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사돈 거부한 이속, 일가가 노비로 전락

[서평]<문학의 창으로 본 조선의 궁중문화 1>- 삶과 죽음의 공간

등록 2009.05.27 15:30수정 2009.05.2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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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의 작자 혜경궁 홍씨는 9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10살에 세자빈이 되었다. 작품에는 간택단자와 세 차례의 간택방식, 신부수업을 하는 별궁생활, 대례까지의 모든 의식(음식, 복식 등) 등 가례 제도의 전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또한 <계축일기>에서 영창대군을 죽이는 과정에 일어난 계축년의 옥사와 인목대비를 폐모하고 서궁에 유폐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무속이 사건전개의 중요한 역할로 부각된다. <인현왕후전>도 인현왕후의 폐위와 복위, 왕후의 죽음과 장희빈이 사약을 받기까지의 주요 사건들에 무속이 개입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이와 같이 궁중문학은 조선조 상층문화의 정수인 궁중 문화 연구의 귀중한 자료다.-책속에서

<한중록>과 <계축일기><인현왕후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궁중문학작품들이다. 정은임의 <문학의 창으로 본 조선의 궁중 문화>(채륜 출판사 펴냄)는 이 세 작품을 통해 조선시대 궁중 문화를 알아보자는 책이다.


이 책에서 특히 재미있게 읽은 것은 왕실과 사돈 맺기를 보기 좋게 거절한 '이속' 때문에 생겨났다는 간택제도에 대한 것이다. 이속의 일화도 인상깊지만 그간 수많은 사극들을 통해 흔하게 접한 '간택(령)'이 언제부터 생겨난 제도이며 그 절차나 의식은 어떤지 쉽게 알려주는 책을 접하지 못해 거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실과 사돈 거절한 배짱좋은 '이속'때문에 생긴 간택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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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창으로 본 조선의 궁중문화 1>겉그림 ⓒ 채륜

조선 3대 태종(이방원)은 정실 원경왕후 민씨 외에 9명의 후궁(후궁 둘은 봉작을 받지 못했다)을 두었다. 이처럼 많은 부인들에게서 얻은 자식은 모두 12남 17녀(원경왕후 소생이 4남 4녀, 후궁 소생이 8남 13녀), 태종은 말하자면 딸부자였다.

딸17명을 다 시집보내는 것이 아버지 태종의 의무라면 의무였다. 첩을 들일 수도 있고 부인이 죽으면 재혼을 할 수 있는 남자와 달리 어떤 배우자를 만나는가에 따라 인생이 꼬일 수도 있는 여자의 운명은 왕의 자식들도 피해갈 수 없는지라 딸부자 태종의 고민은 클 수밖에 없었겠다. 어쨌든 태종은 어떻게든 이 많은 딸들을 제대로 빨리 처리(?)해야만 했다.

부인인 공주나 옹주가 죽어도 재혼을 할 수 없고 설령 재혼을 해도 그 부인은 첩이요, 낳은 자식들은 서자취급을 받았다. 또한 품행까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음에도 왕과 사돈만 맺으면 가문의 영광이요, 왕의 사위만 되면 대단한 특혜가 있는지라 양반들은 왕의 사위 자리를 향해 아들을 있는 힘껏 밀어 넣곤 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춘천부사 '이속'은 자신의 아들 '팔자'가 옹주의 사윗감으로 선택받자 보기 좋게 거절한다. 며느리 감이 궁녀출신 후궁의 소생이라 싫다는 것. 이유야 어쨌든 왕과의 사돈을 거부했으니 역모죄를 뒤집어 씌워도 될 판이다. 태종이 어떤 왕인가. 왕이 되고자 형제는 물론 외가까지 몰살한 조선시대를 통 털어 가장 강력한 힘의 군주 아니던가!

