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봉사가 눈을 뜨는 행복'과 '흥부가 박을 타는 기쁨'

진성노인대학의 나이 많으신 '학생'들을 위한 '고정' 연주와 판소리 공연

등록 2009.05.09 12:59수정 2009.05.0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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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중국 전통악기와 심청전과 흥부가를 기다리며 공연장에 미리 와서 기다리고 계신 노인학생들. 앞에서 사회자와 공연자의 부탁대로 박수도 치시고 추임새도 넣어주셨다.

중국 전통악기와 심청전과 흥부가를 기다리며 공연장에 미리 와서 기다리고 계신 노인학생들. 앞에서 사회자와 공연자의 부탁대로 박수도 치시고 추임새도 넣어주셨다. ⓒ 강성구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지금동성당의 노인대학 행사장에 머리가 하얗게 세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께서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일찍부터 자리에 앉아있었다. 낯선 중국 복장의 빠우 웬(鮑 文, 24세, 중국인 유학생, 국민대학교 언론정보학과 3학년)이 들어섰고 작은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곧 '고정'이라는 이름의 중국 전통악기(21현, 공명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띵~ 또둥~ 땅~따당 디리리리링~' 처음보는 악기를 가지고 중국의 곡을 연주하는 빠우 웬을 바라보는 노인대학의 학생들은 백발 연세에 비해 상당한 집중력을 가지고 청취하고 곡이 끝날 때마다 환하게 웃으면서 열심히 박수를 치셨다.

a 빠우 웬의 고정 연주모습 국민대 언론정보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중국인 유학생. 21현의 공명악기인 고정의 음색은 맑았다.

빠우 웬의 고정 연주모습 국민대 언론정보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중국인 유학생. 21현의 공명악기인 고정의 음색은 맑았다. ⓒ 강성구


몇 곡의 중국음악을 연주한 빠우 웬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 학생들은 예정에 없던 한국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투리가 진하게 섞여있는 노인들의 빠른 말을 잘 알아들지 못해서 성영옥 학장과 다른 관계자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던 빠우 웬은 노인 학생들의 요청에 대한 설명을 듣고나서 밝게 미소 지으며 다시 무대에 섰다.

그렇지만 아직 한국 노래는 어렵다고 하면서 영화 <첨밀밀>의 주제곡을 중국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듣고싶은 한국 노래는 아니었지만 빠우 웬의 노래를 들은 것으로 만족하는 표정들이셨다.

a 중국 영화 '첨밀밀'의 노래를 중국어로 부르는 빠우 웬 한국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에 아직 준비가 덜되었다고 하면서 첨밀밀의 주제가를 불러주었다.

중국 영화 '첨밀밀'의 노래를 중국어로 부르는 빠우 웬 한국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에 아직 준비가 덜되었다고 하면서 첨밀밀의 주제가를 불러주었다. ⓒ 강성구


두 번째 순서는 두 명이 나와서 벌이는 판소리 공연과 민요 열창이었다. 황세희(이화여대 졸업, 현 서울시 예술강사, 목동초교 국악강사) 짧고 간단한 지도를 통해 공연장의 모든 관객들이 추임새를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었고, 임소연(이화여대 4학년) 학생과 번갈아 가면서 소리와 고수 역할을 하였다.

심봉사가 눈을 뜨는 대목에서는 환희의 기쁜 표정이 얼굴에 가득했고, 흥부가 박을 하나 타고 또 하나 탈 때에는 궁금함과 기대하는 마음이 역력했다. 황세희의 표시에 따라 추임새를 하며 한마음이 되어 반응하던 공연장은 이내 들뜬 흥분감으로 가득찼고 한분 두분 노인 학생들의 손사위와 몸짓이 무대 앞과 통로를 메우기 시작했다.


보람과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던 진성노인대학의 성영옥(세례명 : 마리데레사) 학장은 아직 자리에 앉아계신 어르신들을 향해 어서 나오셔서 춤사위를 나누시라고 권하기에 이르렀다. 노인 학생들의 열렬한 환호와 앙콜 요청으로 인해 두명의 공연자들은 세곡의 민요를 학생들과 함께 더 부르고 나서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a 판소리 흥부가를 열창하는 황세희 선생 심청전과 흥부가의 한 대목을 힘있는 소리로 열창해 주었다.

