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한 돈을 받았다는 의혹 때문에 검찰의 조사를 받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고인을 지지하거나 그렇지 않거나를 떠나서 참으로 충격적인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짤막한 유서가 발견되었다지만 고인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는 자세하게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자살의 이유가 자신의 부정한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인지 아니면 정치 보복에 대한 억울함 때문인지는 아무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청렴함은 고인에게 대통령 당선이라는 기적을 선물한 정치적 생명력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런 고인이 다른 이유도 아닌 검은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의 조사까지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고인은 살아서 견디기 힘든 부끄러움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는 짐작도 해 봅니다.
전국 곳곳에 분향소가 차려지고 이름 좀 있다 하는 인사들은 빠지지 않고 추도의 성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고인의 선배 격인 전직 대통령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입을 열었는데요, 그 가운데 한 사람의 말이 참 의미심장했습니다. 바로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한, "꿋꿋하게 이겨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라는 말입니다.
전두환이라는 이름 석 자 앞에는 대통령이라는 말 말고도 반역자, 살인마, 독재자, 그리고 횡령 범죄자까지 참 다양하기도 한 수식어들이 시대의 흐름과 함께 더해져 왔습니다.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탱크를 몰고 청와대를 접수한 반역자, 민주화를 요구하는 5월 광주의 외침에 총성으로 대답한 학살자, 자유와 인권과 민주를 군홧발로 짓밟으며 권력을 지킨 독재자, 그리고 수천억 나랏돈을 떼먹고도 가진 돈이 29만 원밖에 없어 못 돌려 주겠다는 파렴치한 범죄자.
정말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에서 꿋꿋하기로는 이 사람만한 사람이 없다 싶습니다. 얼마나 꿋꿋하면 재벌 돈 10억을 받았다는 의혹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에게 나랏돈 2천억을 해 먹고도 15년째 못 돌려 주겠다고 버티고 있는 사람이 꿋꿋하지 못했다고 꾸중을 다 하겠습니까? 아직도 틈만 나면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달고 국민들 앞에 나타나서는 29만 원으로 꿋꿋하게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전국의 '88만원세대'들을 머쓱하게(?) 만들어 주고 있으니, 그 꿋꿋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그자는 꿋꿋함이라 말하고 우리는 뻔뻔함이라 말하는 그것을 한껏 더 조롱하고 비웃어 주고 싶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자를 비웃으면 비웃을수록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바로 그자는 그렇게 별일 없이 살아 있는 것 자체로 그자에게 더 꿋꿋하게 맞서 싸우지 못했던 우리들을 똑같이 조롱하며 비웃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백 명의 제 나라 국민들을 빨갱이 폭도로 몰아 죽이면서 체육관 선거로 꿋꿋하게 대통령이 된 사람, 그 권력을 이용해 수천억 나랏돈을 해 먹고도 감옥이 아니라 별장에서 별일 없이 꿋꿋하게 잘 사는 사람. 그자의 존재가 바로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부끄러움입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점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실제로 재벌의 검은 돈을 받았다면 그 죄는 고인의 죽음에 따른 동정으로도 절대 씻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혁성과 청렴함으로 대표되는 고인의 과거를 스스로 배반했다는 사실에 대해 목숨을 버릴 정도로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점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인은 우리가 본 가장 훌륭한 대통령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가장 인간적인 대통령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동물적인 꿋꿋함으로 별일 없이 살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 뻔뻔함에 대해 이따금 비웃는 것 말고는 별일 못하고 있는 우리들. 그자의 꿋꿋함을 이제는 우리가 더 통렬하게 부끄러워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인간이라는 이름을 당연히 여기고 또 인간의 역사로서 우리 역사를 후손들에게 물려 주고 싶은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전두환이 바랐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현대사의 살아 있는 부끄러움에 대해 더 '꿋꿋하게' 맞서 '이겨내'야겠습니다.
2009.05.28 15:05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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