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들 "황석영, 후배들에게 큰 실망줬다"

한국작가회의 소속 문인들 입장 표명... "메시아적 오만과 개인적 욕망 우려"

등록 2009.05.20 14:48수정 2009.05.2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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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경찰청이 작성한 불법폭력시위단체에 문학단체로는 유일하게 한국작가회의가 포함되었다. 군사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탄생된 단체이니 그 뿌리를 계승한 이명박 정부의 눈에도 불편한 단체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 불온한 단체인 한국작가회의 고문에 소설가 황석영이 있다. 한때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던 시절 황석영은 동지요, 믿고 따를 수 있는 걸출한 선배였다.


이명박 정부로 월경한 황석영 그 끝은...

5월 14일 이명박 대통령 카자흐스탄 방문에 동행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소설가 황석영. ⓒ 청와대 제공

그랬던 황석영이 몇 해 전부터 갈지자 걸음으로 좌충우돌하더니 급기야 자신의 문학토대를 송두리째 부정한 것도 부족해 월경을 하여 이명박 대통령의 손을 잡았다.

그 일을 두고 한국작가회의 소속 젊은 문인들은 문학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그늘을 가지고 있던 동지이자 선배였던 소설가 황석영의 최근 행보에 대해 매우 곤혹스러워했다. 믿고 따랐던 정신적 그늘이 사라진 것에 대해 큰 충격도 받았다.

그래서였다. 작가 황석영이 소속되어 있는 (사)한국작가회의(이사장 최일남) 산하 자유실천위원회와 젊은 작가들로 구성된 젊은작가포럼 소속 작가들이 긴급히 모였다. 먼저 걸음을 뗀 것은 젊은작가포럼이었다. 그들은 지난 18일 작가회의 사무실에 모여 황석영의 최근 행보에 대해 어떤 입장을 표명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그동안 작가회의 내부에서 젊은 작가들의 발언은 매우 의미가 컸다. 젊은작가포럼(대표 윤석정)은 미래의 작가회의와 다름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황석영 문제는 젊은 작가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그들은 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자유실천위원회(위원장 김해자)와 함께 황석영의 행보를 진단하기로 했다.


그들이 다시 모인 것은 19일 저녁 7시. 작가회의 사무실에 모인 그들은 '동지요, 선배였던 황석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은 논의에 들어갔다. 격론도 있었다. 성명서 문구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성명서는 난산 끝에 20일 오전에야 완성되었다. 그들은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황석영과의 이별을 고했다.

젊은 작가들은 20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우리 젊은 작가들에게 황석영이라는 이름은 각별했다. 황석영이란 이름은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 문학의 역사가 거기 깃들어 있는 이름이었다"라며 작가 황석영이 어떤 존재였음인지 인식했다.


그랬던 황석영의 월경으로 인해 작가들이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러나 이번 황석영의 언행은 우리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었다. 특히 작가란 언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존재라고 할 때, 그의 언행은 실망을 넘어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작가는 부정한 현실에 대해 정직한 언어로써 대응해야 한다. 문학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혼탁하고도 사물화된 언어에 맞서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는 언어를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에 대한 자의식이 결여될 때, 문학은 그 존재 의의를 스스로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짧은 문학사에서 황석영이 걸었던 길은 결코 범상치 않았다. 그러나 그가 걸었던 길을 따르던 많은 선후배 작가들과 그의 정신세계를 멘토로 삼던 독자들은 지금 혼란스럽다 못해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선배 작가들, 자신의 자리를 올곧게 지켜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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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사무실 입구. ⓒ 홍성식

일찌기 서산대사와 김구 선생은 "눈길을 걸을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대가 남긴 발자국이 뒤따르는 다른 사람의 길이 되느니"라고 했다. 이 말의 뜻을 황석영이라고 모를까. 하지만 그는 자신이 남긴 발자국과 길은 생각지도 않았다. 이제 황석영이 남긴 길을 따라 걷던 수많은 이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젊은 작가들은 또 말했다.

"황석영 개인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작가 황석영은 우리에게 개인이 아니었다. 선배작가를 지켜보고 따라오던 많은 후배들이 느끼는 형언할 수 없는 실망과 안타까움을 황석영은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모범이던 선배 작가를 잃어버린 우리의 가슴이 얼마나 쓰리고 아픈지 선배 작가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여기에 덧붙여 젊은 작가들은 이 일이 비단 작가 황석영의 일만이었던가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아울러 이번 일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번 사태는 비단 황석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존경하는 선배 작가들의 잠재적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하고 있다. 우리 앞에 좋은 선배, 한국문학 진정한 대가라고 일컬을 수 있는 선배작가들이 계속 자신의 자리를 아름답고 올곧게 지켜주기를 바란다."

1990년대 초 노태우 정권 하. 김지하 시인이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기고한 일이 있었다.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던 때였다. 그들이 왜 죽음을 선택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묻어둔 채였다.

