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변절'을 두고 비난이 무성하다. 황석영은 과연 변절한 것인가. 그는 정말 변절했다고 비난받을 만 한가. 우리는 여기에서 변절의 진정한 의미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유난히 굴곡이 심했던 우리의 근현대사에는 변절한 지식인들이 많았다. 일제식민지 시대의 이광수·최남선 등으로부터, 박정희에서 노태우까지 이어지던 군사독재정권 당시에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그 정권에 참여해서 한자리씩을 하던 이런저런 사람들까지. 황석영도 과연 그런 축에 끼는 사람인가.
한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조선총독부와 군사독재정권은 이미 성립 자체가 불법적인 권력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자유롭고 공정한 국민직선을 통해 성립된 민주정부다. 성립 자체가 원인무효인 조선총독부나 군사독재정권은 어르고 달래거나 협력할 대상이 아니고, 언제든 즉시 물러가게 하고 퇴진시켜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이명박 정권의 이런저런 행태를 비판하고 막으려 하는 것과, 동시에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 여겨 적대시하고 퇴진시키는 것은 다르다. 이명박 정권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도중에 물러가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명박을 선택한 국민들에게 이 나라에서 그만 나가 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권에 참여한 황석영이 변절했다고 비판하는 바탕에는 이명박 정권을 근본적이고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황석영이 맡을 것이라고 하는 '유라시아 문화특임대사'가 과연 얼마나 대단한 자리이고(차관급의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또 그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이권이 생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당사자가 그 자리를 써먹기 나름이니 두고 볼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김영삼 정권에 참여했던 비판적 지식인이나 민주화운동가의 사례를 들어서 황석영 역시 정권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실패할 것이라고도 한다. 황석영은 내년 상반기까지의 시한을 못박았다. 이명박 대통령과 작가 황석영이 서로를 이용하여 어떤 결과를 빚어낼지 두고 보도록 하자. 황석영이 실패한다면 그의 개인적 선택이 실패하는 것일 뿐이다. 그가 실패한다고 하여 대세에 큰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된 황석영의 발언들 중에서 이명박 정권을 두고 "중도실용"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유도하고 싶어서 한 발언이라고 본인이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광주사태" · "용산참사는 실책" 등의 발언은 어떤 면에서는 "중도실용"보다 더 중대한 함의를 가지는 것이어서 그것이 단순한 경솔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변한 것인지 황석영이 보다 진솔하게 해명할 필요가 있다.
대선이 끝나고 당선자가 당파를 초월하여 거국내각을 구성한다고 할 때, 상대정당의 어떤 인사가 그 정부구성에 참여한다면 그는 변절자가 되는 것인가. 선거전에는 맞서 싸웠지만, 국민의 선택을 받아 성립된 정권에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황석영이 대선 이전에는 이명박 반대 운동을 했지만, 국민의 선택을 받아 성립된 이명박 정권에 참여한다고 해서 변절이라고까지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이명박 정권은 퇴진시켜야할 대상이 아니고 어쨌든 5년을 함께 살아가야 할 현실권력이다. 그 권력에 나름대로의 뜻이 있어 참여했다고 해서 도덕적으로까지 매도하며 변절 운운하는 비난은 지나친 것이다. 어떤 정권의 성립을 한 번 반대했던 사람은 끝까지 반대해야 옳은 것인가. 그것은 국민의 선택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더 이상 일제식민지나 군사독재정권 시대의 '죽기 아니면 살기'식 대항문화, '내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대결문화의 타성에 젖어있어서는 안된다. 또한 관용은 저쪽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이쪽에도 필요한 것이다. 나와 생각이나 행동이 다르다고 하여 도덕적으로까지 매도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황석영은 황석영의 길을 가게 해라. 나는 나의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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