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랑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오전에 공사장 밥집, 피자 배달, 전단지 붙이기, 우유배달 그리고 저녁에 돌아와 책 대필 등.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일하고 살았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이렇게 졸업했다.
조정란
그때 우리 신랑은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오전에 공사장 밥집, 피자 배달, 전단지 붙이기, 우유배달 그리고 저녁에 돌아와 책 대필 등.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일하고 살았다.
정말이지 그때는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하지만 남편이 학생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던 친정이나 이미 한 학기 등록금을 내주려고 대출받은 시댁에 손을 내밀기는 어려웠다. 어떻게든 우리가 해결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때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거였다. 하다못해 신생아 때 입는 배냇저고리 하나를 못 사줬으니….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어디에서 아기 중고용품 바자회를 한다고 하면 3개월된 애를 안고 쫓아다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결혼 전에는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해 보지 않았던 나는 신랑 몰래 숨죽여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때마다 다독여주고 늘 사랑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우리 신랑이 없었다면 아마 지쳐서 포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좀처럼 내색하지 않는 남편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러나 우린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가 세 살이 될 무렵 나는 다시 직장에 나갔고, 남편도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출도 다 갚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아찔하다. 그런데, 우리처럼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대학생들이 있다니. 안타깝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열심히 공부하게 해줄 수 있을까우리 아이가 커서 대학 갈 때쯤에는 등록금이 천만원 가까이 될 거라는데, 신랑 학자금 대출 부담에서 좀 벗어났다 싶더니, 다시 아이 학자금 대출로 빚을 갚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마음이 무거워지다 못해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큰아들은 공부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어 엄마, 아빠께 효도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그런데 걱정이다. 이 아이가 공부만 열심히 할 수 있게 우리가 뒷받침해 줄 수 있을까?
제발, 부디 제발 우리 아이가 대학에서 공부할 때만큼은 엄마 아빠의 힘든 삶을 대물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과 그 풋풋한 젊음을, 열정을 즐길 수 있는 정책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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