그 일로 작가회의는 김지하 시인을 제명했었다. 존경하는 시인을 잃은 마음이 오죽했을까 싶지만 그는 이번에도 '작가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사람'이라며 황석영의 행보를 옹호했다. 

과연 작가란 어디든지 갈 수 있어야 하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일까. 김지하 시인과 황석영 작가는 그러할 지 모르지만, 대다수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시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작가들은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있음도 두 사람은 알아야 할 것이다.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진보와 보수를 잇겠다는 황석영 작가.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젊은 작가들은 "황석영의 이러한 안이하고 주관적인 현실인식이 혹여 메시아적 오만함과 과도한 개인적 욕망으로 인해 나타난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를 감추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나도 작가회의에 소속되어 있는 젊은 작가 중 한 사람으로서 이 말에 한 표를 보탠다. 아울러 월경의 달인이 된 작가 황석영이 이제 또 어디로 월경할지에 대한 걱정과 고민도 오늘로서 끝이다. 타락한 그의 정신으로 인해 내 정신이 오염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아래는 작가회의에서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최근 황석영의 언행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입장


우리 젊은 작가들에게 황석영이라는 이름은 각별했다. 황석영이란 이름은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 문학의 역사가 거기 깃들어 있는 이름이었다. 산업사회로 치달아가던 한국현대사의 질곡과 베트남전쟁, 오월 광주 민중항쟁과 분단모순을 극복하고자 전력투구했던 우리 문학의 양심이자 뜨거운 상징이기도 했다. 우리는 진정한 문학이 작가의 양심으로부터 시작됨을, 역사와 현실에 대해 치열하게 대면하면서 시작됨을 그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황석영의 언행은 우리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었다. 특히 작가란 언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존재라고 할 때, 그의 언행은 실망을 넘어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작가는 부정한 현실에 대해 정직한 언어로써 대응해야 한다. 문학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혼탁하고도 사물화 된 언어에 맞서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는 언어를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에 대한 자의식이 결여될 때, 문학은 그 존재의의를 스스로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황석영은 80년 오월 광주 민중항쟁을 광주'사태'로 호명했다. 촛불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압살한 이명박 정권을 '중도실용'으로 규정했다. 서울 한복판 용산에서 벌어진 철거민 '학살'을 단순한 '실책'으로 오도했다. 또한 황석영은 그의 언행을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것으로 변명했다. 그런데 정작 남북관계를 경색시킨 이명박 정권의 과도한 대북봉쇄 정책과 냉전적 사고에 대한 비판은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이 생략된 그의 언행이 진정성을 얻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황석영의 이른바 '알타이 문화연합'과 '몽골+2코리아' 구상 역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를 현재 남북한의 경제위기와 분단 상황의 타개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의 경제위기와 분단 상황이 이와 같은 안이한 현실인식으로 극복될 수는 없다. 객관적이고도 겸허한 현실인식이 결여된 그의 구상은 남쪽 노동자들의 노동현실과도 거리가 있으며, 북쪽의 현실 정치와도 동떨어진 지극히 낭만적인 구상에 머물고 있다. 북미관계와 개성공단의 위기 같은 구체적인 현실로부터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북쪽에서도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주관적인 관념과 욕망에서 출발하여 행동하는 순간, 남는 것은 공허한 '알타이 문화 이벤트' 일 따름이다.

우리 젊은 작가들은 황석영의 이러한 안이하고 주관적인 현실인식이 혹여 메시아적 오만함과 과도한 개인적 욕망으로 인해 나타난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를 감추기 어렵다. 황석영 같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에게는 문학의 윤리와 사회적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다. 문학의 윤리란 정직한 언어를 통해 사유하고 이를 발화함으로써 부정한 언어와 싸우는 것이며, 사회적 책임이란 현실을 정직하게 바라봄으로써 시대의 과제와 고뇌에 동참하고 한 시대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일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젊은 작가들은 시민사회의 생산적 담론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부정적이며 퇴행적인 담론을 만들어내 수많은 독자들의 탄식과 냉소를 재생산하고 있는 황석영의 언행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황석영 개인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작가 황석영은 우리에게 개인이 아니었다. 선배작가를 지켜보고 따라오던 많은 후배들이 느끼는 형언할 수 없는 실망과 안타까움을 황석영은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모범이던 선배 작가를 잃어버린 우리의 가슴이 얼마나 쓰리고 아픈지 선배 작가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일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번 사태는 비단 황석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존경하는 선배 작가들의 잠재적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하고 있다. 우리 앞에 좋은 선배, 한국문학 진정한 대가라고 일컬을 수 있는 선배작가들이 계속 자신의 자리를 아름답고 올곧게 지켜주기를 바란다.

2009. 5. 20
(사)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 젊은작가포럼

#황석영 #변절 #이명박 #한국작가회의 #젊은작가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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