을 신청해야만 반영될 수 있다." 김붕현 팀장의 말이다.

 

둘째, 특색 있는 사업 계획의 발굴이다. 주민 숙원사업이 지원 사업 계획에 반영되면서 사업계획서만 방대해졌을 뿐 정부부처가 지원 가능한 사업은 없고 지자체의 부담만 늘어나는 사업뿐이라는 것이다.

 

"사업계획서를 보면 균특회계 사업들이 많다. 이는 실제 정부부처에서 추진할 사업은 없고 지자체가 일정부분 부담해야 하는 사업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많게는 수백억 원을 부담해야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별법이 제정돼 지원 사업이 가능해졌지만 기존에 정부에서 하고 있는 사업에 별도 회계를 반영해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 양동협 팀장의 말이다.

 

셋째, 기름피해지역인 도, 시, 군 간의 지원사업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하자 충남 6개 시·군(태안, 서산, 서천, 보령, 홍성, 당진)과 전남 3개 시·군(무안, 영광, 신안), 전북 2개 시·군(군산, 부안) 등 총 3개 도에 걸쳐 11개 시·군을 유류오염사고 피해지역으로 지정했다.

 

피해지역이 광범위하다는 것은 지원사업의 공정성과 연관이 깊다. 비록 피해가 태안군에 집중적으로 발생하였다고 해도 타 지역과 차별해 일방적인 지원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태안이 피해정도가 타 지역보다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인 지원을 해 줄 수는 없다. 또, 피해지역마다 지원 사업을 수백 건씩 제출하면 사전 검토 기간만 늘어나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피해지역인 도지사, 시장, 군수 간의 협의가 이뤄져야 하며, 특별위원회가 개최돼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고 조율해 나가야 한다." 양 팀장의 말이다.

 

"물론 지금까지 대화를 나눈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이다. 허나 우리가 이렇게 직접 방문한 것은 태안군에서 지원사업을 제출할 경우 조언도 해주고, 누락시키지 말라고 부탁을 하고자 찾았다. 지적한 부분은 잘 인식하겠다." 한참을 듣고 있던 성낙천 태안군청 과장이 말했다.

 

면담을 끝낸 오전 11시 30분경. 직원들이 하나 둘 걸음을 재촉하며 청사 밖으로 향한다. 정부청사 직원들의 점심시간도 역시 30분 먼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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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대법원의 판결 후 피해주민들이 법정을 빠져 나와 나름대로 해석한 판결을 놓고 서로 의견을 나눴다. ⓒ 정대희

▲ 대법원 대법원의 판결 후 피해주민들이 법정을 빠져 나와 나름대로 해석한 판결을 놓고 서로 의견을 나눴다. ⓒ 정대희

"예인선단장 조모씨도 파기환송이라고 말하지 않았어?"

 

H/S 피해어업지원단과 점심식사를 마치고 유류유출사고와 관련 오후 2시 예정된 대법원의 판결을 참관하기 위해 차를 몰았다.

 

오후 1시 40분경. 판결이 예정된 대법원 1부 앞 로비에는 이미 피해주민들이 도착해 모여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삼성중공업에서 시위를 마치고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검색대를 지나 1호 법정안으로 들어서자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모두 자신과 관련된 판결을 기다리는 듯 저마다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60여명이 넘는 피해주민들이 한꺼번에 참관하면서 법정내 좌석이 모자라 일부 피해주민은 'ㄷ'자 형으로 벽에 기대 선채 재판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오전 2시. 법정으로 4명의 대법관이 들어와 판결 순서를 설명하고 릴레이로 간략하게 줄인 판결문을 읊조렸다.

 

기름유출사고와 관련 해당 대법관이 판결문의 첫머리를 읽어내려가자 곳곳에서 필기도구를 꺼내 메모하기 바빴다.

 

"해양오염방지법 위반 및 업무상과실선박파괴… 김○○, 체○○○, 차○○(기침), 파기 환송, 삼성중공업, 허베이 스피리트호 선박주식회사 기각…."

 

판결이 나오자 피해주민이 법정으로 떠나면서 법정이 소란해졌다. 법정을 나온 주민들은 저마다 "이게 무슨 뜻이냐? 세 명은 파기 환송이고 조모씨랑 삼성중공업, 허베이스피리트호 선박주식회사는 기각이지?"

 

판결을 놓고 저마다 해석하기 시작했다. 피해주민들은 주민들끼리… 삼성중공업 변호인들은 변호인끼리…

 

대법관이 판결문을 읽으면서 잠시 기침을 한 것이 혼란을 야기했다. 피해주민들은 "그래도 조모씨가 기각돼서 관리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서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법정을 빠져 나와 태안으로 향하는 길, 휴게소에서 만난 최한진 태안군유류피해대책연합회 사무국장이 "언론사에서 전화왔는데, 기소된 4명 모두 파기환송이라는데, 조모씨는 기각 아닌가? 어떻게 들었어?"

 

순간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어, 이렇게 되면 판결이 불리한 것 아닌가? 삼성중공업하고 허베이스피리트측에 관리책임을 물을 수 없잖아, 아까 대법관이 기침하면서 순간 잘 안들렸는데, 일부러 그런거 아냐? 주민들이 소동 피울까봐"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던 주민들. 다시 차량에 시동을 걸며 말했다.

 

"내일도 삼성중공업 앞에서 시위도 해야 하고, 또 다시 재판이 시작되면 대전지법에도 가봐야 하는데… 언제쯤이면 마무리 되려나?…"

2009.04.28 15:34 ⓒ 2009 OhmyNews
#태안 기름유출 #농림수산식품부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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