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투지 하는 내게 "야! 경제도 어려운데 이게 뭔 짓이야!"

사람, 생명, 평화의 길 위의 오체투지순례단을 맞으며

등록 2009.05.18 08:30수정 2009.05.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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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순례단의 서울 입성에 내 가슴이 뛰다

 

사람, 생명, 평화의 길을 104일째 하고 있는 오체투지순례단이 16일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순례단이 서울로 입성했다는 소식은 제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먹고 사는 일이 바쁘다고, 하는 일이 많다고, 온갖 핑계를 대가며 오체투지순례단의 소식을 강건너 불보듯 했는데 어느덧 서울까지 오셨답니다. 그것도 걸어서도 아니고, 삼보일배도 아니고, 온 몸을 땅에 대고 기어서 서울까지 오셨습니다. 

 

저는 일요일 아침이 주는 늦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일찌감치 비온 뒤의 쌀쌀함을 느끼며 집을 나섰습니다. 9시도 안된 시간이었지만 사당역에는 오체투지순례를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저는 생명평화탁발 순례는 해보았지만 삼보일배나 오체투지는 처음입니다. 징소리에 맞춰 오체투지를 시작했습니다.

 

차가운 아스팔트는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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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순례단 ⓒ 권영숙

오체투지순례단 ⓒ 권영숙

 

아스팔트에 이마를 대는 그 순간, 온 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아스팔트에서 뿜어지는 냉기와 메마른 먼지 냄새가 코끝으로 확 들어왔습니다. 수십 년간 쌓인 먼지가 며칠 째 내린 비에는 어림도 없다는 듯 아스팔트를 지키고 있습니다.

 

담배 냄새, 하수구 냄새, 누군가 밤새 토한 구토 냄새까지 아스팔트는 다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스팔트에 이마를 대며 저는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처, 떠나보내지 못한 아픔도 한순간 바람으로 날아 갈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한배, 한배 온몸이 아스팔트에 닿을 때마다 제 인생의 필름은 과거로, 과거로 돌아갑니다. 젊은 날 아팠던 기억들, 열정들, 희망들, 그리고 패배감까지 뒤처질새라 한없이 올라옵니다. 저는 그 과거 속에서 내가 얼마나 나를 주장하고 살았던가, 내가 얼마나 남에게 정의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줬던가를 참회했습니다. '생명을 살리자'면서 집에 있는 꽃에 물은 안 주고, '사람만이 희망이다'라 말하면서도 실은 믿지 않았던 저를 되돌아봤습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돌아보며 참회한 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 오체투지를 하는 제 온 몸에 한기가 들며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서야 내 몸이 편했을 때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자연이란 자연은 다 파헤치고, 콘크리트로 도배를 할 때 죽어가야만 했던 생명체의 아우성이 들렸습니다.

 

이마로 '사람'을, 두 팔꿈치로 '생명'을, 두 무릎으로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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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신부님들 ⓒ 권영숙

스님과 신부님들 ⓒ 권영숙

왜 스님께서, 신부님께서 당신의 절과 성당을 떠나 오체투지순례를 하시는지 비로소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위를 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땅에 닿는 이마로 '사람'을 말씀하시고, 땅에 닿는 두 팔꿈치로 '생명'을 말씀하시고, 땅에 닿는 두 무릎으로 '평화'를 말씀하고 계실 뿐입니다. 

 

"야! 경제를 살려야지, 지금 뭐하는 짓이야!"

 

한 어르신이 오체투지하는 저희를 향해 소리를 지르십니다. 제 마음에 그 어르신의 화난 음성이 예전과 달리 화나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 아저씨에 대한 미움도, 원망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냥 고요합니다. 그 분의 마음이 지금 그러함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때는 싸우기 위해 도로 위에 섰다면,

오늘은 평화와 화해를 위해 길 위에 섰다

 

저는 과거에도 지금처럼 도로를 점거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도 나이 드신 어르신께 욕을 먹었고, 오늘도 욕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도로는 오늘의 도로와 달랐고, 그때 욕 먹을 때와 오늘 욕 먹을 때의 제 마음이 달랐습니다.

 

도로를 점거한 행위 그 자체는 과거와 똑같은데 그 안에 다른 제가 있습니다. 그때는 분노로 도로를 점거했다면, 오늘은 '참회'하는 마음으로 길 위에 섰습니다. 그때는 싸우기 위해 도로를 점거했다면 오늘은 '평화와 화해'를 말하기 위해 길 위에 섰습니다. 그때는 주장하기 위해, 내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였다면 오늘은 '비우고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17일), 오체투지순례단이 섰던 그 길은 여전히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줍니다. 하루 순례를 접을 때 지관 스님께서 <오마이뉴스> 가족에게 해주신 말씀은 아마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나고, 세상을 바꾸는 그 한 사람도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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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스님 ⓒ 권영숙

지관스님 ⓒ 권영숙

이 세상의 주인공은 당신이 아니고, 바로 나다. 내가 바뀌어야 만이 이 세상이 바뀐다. 우리가 경제, 물신 중심주의에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내가 창조주 입장에서, 주인 된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어떤 생각과 인식을 가지고 살면 이루어진다, 라는 확실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면 어려운 세상, 힘든 세상도 괜찮을 것이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도 우리가 뽑았다. 그런데 그걸 지금 우리가 과보를 받는다 생각하면 과보다. 그런데 과보도 좋은 과보가 있고, 나쁜 과보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가 또다시 우리 자신이 좋은 의미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신 선생님이다'라고 받아들이면 이명박 대통령도 존경스러운 분이다.

 

그런데 우리가 뽑아 놓은 대통령을 우리가 욕한다는 것은 결국 누구 책임? 우리 책임이다.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을 욕할 것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을 통해서 어떻게 변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갈 건가, 이걸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좋지 않겠냐, 그래서 오체투지는 스스로 자성과 성찰을 하는 기도다. 

 

우리가 좀더 성숙되고 좀더 좋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이명박 대통령도 국민이 이런 국민이니까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라고 자성하고 반성할 것이다. 그 예가 촛불이었잖나. 촛불이 100만인 모이니까 대번에 반성했다. 그런데 지금은 쪼개지니까 아무도 반성 안 한다. 그러니까 누구 책임? 결국은 우리 책임이다.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 변해야만 행복도 가질 수 있지, 우리는 안 변하면서 나는 왜 불안할까, 왜 힘들까, 그럼 안된다. 

 

스님께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욕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뀌면 된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바로 나고, 이 세상을 바꾸는 그 '한 사람'도 바로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소중한 하루였습니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당신도 행복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5.18 08:30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오체투지순례단 #수경스님 #문정현신부 #지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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