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루저'가 아니라 꿈꾸는 청춘!

연극이 있어 행복한 명랑소녀, 방혜영씨를 만나다

등록 2009.06.01 09:47수정 2009.06.0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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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의 삶'이라는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 기준선 안에서만 꿈을 꾼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아파트와 고급 승용차, 예쁜 여자 혹은 멋진 남자와의 결혼, 그리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는 것.


이 같은 기준들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또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잣대로 작용한다. 즉, 이러한 기준들을 충족시키는 사람들은 '부지런히 자기 계발을 한 사람', '행복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자들은 여지없이 게으른 '루저(loser)'로 비난받는 것이다. '루저문화'라는 용어가 오늘날 20대 청년 문화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 떠오른 것은, 바로 이 같은 사회배경과 관련이 있다.

엄친아 ·엄친딸이 나랑 무슨 상관!
우울한 20대의 심리를 반영해 패배자의 문화도 인기를 끌고 있다. 루저(Loser)문화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풍자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갖는 게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기성세대에 저항하기보다는 체념하고 자조하는 루저문화가 20대의 정서와 맞아떨어진다고 말한다. 대졸자 2명 중 1명은 취업을 못하는 시대에 딱 맞는 문화 코드인 셈이다. 실제로 루저문화의 대표주자인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은 20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의 노래 '싸구려 커피'는 사실적인 언어로 백수의 일상을 그려 인기를 끌고 있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 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아. 바퀴벌레 한 마리쯤 쓱~ 지나가도. (중략) 제멋대로 구부러진 칫솔 갖다 이빨을 닦다 보면 잇몸에 피가 나게 닦아도 당최 치석은 빠져나올 줄을 몰라. 언제 땄는지도 모르는 미지근한 콜라가 담긴 캔을 입에 가져가 한 모금 아뿔싸 담배꽁초가. 이제는 장판이 나인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 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이런 상황은 뭔가.(후략)'  -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 커피' 중

루저문화의 반대 개념인 승자(勝者)문화는 이른바 '엄친아·엄친딸'로 대변된다. 엄친아는 '엄마 친구 아들', 엄친딸은 '엄마 친구 딸'을 줄인 신조어다. 대개 부모들은 "내 친구 아들은 취직했다더라"는 식으로 은근히 자녀를 자극한다. 하지만 20대들은 분발하기는커녕 "세상에 잘난 사람은 모두 엄마 친구 아들·딸"이라고 비꼰다. 부러움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나와는 다른 사람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것이다.

출처: 2009년 4월 21일 <weekly chosun> 2052호에 게재된 기사 '그들만의 24시 X파일'에서 발췌
상위 5%만이 대기업, 공기업 그리고 고급 공무원과 같은 안정된 직장에 자리 잡게 된다는 이 시대. 그 5%안에 속한 엄친아·엄친딸이 '알파걸'이니 '21세기 인재상'이니 하며 자서전을 펴내고, 교과서적인 성공스토리를 읊고 있는 동안, 나머지 95%의 20대들은 언론과, 기성세대들에 의해 무참히 '루저세대'로 분류된다. 사회가 만들어 낸 기준에 의하면, 취직을 하지 못한 그들은 '사회 현실을 핑계 삼아' 게으름을 부리는, 의욕 없는 군상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은 '게으르고' '무기력한' 루저(loser)들일 뿐일까?


방혜영(29·극작가)씨는 20대 청년들에 대한 이 같은 비난에 소리 높여 반대를 표한다.

"행복한 삶을 결정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요. 어떤 이에게는 돈이, 어떤 이에게는 사랑이, 어떤 이에게는 다양한 경험이 행복한 삶의 기준일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좋은 아파트나 고급 승용차와 같은 획일적인 기준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재단 할 수는 없는 거죠."


지난 5월 23일 밤 10시 40분경, 서강대학교 정문 앞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갑자기 연극표가 생겨 인터뷰 시간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인터뷰가 늦어진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는 방혜영씨. 인터뷰를 위해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그녀와 함께 '그녀의 삶, 그리고 루저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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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혜영 씨 연극배우를 하고 있는 사람답게 독특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방혜영 씨. 빨간 안경테를 쓴 모습이 인상적이다. ⓒ 이유진

-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하하. 딱히 하나로 정리하기가 힘드네요.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거든요. 시나리오 각색도 하고, 연출도 하고 , 글도 쓰고, 인물화 모델일도 하고, 크고 작은 아르바이트들도 하고 있고, 연애도 하고….(웃음) 연극배우 일은 4월까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했었어요. 계모 왕비 역을 맡았었답니다."

- 음, 정말 하고 있는 일이 많으신데, 그렇다면 자신을 소개할 때 주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시죠?  보통은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소개할 때가 많잖아요.
"음…, '연극인을 표방한 백수'요.(웃음) 왜 백수냐 하면, 저는 하고 있는 일이 직업이 되려면 그 직업으로부터 얻는 소득이 제 소득의 '베스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연극이나 시나리오를 쓰는 일로 돈을 많이 벌고 있지는 못하거든요. 저의 주 소득은 '비정기적인 알바'죠. 하하. 그러니까 백수가 더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저 자신을 '연극인 혹은 극작가'로 소개할 수 있기를 바라요."

-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 글쓰기를 좋아했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성인판(?) 세계문학전집을 꿰고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대학에 입학하고부터는 책을 읽는 것보다 영화나 연극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상상하는 것들이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떠오르더라고요. 왜 스틸 컷 처럼요. 제가 상상하는 그런 장면, 영상들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연극에서는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그것들을 재현해 낼 수 있었고,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정확히 딱 이렇다 할 만한 계기는 없네요. 자연스럽게 연극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 같아요."

