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 전례 없는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보며

정치 보복에 의한 살인이라는 견해에 동의한다

등록 2009.05.31 12:03수정 2009.05.3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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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연인과 권총으로 자결했다. 무솔리니는 거꾸로 매달려 시민들에게 맞아 죽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은 물러난 지 1년 몇 개월 만에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왜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가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였던가? 그는 정말 죽어야할 죄를 지은 것일까?

 

 나는 그가 남긴 간결한 유서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지난 일주일, 옛날 도청 주변을 맴돌며 상처 입은 많은 국민들을 만났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투표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눈물을 쏟는 아주머니들,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어렵게 쌓아놓은 남북 화해의 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현실을 보면서 다시 노무현을 떠올리며 슬퍼하는 아저씨들,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는 이유로 등을 돌렸던 사람들이 가슴을 치는 모습을 보았다. 

 

 젊은이들은 일찍이 좌절하고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그래서 빈부 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현실에 분노하면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미안함을 통곡으로 달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 사이 TV에 나와 새로운 전리품을 회득한 것처럼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포괄적 뇌물죄' 운운하며 교활한 웃음을 날리던 검사라는 자들은 쥐구멍으로 숨었다. 봉하마을에 수백억을 투자했다면서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벼르던 치기어린 한나라당 의원도 행여 보일세라 하수구 쥐구멍으로 도망쳤다.

 

 전직 대통령의 숙소가 아방궁이라고 떠들었던 일부 언론은 자신들이 죽은 자에 가한 모욕과 조롱을 멈춘 채 재빨리 화해와 국민화합을 강조하며 위선의 가면을 썼다.

 

현임 대통령은 전임자에 대한 예우를 다 하겠다면서 뒤로는 시민들이 만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추모 공간마저 공권력으로 부수었다.

 

 그런 현실을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은 가슴에 가득했지만 아무 것도 쓸 수 없었던 날들이었다. 그를 도덕적인 파탄자로 몰았던 검찰과 언론의 말만 믿고 그를 삐딱한 시선으로 봤던 내가 미워서 눈을 감았다. 억울함에 치를 떨면서 고뇌했을 전직 대통령을 생각하며 나는 또 울었을 뿐이다.

 

 노건평씨는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전직 대통령이 박연차에게 받았다는 돈은 검찰이 주장하는 '포괄적 뇌물'이 아니라 고향인 봉하마을에 집을 지으면서 부족한 비용을 빌린 돈이라고 했다. 여러 번 고민하다 오랜 지기였던 박연차에게 빌렸다고 했다. 오죽 못났으면(?) 5년간이나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퇴임 후 살아갈 집을 마련할 자금도 모으지 못해 박연차에게 돈을 빌려야 했느냐고 묻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자. 문제는 노건평씨 말의 진실을 가리는 일이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연차를 국민 앞에 세워야 한다. 그가 믿을 수 있는 변호사의 입회하에 검찰의 주장이 맞았던 것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 대통령의 형의 말처럼 어려운 형편 때문에 빌린 돈이라는 사실이 맞는지 물어야 한다.

 

 검찰은 자신들이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표적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이 상태로 수사를 종결해서는 안 된다. 이건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형사처벌의 가능성 여부를 묻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진실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박연차를 국민이 보는 언론 앞에 세우는 것이 검찰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런 다음에 시민들과 언론은 누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집요하고 야비한 방법으로 전임 대통령을 조롱하고 모욕을 주고 마침내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밝혀내야 한다. 증거도 없어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피의 사실을 함부로 공표해버린 일부 검찰, 그걸 특종인양 갈겨버린 일부 언론의 행태는 훗날의 또 다른 죽음을 막기 위해서도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많은 국민들은 전임자에 대한 예우를 하겠다고 했던 현 대통령이면서 전임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하수인들이 전임자를 공격하는 것을 부추기거나 최소한 방조했다고 믿는다.

 

대한문 앞 분향소의 강제철거, 서울 시청 광장의 봉쇄, 추모 인파를 소요 인파로 몰았던 한나라당 원내 대표의 발언과 연계하여 유추하면 그 배후에 현임의 대통령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경복궁의 국민장 분위기를 잊지 못한다.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사라진 대통령의 모습이 비정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모두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실체는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인간'들이 유족에게 용서를 구하고 국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도록 만들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5.31 12:0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정치보복 #대통령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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