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법을 지켜라, 우리는 양심을 지키겠다"

[현장] 용산참사 희생자 추모미사 열려... 경찰, 추모집회 저지

등록 2009.05.09 22:41수정 2009.05.0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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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4시께 열릴 예정이었던 용산참사 추모집회는 경찰의 저지로 차질을 빚었다. ⓒ 이승훈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 마태 10장 26절

'용산 참사'가 벌어진 지 110일이 지났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찬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끼니를 때웠다. 그리고 아직 치르지 못한 희생자들의 장례를 걱정했다.

경찰도 여전했다. 경찰은 유가족들과 용산범국민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열려던 추모집회를 불법집회라며 가로막았다. 항의하는 유가족들의 외침은 "현행범으로 모두 체포하겠다"는 경찰의 차디찬 스피커 소리에 묻혔다.

용산 참사 현장인 서울 한강로 남일당 건물 앞에서 9일 오후 4시께 시작될 예정이었던 '용산참사 해결 500인 1박2일 농성'은 시작부터 그렇게 경찰의 방해로 중단되고 말았다.

평화로운 추모집회마저 저지한 경찰... "현행범으로 체포할 것"

송경동 시인이 "우리가 도로 교통을 방해한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 평화로운 추모 집회까지 막으려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허사였다.

용산 경찰서 관계자는 "송경동씨, 집회를 선동하면 체포하겠다, 마이크 스피커도 긴급 압수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경찰은 이날 300여명이 참석한 집회를 막기 위해 12개 중대 1000여명을 동원했다.


경찰의 저지에 집회 참가자들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노래를 함께 부르고 국악 공연과 율동 공연 등 문화제를 이어갔다.

다행히 저녁 7시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추모미사는 예정대로 열렸다. 남일당 건물 옆 골목에 진을 치고 참가자들을 에워싸고 있던 경찰은 추모미사까지 막을 염치는 없었는지 미사 시작 전 모두 철수해 자리를 내줬다.

남일당 건물에 마련된 용산 참사 분향소 옆으로 제단이 놓였다. 불에 탄 흔적이 가득한 건물들 사이로 입당 성가 '주님을 부르던 날'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사제복을 입은 신부들이 제단에 올랐다. 

이날 '거리 미사'는 현직 교구에서 은퇴한 문정현 신부, 서울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이강서 신부, 한국순교복자회 이상윤 신부가 공동으로 집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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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저녁 7시부터 열린 추모미사에 참석한 유가족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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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이상윤 신부, 이강서 신부, 문정현 신부.(왼쪽부터) ⓒ 이승훈


추모 거리 미사는 예정대로... "포기하지 말고 지지 말자"

강론을 맡은 이상윤 신부는 "한때는 일본이, 한 때는 미국이, 그리고 지금은 대한민국 정부가 아픔을 주고 있는 용산은 우리의 존재로 인해 억압받고 가난한 자들의 성지로, 그리고 이들의 해방을 선언하는 아름다운 땅으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그때까지 두려워 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지지 말자"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추모 미사가 끝난 후 이강서 신부는 이날 오후에 있었던 경찰의 집회 방해에 일침을 놓았다.

"오늘 오후 우리를 현행범, 예비범죄자, 테러범으로 보는 듯한 경찰 책임자들의 눈초리를 보면서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행위가 다소 법을 어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법에 앞서는 양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경찰은 법을 지켜라, 우리는 양심을 지키겠다."

고 이성수씨의 부인 권명숙씨는 "가정의 달인 5월 우리 유가족들은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을 빼앗겨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하지만 우리 유가족들은 공권력의 탄압에 똘똘 뭉쳐 대응할 것이다, 여기 계신 분들이 많이 기도해주시고 함께 힘을 보태 달라"고 요청했다.

유가족들과 이날 미사 참가자들은 같은 자리에서 1박 2일 밤샘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농성 둘째날인 10일에는 오전 11시 추모예배를 시작으로 난타 공연, 노래자랑, 삼겹살 파티, 영화 <워낭소리> 상영 등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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