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서 보여주신 희망 잊지 않고 있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님께 올리는 편지

등록 2009.05.23 15:38수정 2009.05.2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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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님께

 

처음 눈물을 흘려보았습니다. 정치인이 세상을 떴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느덧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 만큼 깊어져, 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저 솔직히 대통령님께 실망했습니다. 아르바이트 가기 전에 투표하고 가려고 새벽 6시부터 일어나서 대통령님께 투표했었습니다.

 

그랬기에 재임 중에 FTA, 대연정, 이라크 파병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처리하시는 것을 보면서 자꾸 자꾸 실망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퇴임 후 돈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끊임없이 실망하고 또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실망하고 또 실망했는데 어째서 지금 이 순간에서도 제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나오는지 그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그건 아마도 대통령님께서 제게 준 것이 실망보다는 희망이 많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역사에 남을 큰 죄를 짓고도 오히려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을 치고 분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이들에게, 권력이 있으면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편하게 살 수 있는 이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실망했던 이들에게 대통령님께서 주신 것은 분명 희망이었을 것입니다.

 

정치 선진국이라 부르기 힘든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정권에서 물러난 후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대통령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앞으로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그 작은 희망 말입니다. 그 희망 하나만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대통령님이 대선 후보 시절 뜨거운 지지를 보냈던 그 당시 마음은 이미 아니지만, 그래도 전 대통령께서 적어도 우리나라 역사를 한 걸음 앞으로 내딛게 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게 젊은 가슴에 작은 희망의 촛불 하나 켜 놓고 세상을 등지시고 마셨습니다. 대통령께서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분이 되었다는 뉴스를 보는 순간 제가 봤던 희망도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점점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 희망 말입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님, 잊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당신께서 비겁한 방법으로 문제를 피했다 하시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께서 20대 젊은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던 희망,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로 잊지 않겠습니다. 그 뜨거운 젊은 혈기에 새로운 대한민국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 넣어주었던 그 모습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백지처럼 깨끗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역사를 한 발자국만이라도 앞으로 걸을 수 있게 하려 했던 그 모습 꼭 이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를 후퇴시키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기억했다 다시는 그럴 수 없게 하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제 손에 들린 투표용지 한 장으로만 말입니다. 저 하나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나, <시티홀>에 그런 말이 나오더군요.

 

"선거는 누구를 뽑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뽑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 소중한 진리를 대통령님께서 가시고 난 후에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당신께서 국민에게 돌려주신 그 힘, 그 작은 힘 다음 번에는 꼭 한 번 써보렵니다. 그런 이들이 늘어나면 당신께서 국민에게 돌려주었던 그 많은 힘 언젠가는 되찾아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약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까지는 그 뿐입니다. 그러나 그 미약한 힘이 거대한 물결과 파도가 되어 밀어칠 수 있음을 가르쳐주신 분 또한 대통령님 아니셨습니까.

 

하늘에서 부디 편히 쉬십시오. 대통령님께 실망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님의 국정 철학만큼은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훌륭했다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보여주신 희망, 언젠가 다시 활짝 꽃 피울 수 있도록 물 뿌리고 씨앗을 틔우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서거하셨다는 뉴스를 듣고 이렇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있다는 거 행복해 하겠습니다. 부디 하늘 나라에서도 대한민국이 절망이 아닌 희망의 나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2002년 대통령님이 보여주신 희망을 믿고 처음 선거에 참여했던 대한민국 국민 올림

2009.05.23 15:38 ⓒ 2009 OhmyNews
#노무현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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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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