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언제나 사회적 금기를 깨는 사람
 제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 주었다면 사과"

황석영씨, 블로그에 글 올려 'MB 중도실용주의', '광주사태' 발언 해명

등록 2009.05.19 10:40수정 2009.05.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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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4일 이명박 대통령 카자흐스탄 방문에 동행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소설가 황석영

5월 14일 이명박 대통령 카자흐스탄 방문에 동행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소설가 황석영 ⓒ 청와대 제공

5월 14일 이명박 대통령 카자흐스탄 방문에 동행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소설가 황석영 ⓒ 청와대 제공

"이명박 정부는 중도실용주의", "광주사태" 발언 등으로 '변절' 논란에 휩싸였던 소설가 황석영(68)씨가 18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적극 해명에 나섰다.

 

황석영씨는 우선 "제가 이명박 정부를 중도실용이라고 한 것은 이 정부가 말 그대로 중도실용을 구현하기를 바라는 강력한 소망 때문이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광주사태' 발언이나 진보진영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광주는 내 문학이자 나의 인생 그 자체였다"며 "이러한 척박한 시대에 진보 정당을 고수하고 있는 분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의인들"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황씨는 "분단체제는 냉혹한 이분법을 낳았다"며 "오직 자기 진영만이 선이고, 상대 진영은 악이라는 논리로만 무장하고 있다. 저는 그 이분법에서 벗어나 '느슨한' 꿈을 꾸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며칠 동안 얼마나 놀라고 황당하셨습니까?"

 

황석영씨가 이날 저녁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은 "지난 며칠 동안 얼마나 놀라고 황당하셨습니까?"라는 말로 시작된다.

 

황씨는 이어 "중앙아시아에서 날아오는 그림의 '기묘한 풍경'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당연한 노릇이었을 것"이라며 "작가는 언제나 사회적 금기를 깨는 자이며, 저의 장기가 바로 월경이기 때문에 행동 자체가 논의의 출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논의의 출발로부터 엉뚱한 해석과 성급한 판단이 속출했다"며 "우선 제 말과 행동의 뜻에 대하여 구구하게 변명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주위의 염려처럼 한 호흡 쉬고 나서 대답할 것을 성급하게 대응한 면이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새로운 노선의 위태로움에 대하여"라는 첫번째 소제목의 글에서 황씨는 20년 전인 1989년 고 문익환 목사와의 방북 당시에 대해 회상하는 한편 진보 진영 내의 '교조주의'에 대해 비판했다.

 

"'느슨함'은 언제나 편협하고 상투적인 교조주의에 의하여 금방 훼손되어버리고는 합니다. 문 목사님은 '범민련'의 편향에 대하여 근심하다가 대중적인 통일운동을 할 수 없다며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통일운동이 거리에서 정부와 투쟁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서는 안 되며 대중적인 통일운동은 민관이 하나가 되어야만 가능하다고 문 목사님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현정부의 정체성과 당면 과제에 대하여"라는 두번째 소제목의 글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중도 실용주의냐, 아니냐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현정부가 '중도 실용주의'냐 아니냐 하는 규정을 내리기 전에 한국사회의 현단계를 먼저 함께 고민하자"며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는 틀림없는 보수 정부"라고 규정했다.

 

"우리가 직접선거 내지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기회를 획득했던 6월항쟁 이후 87년체제를 제대로 자기화하지 못했던 것은 양김의 분리에 의하여 민주화운동 세력이 두 쪽으로 갈리면서 운동의 주체를 스스로 포기하고 보수 정치의 틀 속으로 흡수되면서 우리의 원죄가 시작되었습니다.…

 

극우보수로 표현되는 한쪽은 보수라고 부르기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파시즘에 가깝고 오히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틀림없는 보수 정부였던 셈이지요. 이들 십년간의 두 정부가 보수 정부가 아니라면 어떻게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 시장 경제를 신봉할 수가 있었겠으며 중동 파병이나 자유무역협정 따위를 밀어붙였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진보정당은 그 좌파적 함의의 절반 이상을 북한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지요. 천만 노동자라고 하면서도 그들의 투표는 매우 보수적입니다."

 

그는 특히 "시민사회란 국가와 시장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문화적 영역"이라며 "그러나 우리의 시민 사회는 문화는 없고, 진영만 존재한다. 이분법적인 진영론에 근거한 논리만이 환영받는다"고 꼬집었다.

 

"한국사회에서 합리적 보수 또는 중도 우파의 숫자가 많아져야 시민사회의 건전한 상식이 설 수 있다고 말하면, 황 아무개가 이제부터는 합리적 보수가 되려나보다 라고 대번에 나옵니다. 그러니 모두들 자기 진지를 굳건히 고수하며 선명성 경쟁을 해야 되지요. 남남갈등이나 남북대결을 놓고 보더라도 대동소이는 상식의 타당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황씨는 "강경하고 지당한 말씀을 해서 자기편의 지지를 받기는 쉬운 일이다. 저는 큰 선에서 양쪽을 다 비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저희끼리의 옳은 얘기보다는 대중과의 소통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양자택일형 옳고 그름을 따지고 밀어붙이는 데에 국민적 역량을 탕진하고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지요. 이런 식의 이념적 정쟁으로 집권을 되풀이하게 되면 좌든 우든 준비되지 않은 정부와 정책의 간헐적인 주고 받기가 계속될 뿐입니다. 그리고 양편이 새로운 줄세우기로 5년마다 국력을 허비하게 될 것입니다."