- 그런데 유명인사가 아니고서야 연극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은 정말 낮은 편이잖아요. 힘드시지 않나요?
"물론 힘들죠. 연극을 해서 '돈을 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돈을 벌어서 연극하는 데 '쓴다'고 생각하는 게 편해요. 극단들 입장에서는 연극 하나 공연할 때마다 마케팅비나 홍보비가 워낙 많이 들어가다 보니 수익성을 보장하는, 그러니까 이미 대중들로부터 검증받은 유명작품을 공연하고 싶어 하는 게 당연 한 거고, 그렇다보니 저 같이 등단도 못한 무명작가의 창작극은 무대에 올리기가 쉽지 않거든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작품을 올릴 때도 돈을 받고 올리는 게 아니라, 무료로 올리는 게 부지기수예요. 저 같은 경우는 아예 제가 직접 극단을 차려서 공연을 만들었어요. 저 이래보여도 극단 대표랍니다.(웃음) 배우나 연출, 무대 감독 등으로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몇 달 씩 연습하고 공연을 해도, 출연료 챙기기는 하늘에 별 따기죠. 그렇지만 사정을 아니까 이해는 해요."

- 그렇게 힘든데도 연극 대신 대기업 취직이나, 공무원 같은 것들을 해보실 생각은 안 하셨나요? 
"네, 좀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안 해봤어요. 단 한번도요. 애초부터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다들 회사원서 쓰고 악전고투 할 때, 저는 글을 쓰거나 연극을 하거나 그랬죠. 이 일을 하는 것만이 제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 연봉 1억을 준다 해도요?
"1억이요? 1억 준다면 하죠.(웃음) 농담이예요."

- 그럼, 어떤 연극을 만들고 싶으세요? 극작을 하는 것, 연기를 하는 것 등도 포함해서요.
"어려운 질문인데요? 하하. 저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요. 우리 사회가 덮어둔 채 잘 들여다보지 않는 구석진 곳들을 파헤쳐서, 이야기를 찾아내는 거죠. '여자의 삶', '성적 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가난' 등이 제가 다루는 주된 화제예요. 가령, 2007년도에는 '2006 이쁜 가족 선발대회'라는 연극을 공연했었어요. 실제로도 존재하는 대회인 '이쁜 가족 선발대회'를 모티브로 창작한 작품이었는데, 실제 대회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아이를 갖는' 일반적인 가족 뿐 아니라, '동성끼리 이룬 가족' 혹은 '다문화 가족' 등도 가족으로 인정해주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지만, 저는 거기에서 '성적 소수자' 이야기를 주로 다뤘었죠. 제 작품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예요."
  
- 그런 연극을 만들고 싶어 하시는 어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우선 저는, 우리사회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결혼은 남/여가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사람들에게, 동성 간에도 사랑을 나눌 수 있고, 결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던지 하는 거죠.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구별 짓기'를 지워나가고 싶어요.

- '구별 짓기'를요?
"네. 사실 우리는 어떤 기준을 정해 놓고, 늘 사람들을 구별 짓잖아요. 정상과 비정상, 승자와 패배자…. 이렇게. 하지만 저는 삶에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연극을 통해서 숨은 이야기들을 들추어내고 계속해서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이 그 동안 잘 몰랐던 사회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자기와 다른 삶들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구별 짓기'도 사라지겠죠."

- 음, 지금 계속해서 '삶의 기준', '구별 짓기'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계신데, 오늘날 사회가 20대 청년들을 '엄친아․엄친딸' 혹은 '루저세대'로 구별 짓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음…, 인터뷰 시작 전에도 조금 이야기를 했었지만 그런 구별 짓기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가령 저는 '연극인을 표방한 자발적 백수'지만 연봉 3000이 넘는 제 친구들이 부럽지는 않아요. 왜냐고요? 이게 제가 원했던 길이거든요. 비록 사회가 정해놓은 보편적인 삶의 기준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제 삶에 만족하고 있어요. 제가 행복한데 사회가 '너는 루저야'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되잖아요. 우리 사회는 모든 구성원들의 삶에 너무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와 같이 그 기준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루저'로 명명하고 따돌림으로써 세계를 이분화 시키고 있는 거죠."

- 그렇다면, '루저세대'라는 비난을 이겨나가기 위해서 20대들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요?
"오늘날의 20대가 기성세대의 논리, 즉 '대학 졸업하면 빨리빨리 취직해서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와 같은 논리를 따라서 살아갈 필요는 없어요. 그렇게 하기도 힘들고요. 요즘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20대들은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채로 취직만 바라보고 살기보다는,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스스로 탐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요즘의 20대들처럼, 청소년 시절과 대학시절을 거쳐 오면서도 자기적성을 찾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세대에게는, 이런 것들을 고민해볼 시간이 더더욱 필요하죠. 이 과정에서 자기 길을 찾다보면, 취직이 늦어질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자기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30대에 죽을 것도 아니잖아요? 단기적으로 대기업에 취직해서 높은 연봉을 받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말고 인생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자세를 갖추는 게 더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해요."

- 그렇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한 질문만 더 여쭤볼게요. 방혜영씨는 긴 호흡으로 실천해 나갈 진정한 꿈을 찾으셨어요?
"저요? 저는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예요.(웃음) 행복하게 산다는 게 100평 짜리 고급 빌라 이런 곳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고요, 일반 성인극을 공연하면서 매월 80만 원 정도만 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할 것 같아요."

한 달 수입이 80만원도 채 되지 않는 고달픈 연극쟁이로서의 삶. 사회가 정해 놓은 '보통의 삶' 기준에 따르면, 방혜영 씨의 삶은 '루저(loser)'에 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녀가 정말로 게으르고 무기력한 루저일 뿐인가?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난 루저가 아니라 꿈꾸는 청춘이다!"
#루저문화 #방혜영 #연극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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