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내년 5월엔 어디 가죠?"

2009년 모처럼 만에 떠난 가족 여행

등록 2009.05.18 17:10수정 2009.05.1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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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울 가족 2009년 5월에 찍은 가족 사진

울 가족 2009년 5월에 찍은 가족 사진 ⓒ 권성권

▲ 울 가족 2009년 5월에 찍은 가족 사진 ⓒ 권성권

우리 집 세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다. 아이들이 활동하는 무대는 어린이 집과 동네 앞 놀이터, 그리고 집이 전부다. 남들처럼 변변한 곳에 놀러갈 기회가 없는데도, 아이들이 씩씩하게 잘 자라주어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던 터에 올 5월엔 멀리 인천 월미도까지 나들이를 갔다 오게 되었으니, 아이들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지 않을까 싶었다.

 

첫째 딸아이 민주는 올해 7살이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고 벌써부터 자랑한다. 구립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첫째 아이는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큰 딸이라 그런지 또래 아이들보다 뭐든지 앞장서려고 하고, 또 잘 챙겨주는 까닭이다.

 

가끔 또래 아이들이 집으로 놀러오면 민주는 그때마다 대장 노릇을 한다. 한글 쓰기도 그렇고 숫자 놀이도 그렇고, 퍼즐 게임도 자신이 나서서 잘 가르쳐 준다. 그런 딸 아이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길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다른 사람을 챙겨주면 챙겨줄수록 그것이 곱이 되어 사랑으로 돌아오리라 싶다.

 

a 첫째 딸 민주 우리 딸이 올해 7살이 되었다

첫째 딸 민주 우리 딸이 올해 7살이 되었다 ⓒ 권성권

▲ 첫째 딸 민주 우리 딸이 올해 7살이 되었다 ⓒ 권성권

둘째 민웅이는 올해 5살이다. 둘째라 그런지 첫째와 막내보다 성격이 활달하지는 못하다. 뭐랄까? 조금은 소심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차분하다고 해야 할까? 가끔 민웅이를 보면 정리 정돈을 참 잘하는 것 같다. 그만큼 민웅이는 무난한 성격의 소유자다.

 

지금 다니고 있는 사립 어린이집에서도 첫째처럼 인기가 좋다. 어린이집 원장님은 우리 민웅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는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들 사이에서 자기주장보다는 또래 아이들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까닭이다. 내 딴에는 너무 그쪽으로 쏠리지 않을지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서 사랑을 받는다고 하니, 나도 둘째로부터 사랑받는 비결을 좀 더 배워야 할 것 같다.

 

셋째 민혁이는 그야말로 제멋 대로다. 둘째 민웅이와 한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정확히 따진다면 10개월 정도 차이다. 그러니 밖에 나돌아 다니면 사람들이 혹시 쌍둥이가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그냥 웃고 넘어간다.

 

a 둘째 민웅이 우리 민웅이가 5살이 되었다

둘째 민웅이 우리 민웅이가 5살이 되었다 ⓒ 권성권

▲ 둘째 민웅이 우리 민웅이가 5살이 되었다 ⓒ 권성권

민혁이는 우리 식구들에게 눈치를 보는 법이 없다. 아빠인 나에게 등마를 태워달라고 할 때도, 방안 창문 같은 곳에 올라설 때에도 막무가내로 달려든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기어코 소원성취를 해야 하는 타입이다. 물론 그때마다 내게 하는 짓이 있으니, 바로 애교부리는 일이다. 애교부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아무리 지나쳐도 얄밉지 않다. 사랑도 애교와 함께 한다면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커가는 아이들 틈 속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으니 그지없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더 많은 것들을 주려면 누군가 여행을 떠나보라고 했던가. 그치만 솔직히 그럴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 마천동 남한산성 아랫자락에 조그마한 교회를 개척한 탓이다. 그만큼 여유도 나지 않을뿐더러, 주머니 사정도 넉넉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래도 올해 5월엔 첫째 딸아이가 태어나 자란 인천 월미도에 다녀왔다. 아내가 어찌나 졸라대든지 마지못해 그 청을 들어주었다. 아이들 셋도 집안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난다는 생각에 신이 났던지 가기 전부터 콧노래로 흥얼거렸다. 가족 여행은 그렇듯 모두를 흥분시키는 특효약인 것 같았다.

 

그곳에 갈 때는 잠실에서 버스를 타고 인천터미널까지 도착하여 시내버스를 갈아타서 갔고, 올 때는 전철을 갈아타고 집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가고 오는 길에 우리 집 세 아이들이 어찌나 떠들고 웃던지, 다른 승객들에게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였다. 1년 만에 바깥나들이를 하는 탓에 그렇게 신이 난 모양이었다.

 

a 막내 민혁 민혁이가 4살이 되었다

막내 민혁 민혁이가 4살이 되었다 ⓒ 권성권

▲ 막내 민혁 민혁이가 4살이 되었다 ⓒ 권성권

"민주야, 네가 태어나서 놀던 곳인데. 기억나니?"

"응. 아니, 몰라."

"너랑 엄마랑 여기 자주 왔었어."

"저 갈매기한테 새우깡 주고 그랬는데?'

"…."

"민웅아, 민혁아, 여기가 누나가 살았던 곳이야."

"누나가? 누나가?"

"그래. 누나가 살았던 곳인데. 좋아?"

"응."

 

그날 그곳에서 오랜만에 바다바람도 쐬고, 갈매기 떼도 만나 악수도 하고, 놀이기구도 하나씩 타 보고, 그리고 중구청 중화거리를 지나면서 맛난 자장면 한 그릇씩을 먹고 돌아왔으니, 아이들 머릿속에 2009년 5월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다.

 

"여보, 내년 5월엔 어디를 가죠?"

"글세. 민웅이가 태어난 충주로 가 볼까?"

"그거 좋겠는데요."

"그 다음 5월은 민혁이 태어난 하남으로 가고."

"아빠, 어디로 가?"

"아빠, 어디로 간다고?"

"아빠, 어디?"

2009.05.18 17:10ⓒ 2009 OhmyNews
#5월 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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