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이가 만든 솜사탕입니다. 조금 더 크게 만들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 중간에서 끊었습니다. 성원이가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오승주
"채원이랑 성원이는 집에 안 가고 왜 만날 솜사탕 먹으러 오는 거야?""응~ 집에 가면 아무도 없으니까."
"너희들 여기에 가장 먼저 생겼으면 하는 게 뭐야?"문구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학용품이라도 사려고 하면 왕복 40분이 걸린다니까요." (선평중 학생들)난생 처음 솜사탕 가게를 차렸습니다. 하얀 손으로 솜사탕 기계를 돌리려니 좀처럼 손에 익지 않습니다. 물론 '아마추어' 솜사탕 아저씨라서 돈은 받지 않습니다. 솜사탕 기계는 바쁘게 돌아가는데 솜사탕이 동그랗게 잘 안 말아지니까 옆에서 구경하던 성원이가 보다 못해서 일을 거듭니다. 설탕을 넣는 일은 성원이가 하고 솜사탕은 제가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성원이가 솜사탕을 직접 말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예쁜 모양으로 솜사탕이 굴러갑니다.
"아저씨는 나보다 더 솜사탕 못 만드는 것 같아"꼬마에게 꾸중을 듣고 머리를 긁적이다가 "성원이가 아저씨보다 더 솜사탕 잘 만든다. 네가 선생님이야"라고 말했더니 신나는 눈치입니다. 같이 솜사탕을 말던 아저씨들에게 성원이는 다 별명을 지어 줬는데 "쫀쫀한 아저씨", "무서운 아저씨"라는 별명 속에서 유독 "인정해준 아저씨"라는 별명을 지어 줍니다. 성원이의 잘하는 점을 인정해주고 격려를 해주니 신이 나서 저를 잘 봐준 모양입니다.
직장까지 그만두고 지역으로 가다 솜사탕 아저씨가 된 사연을 말하자면 깁니다. 작년 촛불집회 이후 언론에 대한 중요성을 자각해 광고불매운동을 벌이던 시민단체에 가입해 언론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촛불이 타는 날은 촛불 취재를 하고, 시민단체의 재판 날(조선, 중앙, 동아일보가 불매운동을 하는 시민들을 고발해서 열리게 된 재판)에는 간간히 재판에 참석하면서 언론운동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언론운동을 하려고만 하면 무수히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도 거대권력과 위험을 감수하고 싸움을 벌이는 훌륭한 언론시민들이 많이 있어서, 그 분들에 기대 저는 이웃의 소소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여수에 사는 한 시민기자님은 지역언론을 한참 만들고 있는데, 의견을 듣겠다며 서울로 와서 저를 직접 만나셨습니다. 지역언론에 대한 꿈은 시사저널 사태 때 언론운동을 하면서부터 내내 생각하던 주제였습니다.
시골은 아니지만, 아직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판교신도시로 가려는 친구들이 있어서 직장까지 그만두고 함께 들어갔습니다. 판교는 젊은 도시이고 부자 신문들도 본격적으로 들어가지는 않을 정도로 입주가 덜 돼 있습니다. 어떻게 동네 사람들과 친해질까 하는 문제가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고민고민하다가 '솜사탕 기계'를 장만하기로 했습니다. 동력기까지 해서 100만원이 넘는 거금을 투자해서 솜사탕을 돌리자마자 아이들에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매점도 별로 없고, 놀 데도 마땅치 않아 더욱 솜사탕에 끌리는 것 같았습니다.
지역신문도 만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