판소리 흥부가를 열창하는 황세희 선생 심청전과 흥부가의 한 대목을 힘있는 소리로 열창해 주었다. ⓒ 강성구


점심 때가 다 되어서야 공연이 끝났고 주방의 봉사자들이 연주와 공연을 하는 동안 준비한 정갈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식사를 하면서 황세희 씨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두 사람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랑의 문화나눔"을 실천하고 있었다. 고령으로 인해 혹은 건강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이동이 불편하거나 불가능한 분들을 위해 찾아가는 공연을 하고 있다고 했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과 공연장까지 찾아올 수 없는 장애자들을 찾아가서 판소리와 민요를 들려드리면 너무들 좋아하신다고 한다.

임소연 학생은 선후배 간에 호흡이 너무 잘 맞고, 또 고수의 역할을 번갈아 가면서 판소리와 민요를 공연할 수 있어서 힘도 덜 들게 되는 것 같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a 판소리와 민요를 불러준 황세희 선생과 임소연 학생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사랑의 문화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두사람은 오늘의 공연을 통해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판소리와 민요를 불러준 황세희 선생과 임소연 학생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사랑의 문화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두사람은 오늘의 공연을 통해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 강성구


빠우 웬 학생은 아직 한국말과 한국문화가 어려운 부분들이 많지만 밝게 웃는 노인들을 위해 자신의 특기인 고정 연주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을 했다. 더구나 한국에서 생소한 중국의 전통악기를 연주하면서 한국인들에게 고정의 모습과 영롱한 음색을 들려줄 수 있어서 중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연주 연습을 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익혀서 한국과 중국이 가까워지는데 힘껏 노력하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점심을 맛있게 같이 먹었다.

a 흥에 겨운 노인 학생들이 무대 앞으로 나가서 춤사위를 보이셨다. 판소리와 민요를 듣다가 흥이 넘쳐서 무대 앞을 점령하신 노인 대학생들. 혹시 이런 상황도 무력 진압을 하는 건 아니겠지요.

흥에 겨운 노인 학생들이 무대 앞으로 나가서 춤사위를 보이셨다. 판소리와 민요를 듣다가 흥이 넘쳐서 무대 앞을 점령하신 노인 대학생들. 혹시 이런 상황도 무력 진압을 하는 건 아니겠지요. ⓒ 강성구


오늘 연주회는 지금동성당 인근 남양주 지역 노인들을 위한 <진성노인대학>의 연로하신 학생들을 위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특별히 준비하고 마련한 "어버이날" 공연이었다. 매주 금요일 마다 노인대학이 열리고, 매분기 마다 생신을 맞으신 어르신들을 축하해 드리는 생신잔치를 벌인다고 한다. 노인대학에는 믿음반, 소망반, 평화반, 사랑반 등 4개반에 전부 60여 명의 노인들이 있는데 남학생은 몇 명 되지 않았다. 확실한 여초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할아버지들 보다 할머니들이 훨씬 더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셨다.

이 많은 학생들을 위해 열 다섯 명이 넘는 성당의 자원봉사자들이 땀을 흘리면서 점심을 준비하고, 공연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언제나 마음에 새로운 힘을 주고 내일의 희망을 더 크게 키워간다.

덧붙이는 글 | 거동이 불편하고 공연장으로 이동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문화를 공유하고 나눈다는 것이 정말 좋은 열매들을 많이 맺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판소리 한 대목과 민요 한가락을 통해 마음 속의 응어리들을 툭툭 털어내시는 학생들을 보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더 많은 사랑의 문화나눔이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거동이 불편하고 공연장으로 이동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문화를 공유하고 나눈다는 것이 정말 좋은 열매들을 많이 맺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판소리 한 대목과 민요 한가락을 통해 마음 속의 응어리들을 툭툭 털어내시는 학생들을 보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더 많은 사랑의 문화나눔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버이날 #남양주시 지금동성당 #진성노인대학 #흥부가 심청전 #사랑의 문화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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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곳들을 다닌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서 비슷한 삶의 느낌을 가지고 여행을 갈만한 곳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사회적 문제점들이나 기분 좋은 풍경들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고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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