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대구 맞아? 걱정은 기우였다

[현장]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애도하는 동성로 2.28 공원

등록 2009.05.27 18:14수정 2009.05.28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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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닷새가 지났습니다.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 않았던 그의 서거가 점점 또렷해져 옵니다. 온 세상이 그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대구 동성로 2.28 공원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대구 동성로 2.28 공원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문동섭
대구 동성로 2.28 공원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 문동섭

 

제가 살고 있는 대구에도 분향소를 마련하여 그의 서거를 애도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를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서 비통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26일 저녁 7시, 저는 대구 동성로 2.28 공원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습니다. 문동섭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습니다. ⓒ 문동섭

 

분향소에는 하얀 국화와 촛불을 든 수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장년층과 노년층도 적지 않았습니다. 또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물론 엄마, 아빠의 손을 붙잡고 나온 아이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습니다. 

 

 촛불을 밝히는 여고생들
촛불을 밝히는 여고생들문동섭
촛불을 밝히는 여고생들 ⓒ 문동섭

 

조문을 하기 위해서는 50여 미터 이상의 줄을 서야 했고, 4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지만 누구 하나 짜증내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차분한 가운데 슬픔 걸음을 조금씩 옮기고 있었습니다.

 

 26일 저녁 2.28공원 분향소를 찾은 많은 추모객들
26일 저녁 2.28공원 분향소를 찾은 많은 추모객들문동섭
26일 저녁 2.28공원 분향소를 찾은 많은 추모객들 ⓒ 문동섭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사람들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려 분향을 마친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분향소 한 쪽에 설치 된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상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들, 하얀 리본과 방명록에 애도의 마음을 적어 보는 사람들, 촛불로 어두운 길을 밝히는 사람들 등 수많은 사람들이 가시지 않은 슬픔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26일 대구 2.28공원 분향소 한 쪽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상이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26일 대구 2.28공원 분향소 한 쪽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상이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문동섭
26일 대구 2.28공원 분향소 한 쪽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상이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 문동섭

대구 2.28공원 분향소 추모 열기는 '여기가 과연 대구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사실 분향소를 찾기 전까지만 해도 '분향소에 사람이 얼마 없으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대구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드러내 놓고 표하는 것이 저어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혹시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서거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들을까봐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26일 저녁 2.28공원 분향소를 찾은 많은 추모객들
26일 저녁 2.28공원 분향소를 찾은 많은 추모객들문동섭
26일 저녁 2.28공원 분향소를 찾은 많은 추모객들 ⓒ 문동섭

 

하지만 대구 분향소 추모열기를 온 몸으로 확인하고 나니 저의 걱정과 염려가 다소 누그러졌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대구는 지역주의가 극단적으로 형태로 나타나는 지역입니다. 한나라당 이외에는 그 어떤 정당도 용납하지 않은 폐쇄성은 우리나라 정치발전에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지역주의의 견고함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에서 최고인 대구에서 지역주의 극복을 일생일대의 과업으로 여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참 묘한 일처럼 여겨집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을 돌이켜보면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던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보'라는 별명을 얻으며 낙선할 줄 알면서 세 번이나 부산에 출마했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지역주의 해소를 위해 대통령 권력을 내놓겠다고 공언한 것은 물론 대연정을 제안하며 전통적인 지지층을 떠나보내기도 했습니다.

 

탄핵도 깨지 못한 대구 지역주의의 견고함

 

이런 그의 노력은 그를 지역주의 극복의 상징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곳 대구는 그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지난 2004년 탄핵정국 당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대구에서 한 석도 얻지 못한 것은 대구 지역주의의 견고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대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가장 낮은 지지를 보내며 끝까지 갈등해 온 곳입니다.

 

 촛불을 밝히는 아이
촛불을 밝히는 아이문동섭
촛불을 밝히는 아이 ⓒ 문동섭

 

그런 대구가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 저에겐 남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혹시나 철옹성 같은 대구의 지역감정이 녹아 눈물이 되어 흐르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희망을 가져 봅니다. 어찌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지역주의를 극복하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불현 듯 이청준의 소설 <축제>가 떠오릅니다. <축제>는 노모의 죽음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갈등하던 가족들이 장례식을 치르면서 다시 화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소설 <축제>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지역주의로 갈려져 있던 국민들이 다시 화해하고 화합하는 순간이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그래주길 하늘에서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지켜 드리지 못해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지켜 드리지 못해서...문동섭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지켜 드리지 못해서... ⓒ 문동섭

2009.05.27 18:14ⓒ 2009 OhmyNews
#노무현 #지역주의 #대구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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