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사람들을 탓하지 마라"... 바보 노무현이 떠났다

['바보 노무현'을 기리며 ②] 임종인 전 의원

등록 2009.05.27 19:05수정 2009.05.2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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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3당 합당 당시에도 나는 내 갈 길을 지켰다" 지난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 모습.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해가 뜨는 산마루

그에 관한 첫 인상은 '소탈하다'는 것이었다. 1992년 5월이었다. 3당 합당에 반대하며 민자당 합류를 거부했던 그는 그해 총선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에서 재선에 도전했지만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낙선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 있었던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수련회에 그가 참석했다. 낙선했지만 그는 당시 최고의 스타정치인이었고 나는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출내기 변호사였다. 그러나 그는 주름살 깊게 패인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격의 없이 대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그때 나는 천정배, 이덕우 변호사와 함께 해가 뜨는 산마루라는 뜻을 가진 '해마루 법률사무소'를 만들었다. 이듬해인 93년 초 전해철 변호사(참여정부 민정수석)가 들어왔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그를 '해마루'에 모셔왔다.

나를 정치의 길로 들어서게 한 사람도 그였다.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대변인을 하고 있던 나는 95년 말 신당을 창당한 DJ(김대중) 측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고, 어찌하면 좋은지 그와 상의했다. 돌아온 대답은 "정치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있는 꼬마민주당에 들어갔고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를 거쳐 2002년 대선과 열린우리당 창당까지 행보를 같이 하게 됐다.

95년 부산시장 선거와 96년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한 그는 오랜 원외생활에 지쳐있었고 정치전망도 그리 밝은 편이 아니었다. 96년 여름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정치를 그만 하겠다'고 하더니 안산 해마루 사무소로 출근을 시작했다. 그때 그가 본 일은 공증업무였는데, 야생마 같은 사람이 사무실에 갇혀서 남의 신분증 확인하고 도장 찍어주는 일을 하려니 고역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그는 석 달 만에 도장을 내려놓고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바보 노무현


97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3김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를 해보자고 모였지만 당시 통추는 독자후보를 낼 형편이 못 됐다. 그러니 누군가를 선택해야만 했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백가쟁명이 되었다. 이회창을 지지하자는 사람, 이인제를 지지하자는 사람, 미우나 고우나 김대중을 지지해야 한다는 사람으로 입장이 갈렸고, 최종 결론은 우리끼리는 싸우지 말자는 약속과 함께 '각자 선택'이었다.

그는 '정권교체의 가치가 3김 청산에 우선한다'고 말하며 DJ 지지를 선언했고, 나는 그를 따라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 그해 대선 TV 찬조연설에서 그는 '저도 국회의원 좀 시켜 달라'며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국민들에게 정권교체를 호소했다. 마침내 역사적인 민주정부 10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DJ 정부는 약체였다. JP와 연합했으니 절반의 권력이었고 그나마 의회는 한나라당 차지였다. 독재정권의 하수인들이 현직 대통령을 색깔론으로 괴롭히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부정비리를 저지른 사람을 구속하려 해도 야당 탄압이라며 틈만 나면 방탄 국회를 열고, 영남으로 내려가 장외집회를 하는 것이 야당이 하는 일이었다.

'대구, 부산엔 추석이 없다'며 노골적인 선동을 일삼던 보수 언론은 '사장님 힘내시라'며 개혁에 저항했다. 외환위기 후유증으로 서민들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서 대북 퍼주기 공세가 먹혀드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추문이 이어지며 민주정부는 위기에 빠졌다.

쉼 없는 도전

99년 말 그는 또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겠다고 선언했다. 말린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었고 막을 일도 아니었다. 신선한 충격이었고 당시 정황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기고 돌아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선거 초반 판세는 해 볼만 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반을 지나며 박빙이 되었고 뒤로 갈수록 힘에 부치는 기세가 역력했다. 결국 또 다시 낙선이었다. '울분이 소낙비처럼 쏟아졌'지만 그는 '내 고향 부산사람들을 탓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2002년 대선은 상대적 진보가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이념, 세대, 지역'을 아우르며 수구보수 세력의 거센 압박을 공세적으로 돌파해낸 선거였다. 답답한 정치와 꽉 막힌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대중의 열망은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색깔론과 언론권력의 횡포에 정면으로 맞섰던 최초의 정치인 노무현을 만나 불꽃처럼 폭발했다. 언제나 지기만 했던 노무현이었지만 이번에는 꼭 이겨야만 하는 선거였고 이기고 싶었다.

나는 대선 캠프에서 법률지원단장을 맡아 그를 도왔다. 온갖 풍상으로 점철된 그의 정치인생의 축소판처럼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해 대선에서 마침내 풍운아 노무현이 당선되었다. 상고를 나와 독학으로 판사가 되고 힘없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함께 아파했던 사람, 조폭언론과 일전을 불사하며 반미 좀 하면 어떠냐고 포효했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대통령. 누구 말마따나 노무현의 당선 그 자체가 체제 전복이었고 정치적 업적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의 앞에 놓인 것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한국사회의 보수엘리트들은 자신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별종'이 대통령 노릇을 하는 것을 좀처럼 견디지 못해했다. 그의 서민적인 말투를 문제 삼아 '못 배우고 무식한 사람'으로 덧칠하며 조롱하고, 포퓰리스트로 매도하는 것은 그들의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정치에서 상고밖에 못 나온 촌놈 노무현보다 더 교양 있고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대통령 탄핵사태는 국민의 뜻에 따라 선출된 비주류 대통령을 인정하지 못하는 보수엘리트들의 반민주적인 폭거였다. 나는 노무현의 개혁을 지키기 위해 민주세력이 의회를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2004년 총선에 출마했다.

양극화의 늪

깨끗한 정치, 탈권위주의, 표현의 자유 확대와 같은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진전은 그가 만들어낸 분명한 성과였다. 그러나 양극화의 늪에 빠진 서민들의 삶이 문제였다. 나는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하자는 그의 제안을 납득할 수 없었으며, 이라크파병과 한미FTA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는 국회의원이 되어서야 생각의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나는 무조건 따르는 간신 말고 진정으로 잘되기를 바라는 충신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아니되옵니다'를 외쳤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지난 해 가을 10.4 선언 1주년 기념강연회였다. 직전 대통령이 낙향한지 8개월 만에 처음으로 서울에서 갖는 강연회였지만 참석한 정치인들은 많지 않았다. 강연이 끝난 뒤 나는 그를 찾아갔고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봉하마을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정치하지 말라"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겼다.


14년 전 나에게 했던 "정치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그의 생각이 변한 것은 아니겠다. 그만큼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다는 고통과 번민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못다 핀 꽃 한 송이

그는 늘 통합을 말했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시대는 갈등과 분열이 증폭된 시대였다. 왜곡된 기성질서를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 그가 약속했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 동서가 하나 되고 남북이 힘을 합쳐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이제 후배 정치인들의 몫이 되었다. 믿기 어렵지만 '바보 노무현'이 떠났다. 비통한 심정으로 꽃 한 송이 바친다. 못 다 핀 꽃 한 송이를….

덧붙이는 글 | 임종인 기자는 전 국회의원입니다.


덧붙이는 글 임종인 기자는 전 국회의원입니다.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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