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표지
창작과비평사
노무현의 마지막 장면과 담배를 떠올리면서 나는 신동엽 시인의 시 ' 담배 연기처럼'을 떠올렸다. 신동엽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이다.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멀리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많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멀리놓고 생각만 하다 말았네 아, 못다 한 이 안창에의 속상한 드레박질이여. 사랑해 주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하늘은 너무 빨리 나를 손짓했네. 언제이던가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그대의 소맷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파 못다 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 - 신동엽 시 '담배 연기처럼' 전문
1939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신동엽은 1959년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1969년 작고할 때까지 <아사녀>, <금강>,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의 시집을 남겼던 시인이다.
그는 생애 내내 역사의식이 가득찬 시를 썼던 시인이었다. 그렇게 예언자적 목소리로 잠든 시대를 깨웠다. 당시만 해도 시의 소재로써 기피되었던 현실의 문제를 끌어다 씀으로써 시도 우리 삶과 역사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전범을 보여주었다. 시 '담배 연기처럼' 은 본래 <한글문학> 1966년 겨울호에 실렸던 시다.
시인은 들길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그는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저 흩어져가는 담배 연기가 마치 내 그리움 같다고. 그렇다면 그 그리움의 대상은 누구인가.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과 "사랑해 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의 그리움에는 그들에 대한 미안함이 서려 있다. "어쩐 일인지?/ 멀리놓고 생각만 하다 말았"다는 뼈저린 후회가 담겨 있다. 아무래도 그 미안함을 갚을 기회조차 없을 것 같다. 하늘이 너무 빨리 자신을 오라고 손짓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시는 신동엽 시인이 간암으로 죽기 3년 전에 쓴 것이다. 그때 이미 시인은 죽음에 대한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언젠가 이 들길을 지나갈 길손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그대의 소맷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파 못다 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라고.
어찌 생각하면 신동엽 시인과 노무현 대총령은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들이다. 예언자적 삶을 살다갔다는 점, 정감이 넘쳐서 외로움을 많이 탔다는 점. 무엇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해준 것이 없어 미안해했다는 점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의 생애도 그가 봉화마을 들길에서 피우던 한 모금 담배 연기처럼 한 줌 연기가 되어 흩어져 갈 것이다. 그러나 담배 연기는 허무하게 흩어져 갈지라도 사람의 생애란 그렇게 쉽게 흩어지거나 잊혀지지 않는다. 신동엽 시인이 아직도 우리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돼 있듯이 우리들의 노짱도 그렇게 각인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인지 모른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곳은 물론 우리들 기억 속이다.
지금쯤 노대통령은 시왕산에 도착했을까. 시왕산에 닿아 제5대왕인 염라대왕을 만나 '내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고 싶었으나 피우지 못하고 왔으니 미안하지만 담배 한 개비 빌릴 수 없겠냐?'라고 특유의 너스레를 떨고 있을는지 모른다.
염라대왕이여, 부디 그의 청을 거절하지 마소. 담배 한 대 피는 것으로 이승의 시름을 다 날려버릴 수 있도록.
새삼스럽게 다시 한 번 노무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부디 저승에서만은 그의 삶의 길이 순탄하기를….
덧붙이는 글 | 사진은 노무현 홈 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 http://www.knowhow.or.kr/ 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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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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