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기록 잃어버리고도 '솜방망이' 징계

대전지법, 500~1500쪽 기록 분실에 '견책' + '주의'

등록 2009.06.04 17:20수정 2009.06.0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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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방법원이 1500쪽에 달하는 재판기록을 통째로 분실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분실된 관련 사건 서류 중 하나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대전지방법원이 보존기한이 지나지 않은 재판기록을 분실하고도 문서관리 관계자들에게 솜방이 처분을 내려 눈총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이장호(50)씨는 대전지법을 찾아 자신의 사건과 관련된 사건 재판기록 열람과 복사를 신청했다. 해당 기록물은 2004년 재판자료 등으로 보존기한은 2013년 말까지다. 하지만 대전지법은 이때서야 법원 문서 창고에 보관돼 있어야 할 이씨의 재판기록이 사라진 것을 인지했다. 대전지법은 한 달여 동안 공익요원까지 동원해 대전지법 문서창고 등을 이 잡듯 뒤졌다. 하지만 기록물을 찾지 못했다.

분실된 문서량에 대해 대전지법은 500여 쪽으로 대부분 검찰과 소송 상대 측 변호인을 통해 자료를 복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씨는 약 1500쪽으로 법원 측이 복원했음에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주요 문서가 누락돼 있다며 애를 태우고 있다.      

대전지법은 분실사유에 대해 "재판기록이 사라진 구체적인 경위를 알 수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대전지법 일각에서는 "보존시기가 지난 문서를 소각 폐기하는 과정에서 보존기한이 지나지 않은 이씨의 문서가 실수로 함께 폐기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 또한 추측일 뿐이다.

이에 따라 대전지법원장은 지난 5월 대전지법 민사과에 근무하는 'ㅈ' 과장을 재판기록 분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주의 촉구' 조치했다. 또 대전고등법원 보통징계위원회는 같은 과 법원서기인 'ㅇ'씨에 대해 '견책'을 의결했다. 관련자를 모두 경징계 처분한 것.
  
이에 대해 당사자인 이씨는 납득할 수 없다며 사법 기관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피해 당사자 "분실 사유조차 모른다는데 경징계라니..."

이씨는 "대전지법 측에 분실사유를 물었지만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며 "분실사유조차 알 수 없는 기록물을 정말 잃어버린 것인지도 믿기 어렵지만 백번 양보해서 대전지법의 해명을 믿는다 하더라도 '견책'과 '주의 촉구'에 그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록의 분실과정에 대해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사법 기관에 수사의뢰 또는 고발하는 방안을 적극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문창기 대전참여자치연대 기획국장은 "재판기록의 분실은 한 개인의 삶의 내용을 바꿀 수 있는 중대한 과실"이라며 "그런데도 분실이유 조차 모른다면 누가 법원 행정을 믿고 신뢰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명쾌한 분실 사유를 밝히고 이에 걸맞게 책임 있는 자들을 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기록물을 무단으로 파기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또 기록물을 중과실로 멸실하거나 손상시킨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소송 상대자의 위증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10년째 법정싸움을 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2001년 당시 운영하던 컴퓨터 학원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서 공증증서를 근거로 이미 받은 학원매매대금을 이중으로 받아 챙기려 한 혐의(사기미수)로 기소돼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7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이후 관련사건 증인들의 위증이 밝혀져 이씨는 지난 2006년 재심 형사재판부에 의해 무죄가 선고됐다. 하지만 대법원이 다시 유죄의 취지로 파기 환송해 다시 유죄가 선고됐다. 현재 계류 중인 사건은 이와 관련된 '전부금 청구' 소송이다.
#대전지방법원 #재판기록 #분실 #경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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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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