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의 강력한 권유에 3월 중순이 되어 집들이를 하게 되었다. 대충 후배들에게 즉석해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사서 먹자고 했는데 후배들은 손에 뭔가 가지고 왔다.
자취방에 수건이 없는 줄 어떻게 알고 수건을 가져온 후배, 밑반찬을 집에서 몰래 가져온 후배, 술을 잔득 사온 후배, 샴푸, 세제 등 가지각색의 집들이 선물을 가지고 왔었다.
집들이 선물인 만큼 후배들은 생활필수품을 많이 사왔다. 하숙을 하다가 자취를 해서 부족한 생필품이 많았는데 후배들 덕에 새로 사지 않아서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기뻐하고 있는 순간 한 후배가 늦게 집에 도착하였는데 요상한 상자를 가지고 왔다.
나 : "XX야 이거 뭐니? 생필품도 아닌 것 같고 컵이나 유리와 관련 된 것 같은데? 상자가 참 화려하다."
후배 :"아 선배 제가 특별히 성민 선배랑 J선배를 위해 준비 했습니다."
마지막에 온 후배가 사온 선물은 컵이었다. 단지 평범한 컵이었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신혼부부나 커플들에게나 줄 법한 컵을 들고 왔다. 하트 무늬가 컵 전면에 붙어 있었고 두 컵을 합치면 사랑표 모양이 되었다.
나 :"(의아하면서)이걸 왜 우리한테 주니? 신혼부부 집들이 선물에 적합할 것 같은데?"
김 후배 :"하하 맞죠? 사실 제가 성민 선배랑 J선배 안지 오래 되지 않았는데 두 분 벌써 4년째 같이 사신다면서요? 커플도 아니고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이렇게 오래오래 잘 지내시는 게 너무 보기 좋았어요. 앞으로도 두 선배 오래오래 잘지 내시라는 의미로 제가 특별히 준비한 컵입니다."
나 : "하하 너도 참 4차원이야. 누가 이 컵 보면 오해 하겠다."
김 후배 :"자자 선배님들 웃지만 마시고 이 컵에 맥주라도 따라서 서로 건배 해보세요."
나: "(웃으며)알았어. 자 그럼 J와 성민이의 우정을 위하여!"
"너의 행동에 대해 화가 좀 난다"
후배에게 커플 컵을 받고 나니 J와 4년 동안 같이 살면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이야기가 머리속에 떠오른다.
1학년 때 둘 다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저녁 기숙사 친구들이랑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여 꼴지를 하는 사람이 통닭을 사는 내기였다. 그날따라 게임을 잘하는 J가 계속 지기 시작했다. 매번 이기다 지니 J는 기분이 많이 상해 있었다.
나 :"맨날 게임을 이길 순 없잖아. 재밌자고 하는 게임인데 얼굴 찌푸리지 말고 재밌게 하자."
J :"재미로 하는 건 맞는데 XX가 계속 반칙을 하잖아. 한 번 더 지면 나 게임 안 할래."
결국 마지막 판에서도 J는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J는 게임 카드를 세차게 던지며 밖으로 나갔다. 같이 게임을 하는 친구들은 J의 행동에 대해 화를 내기 시작했다.
"J 뭔데? 승부의 세계에서 지면 진거지 저런 식으로 화를 내면 되냐? 다시는 J 랑 게임 하기가 싫어진다."
평소 웃기고 친구들과 잘 지내던 J가 갑자기 돌발 행동을 하자 나 또한 화가 났다. 그래서 밖으로 나간 J에게 문자 메세지를 보내서 내 방으로 오라고 했다.(기숙사에서는 같은 방을 쓰지 않았다.)
나: "너 니가 오늘 한 행동에 대해 옳다고 생각하니? 니가 오늘 한 행동에 대해 화가 났다."
J : "형이 내 입장이 되 봐라 화가 안 나는지. 그래도 아까 생각을 조금 해봤는데 즐겁게 게임을 하는데 분위기를 흐린 건 잘못 한 것 같다. 앞으로 조심할게."
