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로 기저귀를 만든다고?

철따라 새로 쓰는 우리 마을 절기 이야기(10)

등록 2009.05.15 09:03수정 2009.05.1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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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입하 즈음에는 30도 가까이 오르는 날씨에 이른 더위를 먹었는데 주말에 비가 내리고 나니 평년 기온입니다. 마을은 이제 아카시아 향기로 가득합니다. 철쭉과 모란이 물러나니 아카시아꽃, 찔레와 넝쿨 장미가 만발했습니다. 꽃이 물러난 자리에는 흔적이 있지요. 매실, 살구, 앵두, 버찌와 같은 과육열매들과 온갖 씨앗들이 그 흔적입니다. 꽃과 곤충의 합작품이지요. 이렇게 마을의 봄이 무르익고 여름을 부릅니다.

 

a 이끼가 낀 바위를 살펴보고 있는 아이들 매일 지나다니던 곳인데도 이끼를 주제로 산책을 하다보니 안보이던 이끼들이 보이고, 숲이 더 새롭게 다가온다.

이끼가 낀 바위를 살펴보고 있는 아이들 매일 지나다니던 곳인데도 이끼를 주제로 산책을 하다보니 안보이던 이끼들이 보이고, 숲이 더 새롭게 다가온다. ⓒ 한희정

▲ 이끼가 낀 바위를 살펴보고 있는 아이들 매일 지나다니던 곳인데도 이끼를 주제로 산책을 하다보니 안보이던 이끼들이 보이고, 숲이 더 새롭게 다가온다. ⓒ 한희정

 

아이들과 함께 마을과 숲을 산책하며 본 것을 적은 것입니다. 절기 공부를 시작하던 처음에는 오며 가며 본 것을 적으라는 말에 매실, 단풍, 냉이 이렇게 '이름'만 적었는데 이제 그 생물의 지금 모습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말을 넣어 적어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적었습니다. 하나 하나 그 식물의 특징을 잘 잡아내어 표현했습니다.

 

a 줄기에 털이 있어 옷에 잘 달라 붙은 갈퀴손이 여기 저기 지천인 갈퀴손이를 옷에 붙인 아이들, 이 갈퀴손이를 보면 뜯어서 다른 아이 옷에 던지고 싶게 유혹하는 것 같다고 한다.

줄기에 털이 있어 옷에 잘 달라 붙은 갈퀴손이 여기 저기 지천인 갈퀴손이를 옷에 붙인 아이들, 이 갈퀴손이를 보면 뜯어서 다른 아이 옷에 던지고 싶게 유혹하는 것 같다고 한다. ⓒ 한희정

▲ 줄기에 털이 있어 옷에 잘 달라 붙은 갈퀴손이 여기 저기 지천인 갈퀴손이를 옷에 붙인 아이들, 이 갈퀴손이를 보면 뜯어서 다른 아이 옷에 던지고 싶게 유혹하는 것 같다고 한다. ⓒ 한희정

 

빙글빙글 어지러운 단풍열매

뱅글뱅글 헬리콥터의 날개인 단풍열매

 

암술이 4-5개나 되는 모란

지금은 쉬고 있지만 나중은 씨앗을 퍼트리게 될 모란

 

척척 달라붙는 갈퀴덩굴

옷에 붙는 갈퀴덩굴

던지고 싶게 유혹하는 갈퀴덩굴

 

작고 하얀 꽃이 핀 국수나무

국수처럼 쭉 나오는 국수나무

 

살구가 커진 살구나무

군침 돌게 하는 살구나무

언제 익을까 생각하게 하는 살구나무

 

애벌레에 작살난 작살나무

애벌레집이 된 작살나무

애벌레에게 항복한 작살나무

벌레 소굴 작살나무

 

나뭇가지에 오똑 솟아난 목련 씨앗

송충이 같은 씨앗이 달린 목련

 

먹고 싶지? 매실나무

생각만해도 군침 도는 매실

 

a 국수나무꽃 키작은 나무로 찔레나 산딸기와 함께 숲 둘레에 많이 사는 국수나무의 꽃이다.

국수나무꽃 키작은 나무로 찔레나 산딸기와 함께 숲 둘레에 많이 사는 국수나무의 꽃이다. ⓒ 한희정

▲ 국수나무꽃 키작은 나무로 찔레나 산딸기와 함께 숲 둘레에 많이 사는 국수나무의 꽃이다. ⓒ 한희정

 

여름숲, 우리를 시원하게 맞아주는 것은 비단 계곡물 뿐 아닙니다. 신선한 숲에는 숲을 더 싱그럽게 만들어주는 이끼가 있습니다. 생명의 진화사에서 가장 먼저 육지에 발을 내딛은 주인공인 이끼는 높은 산, 깊은 골, 강가, 건조한 땅, 그늘진 곳, 심지어 아스팔트와 시멘트벽 위에까지 가리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습니다. 물기가 없는 마른 바위 위에서 매마른 이끼는 죽은 듯 보이지만 비가 내리면 빗물을 듬뿍 받아 파릇파릇 다시 살아난다고 합니다.

 

a 작살나무에 달라 붙은 애벌레들 이 애벌레들 때문에 작살나무잎이 작살이 났다. 한놈도 제대로 된 제 모양을 갖추고 있는 놈이 없었다. 이 애벌레는 어떤 곤충의 애벌레일까?