태종은 분노하고 이속을 죽이라는 상소가 빗발친다. 결국 배짱 한번 잘못 튕긴 이속은 서인으로 강등, 유배되고 이후 이속 일가는 노비로 전락하고 말았다나.

이속에게 사돈 선택을 거절당한 태종은 남은 딸들을 무사히 처리(?)하고 나아가 왕실의 혼사를 원활하게 치르기 위한 조치를 한다. 그 조치는 왕실의 혼사를 위해 전국에 금혼령을 내리고 마땅한 며느리감이나 사윗감을 물색하는 것. 간택제도는 이렇게 시작된다.

현재 전해지는 삼간택 제도는 세종 때, 세자(훗날 문종)빈 간택을 두 번이나 실패하고 난 다음부터다. 첫 세자빈 휘빈 김씨를 폐출한 후 심사숙고하여 두 번째 세자빈을 맞았음에도 이 '순빈 봉씨'까지 폐출하고 만다. 그리하여 세종은 의창군의 혼례에 직접 참여, 초간택(26명), 재간택(11명) 삼간택에서 김수의 딸을 세자빈으로 결정한다. 삼간택의 시초이다.

조선조는 궁중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에는 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모든 절차를 관장하게 했다. 왕이나 왕세자의 혼인이 결정되면 가례도감을 설치하여 전국에 금혼령을 내리고 배우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처녀들의 혼인을 금하게 했다. 금혼령이 발표된 후 후보자가 될 처녀를 둔 가정에서 관가에 신고하는 것을 처녀단자라 한다. 단자에는 처녀의 사주와 거주지, 그리고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의 이력을 기록하여 가문의 내력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했다. 후보자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국성(이씨) 이외의 사대부의 딸…㉴세자(또는 왕 자녀)보다 2~3세 연상-책속에서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는 9살에 입궁했다고 한다. 그녀는 '집안이 빈한해 죽은 언니의 혼사를 위해 어머니가 마련해두었던 천으로 옷을 해 입고 간택에 참여했다'든지 '초간택에서 선택받았음을 부모가 한탄, 그 소리에 울었다' 등 처녀단자부터 간택 등 세자빈이 되던 그때의 상황을 <한중록>에 자세하게 기록했다.

저자는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부분 부분을 소개, 간택 과정과 절차, 별궁에서의 생활, 혼례 상황, 혜경궁 홍씨의 궁중생활과 사도세자의 죽음과 한중록의 기록 배경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당시 혼례 풍습을 좀 더 보자.

…지체가 높은 아가씨는 수모(미용사)가 따라가지만 수모가 없는 경우에는 유모가 대신한다. 대궐문에 당도하면 가마에서 내려 미리 준비해 놓은 솥뚜껑의 꼭지를 밟고 넘어가는 특이한 풍습…입궁의 순서는 호주의 관직과 신분이 높은 딸의 순서대로…심사방법은 후보자들을 한 줄로 세우고 왕을 비롯한 왕족들은 발을 치고…삼간택은 재간택 날로부터 15일 내지 20일 전후에…삼간택에서 최후로 뽑힌 처자에게는 다른 후보자들이 큰절을 하며…후보자들은 집에 가지 않고 별궁에 머물면서 혼례 일까지 궁중법도를 익힌다.…책속에서

<계축일기>나 <인현왕후전>도 마찬가지. 저자는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죽이고 모후인 인목 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킨 사건을 대비편의 시각에서 기술한 <계축일기>와 우리 궁중문학에서 유일한 소설인 <인현왕후전>을 바탕으로 당시 왕실 사람들의 생활과 풍습 등을 조목조목 들려준다.

<문학의 창으로 본 조선의 궁중 문화> 시리즈 첫 번째인 이 책이 특히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부제 '삶과 죽음의 공간'에 해당하는 궁궐과 무덤이다. 저자를 따라 이들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으며 작품의 주인공들이 잠든 왕릉들을 답사하는 것도 좋으리라.

