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대학생 신랑 만나 '개고생'
9년이 지났지만 변한 게 없구나

[등록금이 가계에 미치는 영향 ⑧] 대학 졸업장 따기가 왜 이리 힘든 건지

등록 2009.05.08 09:09수정 2009.05.1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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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는 아랑곳 않고 천정부지로 오르는 학자금은 여대생들의 삭발투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학생 본인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가계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반값 등록금' 공약을 내건 바 있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입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최근 '등록금이 가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이어서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네트워크'와 공동으로 2달여동안 기획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이 기간동안 <오마이뉴스>는 '유명인사들이 말하는 등록금' '나의 등록금 고지서를 보여드립니다' 등 다양한 기획 기사를 내보낼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임신 8개월에 접어든 나는 요즘, 몸도 마음도 불편하다.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는 대학생들 때문이다. 3월 17일, 서울 청와대 부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대학생 대표자들이 등록금 차등책정 철폐를 요구하며 삭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만 해도 취직이 될까 말까 불안한 마음일 텐데, 얼마나 힘들고 억울했으면 그곳까지 나와 삭발까지 하게 되었을까. 그 아이들 부모님 마음은 어떨까.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대학생 남편 만나 결혼... 현실이 장난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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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련, 한총련, 대학생 다함께, 민노당 학생위 등 전국대학생행동준비위원회는 27일 오전 청와대 입구인 청운동사무소앞에서 ‘전국대학생 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5월 1일부터 1박 2일간 서울 도심에서 ‘등록금 인하’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대규모 집회를 개최할 것이라 밝혔다. ⓒ 권우성


등록금 하면 사실 나도 할 말이 많다. 9년 전 내가 결혼할 때 우리 신랑은 대학생이었다. 5년간 연애한 우리는 당장 결혼이 급한 게 아니었는데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에' 그렇게 결혼했다. 아마도 내가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에 다니면서 공부까지 했던 터라 빨리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결혼 후 남편은 직장 대신 학교에 다녔다. 당시 등록금은 290만 원 정도였고 우리집 수입은 내 월급 90만원, 신랑이 아르바이트 해서 버는 돈 30여만 원이 전부였다. 지출에 비해 버는 돈이 턱없이 적었지만, 결혼 초기에는 그런대로 조금씩 저축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첫 아기를 임신했다. 직장이 병원이었던 관계로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해 몸이 많이 힘들긴 했지만, 형편상 직장을 그만 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9개월까지 일하다 그만두고 출산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아기 낳고 직장을 못 다니게 되자, 당장 경제적인 현실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렇다고 남편이 학교를 그만 둘 수도 없고. 결국 우리 부부가 선택한 건 학자금 대출. 한 해 학자금대출 받고, 한 해 휴학하고 돈 벌어서 등록금 마련하고.

대출 받고, 휴학하고, 알바 뛰고... 힘들게 따낸 졸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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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랑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오전에 공사장 밥집, 피자 배달, 전단지 붙이기, 우유배달 그리고 저녁에 돌아와 책 대필 등.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일하고 살았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이렇게 졸업했다. ⓒ 조정란


그때 우리 신랑은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오전에 공사장 밥집, 피자 배달, 전단지 붙이기, 우유배달 그리고 저녁에 돌아와 책 대필 등.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일하고 살았다.

정말이지 그때는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하지만 남편이 학생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던 친정이나 이미 한 학기 등록금을 내주려고 대출받은 시댁에 손을 내밀기는 어려웠다. 어떻게든 우리가 해결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때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거였다. 하다못해 신생아 때 입는 배냇저고리 하나를 못 사줬으니….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어디에서 아기 중고용품 바자회를 한다고 하면 3개월된 애를 안고 쫓아다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결혼 전에는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해 보지 않았던 나는 신랑 몰래 숨죽여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때마다 다독여주고 늘 사랑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우리 신랑이 없었다면 아마 지쳐서 포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좀처럼 내색하지 않는 남편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러나 우린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가 세 살이 될 무렵 나는 다시 직장에 나갔고, 남편도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출도 다 갚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아찔하다. 그런데, 우리처럼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대학생들이 있다니. 안타깝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열심히 공부하게 해줄 수 있을까

우리 아이가 커서 대학 갈 때쯤에는 등록금이 천만원 가까이 될 거라는데, 신랑 학자금 대출 부담에서 좀 벗어났다 싶더니, 다시 아이 학자금 대출로 빚을 갚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마음이 무거워지다 못해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큰아들은 공부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어 엄마, 아빠께 효도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그런데 걱정이다. 이 아이가 공부만 열심히 할 수 있게 우리가 뒷받침해 줄 수 있을까?

제발, 부디 제발 우리 아이가 대학에서 공부할 때만큼은 엄마 아빠의 힘든 삶을 대물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과 그 풋풋한 젊음을, 열정을 즐길 수 있는 정책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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