작살나무에 달라 붙은 애벌레들 이 애벌레들 때문에 작살나무잎이 작살이 났다. 한놈도 제대로 된 제 모양을 갖추고 있는 놈이 없었다. 이 애벌레는 어떤 곤충의 애벌레일까? ⓒ 한희정

▲ 작살나무에 달라 붙은 애벌레들 이 애벌레들 때문에 작살나무잎이 작살이 났다. 한놈도 제대로 된 제 모양을 갖추고 있는 놈이 없었다. 이 애벌레는 어떤 곤충의 애벌레일까? ⓒ 한희정

 

오늘은 이런 이끼의 생명력에 대해 공부하고 실제로 마을과 숲을 돌며 이끼를 찾아보았습니다. 정말 곳곳에서 이끼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다음 중 이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은?' ①비료, ②가구, ③기저귀, ④붕대, ⑤외과 치료제, ⑥내과 치료제, ⑦항암제, ⑧광물 탐사, ⑨환경오염 감지

 

a 골목길 시멘트와 돌담에서 마른 이끼를 보고 있는 아이들 바짝 말라 비틀어진 이끼를 조금씩 떼어 집으로 가져갔다. 하룻밤 동안 물에 담가 놓으면 파릇파릇 살아날 거라고 일러 주었다. 아이들 믿기지 않은 듯 하지만 정말 그렇다.

골목길 시멘트와 돌담에서 마른 이끼를 보고 있는 아이들 바짝 말라 비틀어진 이끼를 조금씩 떼어 집으로 가져갔다. 하룻밤 동안 물에 담가 놓으면 파릇파릇 살아날 거라고 일러 주었다. 아이들 믿기지 않은 듯 하지만 정말 그렇다. ⓒ 한희정

▲ 골목길 시멘트와 돌담에서 마른 이끼를 보고 있는 아이들 바짝 말라 비틀어진 이끼를 조금씩 떼어 집으로 가져갔다. 하룻밤 동안 물에 담가 놓으면 파릇파릇 살아날 거라고 일러 주었다. 아이들 믿기지 않은 듯 하지만 정말 그렇다. ⓒ 한희정

 

아이들 잠시 고민하더니 저마다 이유를 대며 이것 저것 답을 골라봅니다. 그렇지만 답은 없습니다. 모두 이끼로 이미 만들어 사용했었거나 만들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지요. 이끼는 무기질이 풍부하고 보습력이 뛰어나 비료로 이용합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이끼를 침대 속재료와 벽과 지붕의 충전제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또 인디언과 에스키모인들은 이끼를 말려 아기 기저귀로 사용했다고 하니 정말 놀랍습니다. 솜보다 흡수력이 높아서 1차 대전 중 캐나다 적십자는 이끼를 붕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이끼를 습진, 열상, 화상 부위에 발랐다고 합니다. 그러니 외과 치료제로 이용하는 셈이고, 이끼 추출물로 기관지염이나 심혈관 질환제, 이뇨제를 만든다고 하니 내과 치료제로 이용하는 셈입니다. 구리, 납, 철, 아연 같은 광물이 풍부한 토질에서 자라는 이끼를 이용해 매장 광물을 예측할 수도 있고, 대기오염이나 수질오염을 측정하는 지표종으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끼에 이런 설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불사신 이끼'

 

a 나무에 붙어 사는 이끼를 보는 아이들 아니, 이끼가 살지 못하는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시멘트와 아스팔트 위에서도 사는 놈이 있으니, 심지어 우주 공간에서도 살아 남는다고 하던데...

나무에 붙어 사는 이끼를 보는 아이들 아니, 이끼가 살지 못하는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시멘트와 아스팔트 위에서도 사는 놈이 있으니, 심지어 우주 공간에서도 살아 남는다고 하던데... ⓒ 한희정

▲ 나무에 붙어 사는 이끼를 보는 아이들 아니, 이끼가 살지 못하는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시멘트와 아스팔트 위에서도 사는 놈이 있으니, 심지어 우주 공간에서도 살아 남는다고 하던데... ⓒ 한희정

 

땅에서 솟아나는 우산이끼

개미에게는 완벽한 우산이 될 것 같은 우산이끼

아스팔트 위에서도 자라는 이끼

계곡물에 담갔더니 스펀지가 되어 버린 마른 이끼

말라죽어가는, 하지만 비가 오면 파릇파릇해지는 이끼

말라죽어도 불사신 같이 살아나는 이끼

 

실러컨스, 메타세콰이어, 소철 같은 것을 우리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부릅니다. 어쩌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이끼'가 정말 살아있는 화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의 나약함이 손과 두뇌를 발달시킬 수밖에 없게 한 이유 중 하나라면, 이끼는 강인하기 때문에 진화할 필요 없이 아주 단순한 헛뿌리로 세상을 지배하는 불사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마을학교 춤추는방과후배움터는 북한산 자락 인수동에 자리잡은 대안학교입니다. 매주 수요일 절기 공부를 하며 우주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 절기 공부는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의 환경교육현장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2009.05.15 09:0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마을학교 춤추는방과후배움터는 북한산 자락 인수동에 자리잡은 대안학교입니다. 매주 수요일 절기 공부를 하며 우주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 절기 공부는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의 환경교육현장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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