"이 책의 시리즈는 앞으로 2권과 3권이 더 나올 예정이다. 이들 궁중문학에 나타난 복식이나 음식 등을 통해 그동안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조선의 궁중 문학과 궁중 문화를 알기 쉽도록 집중 조명할 계획이다."-출판사

역대왕들이 가장 좋아한 창덕궁, 인목대비 한이 서린 덕수궁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그동안 수많은 역사물들의 모태가 되었으며 역사발굴에 중요한 자료 역할이었던 이들 궁중 문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다. 이들 작품들은 우리들이 이미 교과서로 배운 것들이라 제목이 워낙 낯익다. 하지만 이들 작품을 읽어보는 등의 방법으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저자는 이들 궁중문학의 면면들을 역사적 사건과 연관시켜 들려주거나 궁중 문화와 관련된  부분 부분을 소개함으로써 궁중 문학에 대한 기초 상식들은 물론 우리의 대표적인 궁중문학 작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한다. 어떤 식으로 썼는지 읽고 싶었지만 막상 읽으려니 너무 딱딱하고 힘들게만 여겨졌던 이들 궁중문학을 맛볼 수 있는 기쁨은 의외로 컸다. 

2부는 궁중문학의 배경인 궁궐의 역사와 구조 등에 대해서인데 조선시대 이전 시대들의 궁궐들에 대한 설명이나 궁궐의 기본 배치와 구조 등은 썩 요긴한 자료가 될 것 같다.

3부는 궁중문학에 투영된 삶의 공간으로서의 궁궐이다. 저자는 궁궐 각 전각에 얽힌 특정 인물(궁중 문학 속 주인공들)들의 사연을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흥미롭게 들려준다. 한중록의 주요 배경인 경희궁, 역대왕들이 가장 좋아했다는 창덕궁, 인목대비의 한이 서린 덕수궁, 사도세자의 숨결을 간직한 창경궁…이처럼 말이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들이 이제까지 궁궐의 개념으로만 만났던 조선시대 궁궐들을 문학의 창을 통해 재조명 해준다. 때문에 이제까지 단지 한 시대의 왕들이 살았던 역사적 장소로 혹은 문화유산으로 딱딱하게 만나던 궁궐들이 수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한 곳으로 다시 보인다고 할까?

광화문은 임금의 도덕적 교화를 위한 문? 근정전은 정치를 부지런히 하라는 뜻? 통명전은 통달하여 밝다는 뜻으로 옥황상제가 산다는 집? 경춘전은 '햇볕이 따뜻한 봄'을 지닌 전각이란다. 외에도 창경궁과 창덕궁 등 궁궐 전각마다 담긴 뜻풀이를 해준다. 전각에 걸린 현판을 볼 때마다 이름에 담긴 뜻이 참 궁금했었는데 책 덕분에 두루두루 알게 되었다.

제목이 다소 딱딱하여 일반인들이 선뜻 다가가기 힘들지도 모를 이 책은 실지로는 부드럽고 재미있다. 우리 역사와 우리의 문화 유산들이 한층 흥미롭게 여겨질 만큼 말이다. 한마디로 읽을거리가 참 많아 책을 읽는 재미가 꽤 쏠쏠한 그런 책이다. 저자와 함께 우리 대표 궁중문학의 역사적 순간들과 그 배경인 우리 궁궐 구석구석을 둘러보자.

덧붙이는 글 | <문학의 창으로 본 조선의 궁중문화 1 >- 삶과 죽음의 공간 (정은임 지음/채륜 출판사/2009.2/14,800)


덧붙이는 글 <문학의 창으로 본 조선의 궁중문화 1 >- 삶과 죽음의 공간 (정은임 지음/채륜 출판사/2009.2/14,800)

삶과 죽음의 공간

정은임 지음,
채륜, 2009


#궁중문학 #궁중문화 #한중록 #인현왕후전 #계축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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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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