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구의회, '무대뽀 인원감축' 원점으로 돌리다

강북구 실정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제시된 '무조건 공무원 5% 감축'안 저지

등록 2009.04.29 17:31수정 2009.04.29 17:31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4월 23일 강북구의회 행정위원회는 서울특별시 강북구 지방공무원 정원조례 전부개정 조례안(정원조례)을 심의했다. 지난해 11월에 행정위원회에 회부되었으나 보류시킨 조례안이었다.

 

정원조례의 핵심내용은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조직개편지침'(2008.5.1)에 따라 총액인건비 대비 공무원 정원을 5%로 줄이고, 공무원의 종류별·직급별 정원책정기준 비율을 정하는 것이다.

 

강북구 실정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공무원 무조건 5% 감축?

 

지방공무원의 종류별 정원책정 기준과 직급별 정원책정기준을 개선하겠다고 하는 것은 동의한다. 일반직이냐 기능직이냐 별정 정무직이냐에 따라 승진에 차별이 심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능직 공무원들의 직급별 정원책정기준이 이전에 비해 개선된 것에 이견은 없었다. 하지만 쟁점은 정원감축 부분이었다. 강북구의 실정에 맞은 인력운영을 검토하지 않고 총액인건비 대비 5%를 무조건 감축하라는 것이다. 

 

중앙정부나 서울시에서 새롭게 기획하는 사업들을 최종적으로 전달하는 공무원은 지방 공무원들이다. 상급단위에서 새로운 정책이나 지침이 떨어질 때마다 지역주민들에게 각종 행정 서비스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백과사전 두께의 매뉴얼을 밤낮으로 공부하고, 각종 민원에 시달리고 있는 하위직 공무원들의 정원을 줄여 예산을 감축하겠다는 것은 '고소영 강부자 정부'다운 발상이다.

 

어떻게 공무원을 배치하는 것이 주민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전달할 지를 철저하게 연구한 뒤 불필요한 인력이 남아 돌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그때 가서 공무원을 감축해도 늦지 않은데 말이다.

 

동네 구의원으로 3년 정도 지내보고 나니, 오히려 어떤 부서는 사람이 부족해서 일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복지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현재 일손이 부족해서 다른 행정직 공무원들이 사회복지 업무를 함께 보고 있을 정도다. 아마 각 과별, 팀별 근속기간만 살펴도 어느 부서에 일이 과중되고 있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각급 조직의 인건비를 줄여 예산을 줄이고 싶다면 대통령을 비롯한 중앙 고위직 공무원들, 서울시장을 비롯한 서울시 고위직 공무원의 월급을 먼저 대폭 삭감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행정위원회 의원들의 동의를 얻어내어 수정안 만장일치 가결

 

일단 이번 임시회 기간 중 행정위원회 의사일정에 조례를 다루는 마지막 날 정원조례를 상정하기로 하고 행정위원회 의원들을 일일이 만나서 설득작업을 벌였다. 정원조례 심의 전날까지 필자는 정원을 줄이겠다고 하는 행정안전부의 권고나 그 권고대로 정원을 줄이려고 하는 구청의 문제점을 정리한 자료를 만든 뒤 손으로 짚어가며 문제점을 설명했다. 다행히 행정위원회 의원들 전원이 취지에 동의해 주었고, 드디어 정원조례 심의 당일 의원들의 질의토론이 진행되었다.

 

구청 측에서는 "총액인건비 등 이미 큰 틀을 권고받았기 때문에 재정인센티브 등과 연계되어서 사실상 지침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우리 구 예산의 70% 정도를 교부금으로 충당하고 있으므로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 행정적, 재정적 벌칙을 받아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다.

 

이에 필자는 "행정안전부의 각종 권고, 지침 또한 법에 근거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일 테고, 지방자치법을 보면 정원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행안부의 권고사항을 지키기 위해 강북구의 특수한 인력운영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조례를 개정하려고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만약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지방자치법을 어겨가며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권한을 제한하겠다고 나서거나 실제 불이익을 조금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이것은 행정심판이라도 걸어야 하는 사안이다. 오히려 재정자립도가 낮은 자치구이므로 행안부 눈치 보느라 정원감축조례를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는 게 아니라 재정자립도가 낮은 자치구끼리 연합해서라도 국민들의 예산으로 자치단체를 길들이고 지방분권을 저해하려고 하는 행안부에 항의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구청 측에도 열심히 답변했지만, 의원들의 예리한(?) 질의에 완패하고 말았다. 16명을 감축하겠다고 했던 안은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바꾸고, 기능직 공무원들의 승진 적체를 해결하기 위한 직급별 정원책정기준은 구청에서 개선한 원안대로 하는 수정안을 행정위원회 간사인 필자가 발의했다. 그리고 이 수정안 만장일치로 의결되었다.

 

'꼼꼼한 지방의회'가 있다면 '무대뽀 인원감축안'도 거부할 수 있어

 

행정위원회에서 가결된 뒤 4월 28일 2차 본회의에서 혹시 '이의'를 제기하는 건설위원회 의원이 있어 표결에 부쳐져 부결되거나, 구청장이 재의결을 요구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강북구의원 14명 중에 행정위원회 6명, 건설위원회 7명, 의장 1명. 만약 표결을 할 경우를 예상해 표계산을 해 봤더니 안정권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다행히 행정위원회 의원들이 걱정하지 말라며 다 작업해 놓겠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본회의에서 8건의 조례를 심사한 21쪽짜리 행정위원회 심사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는데 목이 아픈 건 둘째치고 가슴이 너무 떨렸다. 의장이 안건을 상정하고 "이의 없느냐"고 발언한 뒤 "없습니다" 하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 가슴떨림은 계속되었다.

 

결국 '무대뽀 인원감축'을 원점으로 돌리고, 기능직의 승진차별도 개선되는 수정안이 본회의에서도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산회가 선포된 후 의원들에게 일일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무사히 이견없이 만장일치로 처리될 수 있었던 것은 행정위원회 의원들이 건설위원회 의원들에게 이른바 '작업'을 해 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당을 떠나서 진보신당의 젊은 구의원의 말에 귀기울이고 기꺼이 '작업'에까지 나서준 강북구의회 의원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내고 싶다. 강북구만 빼고 다른 서울시 지방자치단체들은 모두 인원감축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강북구의회의 선택이 더 값지게 느껴진다.

 

아무리 지엄한 대통령과 중앙정부의 지침이라도 꼼꼼한 지방의회가 있다면 잘못된 것은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될 것으로 믿는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를 최선 기자는 진보신당 강북구의원입니다. 

2009.04.29 17:31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최선 기자는 진보신당 강북구의원입니다. 
#강북구의회 #공무원 5% 감축안 #최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이 기자의 최신기사 11,000,000,000원짜리 태극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자식 '신불자' 만드는 부모들... "집 나올 때 인감과 통장 챙겼다"
  2. 2 10년 만에 8개 발전소... 1115명이 돈도 안 받고 만든 기적
  3. 3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4. 4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5. 5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