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방패로 믿었는데"... 판사들, 대법원장 겨냥

법원내부통신망에 대법원장에 대한 실망 표시하는 성토 글 잇따라

등록 2009.05.14 17:22수정 2009.05.1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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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대법원장이 13일 오전 발표문을 통해 '촛불재판 개입의혹'을 받아온 신영철 대법관에게 엄중경고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소장판사들이 요구한 징계위 회부는 하지 않아 내부 반발이 확산될 전망이다.(자료사진) ⓒ 유성호

이용훈 대법원장이 13일 오전 발표문을 통해 '촛불재판 개입의혹'을 받아온 신영철 대법관에게 엄중경고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소장판사들이 요구한 징계위 회부는 하지 않아 내부 반발이 확산될 전망이다.(자료사진) ⓒ 유성호

소장 판사들의 '사퇴' 요구에도 불구하고 버티기로 일관하는 신영철 대법관뿐만 아니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지 않고 '엄중경고'로 솜방망이 처분을 내린 이용훈 대법원장도 사법부 수장으로서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법원내부통신망에 이 대법원장에 대해 실망감을 표출하는 판사들의 '성토' 글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제대로 수습되지 않는다면 이 대법원장이 입은 상처도 치유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변민선 판사 "대법원장에 대한 깊은 신뢰에 큰 금이 오기 시작"

 

사법연수원 28기로 법관생활 11년차인 서울북부지법 변민선 판사는 14일 법원내부통신망에 사법부를 보호할 든든한 방패로 믿어왔던 대법원장의 신뢰에 큰 금이 오기 시작했다며 실망감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침묵하던 판사였습니다"라고 말문을 연 변 판사는 "대법원장님이 취임하시면서 오늘까지 누가 뭐라든 대법원장님을 깊게 신뢰했던 판사이고, 대법원장님은 내ㆍ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사법부를 보호할 수 있는 든든한 방패라고 믿어 왔던 판사입니다"라며 "그런데 대법원장님의 결정을 보면서 저의 신뢰에 큰 금이 오기 시작했습니다"라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는 "신 대법관의 과거 행위가 사법행정권 범위라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사법행정권 범위를 벗어난 재판권 침해행위라고 판단한 것인지는 (대법원장) 발표문의 내용을 보고는 알 수가 없다"며 "신 대법관은 다양한 방법으로 재판 개입을 했고 국회 청문회에서는 허위진술을 했다는 말까지 나왔는데, 대법원장님은 엄중경고로 그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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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부지법 소속 단독판사 29명은 14일 오후 서울 신정동 청사 중회의실에서 단독판사회의를 열고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에 대해 "명백한 재판권 침해 행위로 위법하고 부당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진은 14일 오후 서울남부지법 직원들이 청사로 들어가는 모습. ⓒ 남소연

서울남부지법 소속 단독판사 29명은 14일 오후 서울 신정동 청사 중회의실에서 단독판사회의를 열고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에 대해 "명백한 재판권 침해 행위로 위법하고 부당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진은 14일 오후 서울남부지법 직원들이 청사로 들어가는 모습. ⓒ 남소연

이어 "신 대법관이 나름대로 최선의 사법행정을 한다는 이유로 (몰아주기 배당을 않기로 한) 약속을 위반하면서까지 특정 사건에 있어서 특정 재판부를 배제시켰다면, 누가 봐도 '최선의 사법행정'은 아닐 것이고, 신 대법관의 행위가 사법행정권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다면, 엄중경고로 끝낼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대법원장에 불만을 표시했다. 

 

변 판사는 그러면서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신 대법관의 행위는 사법행정권 범위를 넘어서 판사들에 대한 명백한 재판권 침해행위이고, 이는 헌법으로부터 보호받는 판사가 스스로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법부 독립을 지키라는 헌법적 명령을 위반한 판사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지 않은 채 엄중경고를 받는 것으로 그리고 그 판사가 사과의 말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사법부의 독립을 위한 수단으로서 보장된 헌법상의 신분을 내세워 모든 것이 묻힌다면, 과연 어느 국민이 법원을 헌법기관으로 인정할 수 있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법관의 신분보장은 헌법에서 요구하는 사법부 독립을 위한 수단이고 하위개념"이라며 "법관의 신분보장이 사법부 독립이라는 원칙과 충돌할 때에는 상위 가치인 사법부 독립의 원칙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 판사는 "헌법상의 신분보장이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수단인 이상 사법부의 독립과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해서도 신 대법관의 사퇴 문제는 우리 판사 모두가 토론할 수 있고 토론해야 한다"며 "이를 이념적 또는 정치적으로 포장해 판사의 입을 다물게 할 수는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각급 법원의 평판사회의와 법관회의 그리고 나아가 전국 평판사회의와 전국법관회의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변 판사는 끝으로 "우리 스스로 신 대법관의 사퇴문제를 넘어서 사법부 독립을 지키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며 "어떻게 결론이 나든 그 장에서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따뜻한 신뢰로 바뀔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박재우·김예영·김윤정 판사도 실망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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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부지법 소속 단독판사 29명은 14일 오후 서울 신정동 청사 중회의실에서 단독판사회의를 열고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에 대해 "명백한 재판권 침해 행위로 위법하고 부당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진은 14일 오후 서울남부지법 직원들이 청사로 들어가는 모습. ⓒ 남소연

서울남부지법 소속 단독판사 29명은 14일 오후 서울 신정동 청사 중회의실에서 단독판사회의를 열고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에 대해 "명백한 재판권 침해 행위로 위법하고 부당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진은 14일 오후 서울남부지법 직원들이 청사로 들어가는 모습. ⓒ 남소연

이 대법원장에 대한 실망은 다른 판사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전주지법 정읍지원 박재우 판사(사법연수원 34기)도 14일 법원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리고 "진실과 거짓, 권리의 행사와 권한의 남용, 책임의 유무 및 그 질과 양을 분별해서, 단호하고도 결연한 태도로 판단해야 하는 업이 법관직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대법원장님과 신영철 대법관님, 두 분에게서 그와 같은 분별력 있는 모습을, 단호하고도 결연한 판단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 소속으로 현재 홍콩에서 해외연수 중인 김예영 판사도 13일 법원내부통신망에 "대법원장은 '엄중경고'로 신 대법관은 사과로 사태를 마무리하려고 한다"며 "멀리서 지켜보는 마음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고 깊은 실망감을 표시했다.

 

심지어 서울가정법원 김윤정 판사(사법연수원 32기)는 지난 12일 법원내부통신망에 '▶◀ 謹弔 사법독립'이라는 제목의 글로 '사법부 독립이 죽었다'는 사망선고 진단을 내리며 현 사법부 상황을 강하게 꼬집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변민선 #대법원장 #박재우 #김예영 #김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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