이 대화에 대해서 지면이 좁아 다 서술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 당시 J와의 대화에서 내가 몰랐던 J의 성격과 집안 사정 등 수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J에게 화를 내려고 했는데 J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친구가 했던 행동에 대해 이해가 되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후 J와의 우정이 더욱 돈독해졌다.
"형 그냥 멀리서 찾지 말고 나 어때?"
2007년 나는 인문대학생회 선거를 나갔었다. 당시 회장 후보는 내가 나가면 되는데 부회장 후보를 찾지 못해 고민이 많았다. 학과 학생회장들도 친분이 없고, 인문대에서 3학년 이상 되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지 않아 나와 함께 선거를 나갈 파트너를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나 보다 어린 J에게 부회장 후보로 나가자고 제안하는 것은 그 친구에게 너무 큰 부담을 안겨 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나의 파트너를 찾지 못하자 선거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후보 등록 1주일 전까지 누굴 부후보로 나가자고 할지 고민이 되 하루하루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매일 밤을 설치는 나에게 J가 잠시 대화 신청을 했다.
J="형 마땅히 부회장 후보가 없는 거야?"
나="그래. 아무래도 2년 동안 활동을 한 게 짧긴 짧나봐. 이렇게 학교에 인맥이 없을 줄 알았나."
J="흠. 그럼 멀리서 찾지 말고 나 어때? 아 물론 형이 생각하기엔 나는 아직 어떤 자리의 대표자가 되기에는 그릇이 작지만 말이야. 이렇게 하다가는 우리 선거를 그냥 포기해야 할까봐 걱정이 되."
나="사실 너에게 부담이 될까봐 부회장 후보로 나가자고 제안을 하지 못했어. 그리고 만약 나가게 되더라도 애초에 니가 하기로 한 선거운동본부장과 부후보를 동시해 해야해. 선거운동원 관리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연설도 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J="형이 오케이 하면 난 괜찮아. 부족 한 건 많지만 지금이라도 연설 연습 빡시게 할게."
나="그럼 내일까지 고민을 좀 해보고 결정하자."
결국 J는 부회장 후보로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선거는 아쉽게 패하게 되었다. 선거 끝나고 이래저래 힘들었던 J에게 위로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고생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너 정말 많이 성장한 것 같아. 고맙다."
J="에이 아직 애송이야. 선거를 통해 배운 건 많은데 아직 그것을 다 담기는 힘드네. 정말 힘든 선거였던 것 같아. 힘든 선거지만 앞으로 학교에서 우리의 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기는 걸!"
나="자식 태연한척 하기는. 몇 일간은 푹 쉬자."
"나중에 서로 따로 살면 이 컵을 어떻게 하지?"
집들이를 마치고 J가 나에게 후배가 준 컵에 대해 이야기 했다.
J="형 근데 이 컵 세트라서 조금 난감하네. 만약에 우리 따로 살게 되면 이 컵 누가 가지고 가지? 허허 우리가 결혼 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니고 말이야."
나="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대학 졸업하고 각자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도 하면 독립해야 하는데 말이지. 근데 너무 이른 고민 아니야? 대학 졸업은 다가오는데 우리 아직 결혼 할 나이는 아니잖아? 독립하기 전 까지 그 컵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자."
J="한 쪽씩 가져가서 우정의 징표로 각자 집에 보관 하는 게 어때?"
나="하하 알았다 그럼 하나씩 나중에 독립할 때 챙기자."
후배들에게 독립하고 컵을 나누어서 가진다고 하니 이렇게 말하더라.
"(놀리는 말투로)선배들 영원히 그냥 같이 사세요. 요즘 동성애도 트렌드 인데 한번 해보시는 것도?"
"하하. 나중에 너희들이 우리가 각자 좋은 여자 만나고 결혼해서 독립하려고 하면 헤어지지 마라고 데모하는 거 아니가?"
"농담이에요. 지금 두 선배 너무 보기 좋아요. 그 우정 변치 마세요!"
J야 우리 우정 변치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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