 

황씨는 '이명박 정부가 중도실용주의 정권이냐'는 논의와 관련해 "그들은 '중도실용주의' 가치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저들 말대로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촛불시위' 이후 용산참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잃어버린 10년'의 반대방향으로 거슬로 올라가면서 역행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공안기관을 중심으로 우편향이 가속화되면서 전반적인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남북관계는 거의 냉전시대로 회귀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요. 우리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묘하게 꼬이면 '팔자'라고 허탈하게 얘기합니다. 이렇게 세계사적으로 중차대한 시기에 금쪽 같은 날들을 허비하고 있으니 우리 민족의 팔자가 얼마나 기박한가 한탄하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중도실용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대통령의 중도실용을 이념적 우편향으로 해석하고 그에 맞는 정책만 쏟아내고 있습니다. 진정한 중도실용은 이념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실사구시'해야 가능합니다. 제가 이명박 정부를 중도실용이라고 한 것은 이 정부가 말 그대로 중도실용을 구현하기를 바라는 강력한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황씨는 이어 이명박 정부의 공약인 '비핵개방 3000'을 언급하면서 "저는 현정부가 이 같은 한계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며 "이것은 특정 정부나 정당의 지지 여부를 떠나 현재 시점이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때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난 10년 동안 이른바 진보적 성격의 정부 시기에는 오히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집필에 몰두했다"며 "제가 혜택을 받았다고 모함에 가까운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독립적으로 글을 써서 먹고 살았다. 저를 먹여살린 것은 오직 저를 사랑해준 독자들이었다"고 강조했다.

 

"문화부장관이 어떠냐, 공천을 받아라, 이런저런 제안들이 있었지만 저는 인생에서 문학 이외에 다른 여한이 없는 사람입니다. 많은 분들이 정부와 함께 일하고 있어서 저는 오히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비판적인 자세를 지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스스로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정체성도 다른 정부에 접근하는가?"라고 자문했다.

 

"보수측에서는 좌파가 심은 첩자 또는 '트로이의 목마'라 하고 진보측에서는 '변절'이라고 합니다. 남북이 얼어붙고 대립 구도로 정지되었듯이 정부와 시민사회가 극단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국내 현안과 정책을 놓고 싸울 때에는 싸워야 하겠시만 타협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정책을 견인해내기도 해야 합니다. 어느 원로 지식인이 최근에 '거버넌스'의 정치를 제안했지요. 시민단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적 원칙을 관철해낼 수 있는 관절입니다. 관절이 없는 몸은 식물화 되겠지요."

 

"노벨문학상? 서구의 잣대로 이뤄지는 평가에 비판적이다"

 

"어째서 북방정책인가?"라는 세번째 소제목의 글에서는 '투 코리아+몽골' 또는 '코리아 몽골 중앙아시아' 등 '알타이연합'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기획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문제는 바로 한반도의 분단이며 남북 당국간의 대화 단절"이라고 설명했다.

 

"알타이 문화연합과 평화열차 세계작가포럼"이라는 제목의 네번째 소제목의 글에서 남북간 긴장 완화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황씨는 이 대통령의 유라시아 순방길에 동행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 대통령이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참여를 전면 보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저는 북한의 서바이벌 게임이라 할 수 있는 로켓 발사 이후 급박하게 돌아가는 남북관계의 긴장을 지켜보면서, 만약에 우리 정부가 PSI에 참여하게 된다면 다음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대화의 문은 닫히고 말 것이며 정부에 걸었던 기대를 포기하리라 의사 표시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이명박) 대통령이 PSI 참여를 전면 보류했다는 말을 듣고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라시아 순방의 동행을 제안해왔을 때 서슴지 않고 응낙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지요. 이는 저에게도 큰 부담이 되는 일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역시 큰 부담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제가 내년 상반기까지 한시적 동반을 말한 것은 신뢰관계의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그때를 넘기면 현정부에게도 별다른 선택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 여긴 때문"이라며 "저는 대의명분이나 진영 의식을 넘어서 뒤늦게 시작된 신뢰가 실천적 현실로서 나타나게 되기를 진심으로 열망하고 있으며,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마지막 사회봉사를 해볼 작정"이라고 밝혔다.

 

황씨는 최근 행보가 노벨문학상 수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에 대해서도 "서구의 잣대로 이루어지는 평가에 대하여 비판적인 자세를 취해왔다"며 "그런 논란에 끼어들기 싫어서 스웨덴에서 책이 나왔을 때에도 가지 않았고 그 어떤 문학행사도 스웨덴에서 벌인 적이 없다"고 적극 부인했다.

2009.05.19 10:40ⓒ 2009 OhmyNews
#황석영 #변절 논란 #광주사태 #중요실용주의 정부 #황석영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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