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원 회장이 일주일만 먼저 석방됐더라면?

'면목 없는 노무현'과 상봉한 강 회장, "무슨 잘못을 했다고..." 울분

등록 2009.05.26 23:27수정 2009.05.2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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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석으로 풀려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26일 저녁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보석으로 풀려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26일 저녁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6일 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이날 오후 법원에 의해 보석이 허가돼 석방이 되자마자 달려온 것이다. 환하게 웃고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이 그를 맞았다. 그는 국화 한 송이를 올렸다. 그러면서도 연신 "대통령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라며 흐느꼈다.

그는 특히 "내가 나오기를 그렇게 기다렸다고 하던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두 사람의 해후로 봉하마을은 더욱 깊은 슬픔 속에 잠겼다.    

'벼락 맞은 강금원'과 '면목 없는 노무현'의 상봉

밤 8시 38분, 당초 예정시간보다 10여 분 늦게 봉하마을에 도착한 강금원 회장의 얼굴은 덥수룩한 수염으로 초췌해 보였다. 그의 두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국화 한 송이를 올려놓고, 향을 피웠다. 그러고는 힘겹게 절을 올렸다. 분향을 마친 강 회장은 상주석에 있던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등과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특히 강 회장은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을 발견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 덥썩 끌어안고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 옆에 있던 양정철 전 비서관도 한참을 부둥켜안았다. 조문객들 사이에서는 "용기 내세요", "건강하세요"라는 격려가 터져 나왔다.

강 회장은 곧바로 한명숙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의 안내로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갔고, 빈소 앞까지 나온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딸 정연씨와 함께 빈소로 들어가 조문을 마쳤다. 마을회관 밖으로 나온 강 회장은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 앞에 섰지만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면목이 없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여전히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잔뜩 맺혀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우리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며 "(지난주) 화요일 내가 나오기를 그렇게 기다리셨다고 하던데..."라고 안타까워했다. "(노 전 대통령이) 그 뒤로 아무도 안 만났다"는 말도 덧붙였다.


 보석으로 풀려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26일 저녁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과 포옹하며 울먹이고 있다.
보석으로 풀려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26일 저녁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과 포옹하며 울먹이고 있다.유성호

강금원 회장은 지난 5월 1일 보석 신청을 냈다. 그러나 검찰은 그의 보석에 반대했고, 재판부는 강 회장 사건 전담 재판부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뤘다.

강 회장은 다시 첫 재판이 열린 지난 19일 병보석이 허가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강 회장이 뇌종양을 앓고 있다는 병원 진단서가 충분치 않다며 다시 판단을 유보했다. 그리고 나흘 뒤인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는 짦은 유서를 남기고 사저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강 회장이 서럽게 우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자신이 19일에 나왔더라면,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나 서로 위안이 됐더라면, 노 전 대통령의 극단적인 선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판단인 셈이다.

한편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강 회장 구속 직후인 지난 4월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글을 올려 강 회장에 대한 인간적인 비애를 내비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강금원이라는 사람'이란 제목의 글에서 "강 회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라며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노 전 대통령은 또 "강 회장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대통령이 아니라 파산자가 되었을 것"이라며 "강 회장은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라고 소개했다. 그리고는 '면목 없는 노무현'이라는 말로 이 글을 맺고 있다.

강 회장 판단대로 조금만 더 일찍 석방돼 봉하마을에 왔더라면, 노 전 대통령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고, 비극적인 결말도 없었을 것이라는 전제가 가능하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며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고 말해, 심적 고통을 호소했다. 노 전 대통령이 언급한 대상 중 한 명이 바로 강 회장인 셈이다.

"무슨 잘못 있다고 그렇게 치사한 방법으로..."

 보석으로 풀려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26일 저녁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보석으로 풀려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26일 저녁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강금원 회장은 기자들에게 이명박 정부와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무슨 잘못이 있느냐"며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럴 수가 있느냐"고 흐느꼈다. 그는 특히 "일국의 대통령을 하셨던 분인데, 그렇게 치사한 방법으로 사람을 괴롭히느냐"고 항변한 뒤, "(노 전 대통령이) 다 나한테 얘기했다. 절대 그러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더 할 얘기가 없다"면서 "(노 전 대통령은) 명예롭게 사신 분"이라고 말하고는, 돌아섰다.

앞서 강금원 회장은 이날 오후 4시 15분경, 구속된지 47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강 회장은 대전교도소 앞에서 만난 기자들에게도 "(노 전 대통령은) 자존심이 강한 분이고, 대통령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잘못이 없다는 것을 검찰에 그렇게 얘기했건만 나를 잡아넣고….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있느냐"며 "박정희 시대도 아니고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 검찰을 비판했다.

한편 강 회장은 부산 창신섬유와 충북 충주 시그너스 골프장의 회삿돈 305억원을 임의로 사용한 혐의 등으로 지난달 9일 구속됐다. 강 회장은 다음달 2일 오전 10시 30분 2차 공판을 앞두고 있다.

'조문' 위해 잇따라 풀려나는 '노무현의 사람들'

강금원 회장을 필두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 법원의 보석 및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잇따라 석방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민주당 이광재 의원,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제출한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허가했다.

오는 27일 낮 12시 서울구치소와 영등포구치소 등에서 일제히 풀려나는 이들 세 사람은 곧바로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할 예정이다. 이들의 석방 기간은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리는 29일 오후 5시까지다.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상품권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이날 오후 법원에 구속집행정지신청을 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봉하마을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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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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