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사죄와 전면적인 국정쇄신을 촉구하는 전국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지방 대학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수들' 주최로 열린 '일부 교수들의 릴레이식 시국선언을 우려한다' 기자회견에서 김종석 홍익대 교수(왼쪽에서 첫번째)가 기자회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유성호
"지금은 권위주의 시절처럼 탄압받는 상황 아니다"뉴라이트 계열의 대학교수들이 9일 대학가로 확산되고 있는 교수들의 반(反)정부 시국선언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으로 세몰이를 시도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뜻에 동조하는 교수들이 63개 대학 128명이라고 밝혔는데, 기자회견에 참석한 교수들 대부분이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운동 단체에 몸담은 인물들이었다.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등 11명은 이날 오전 서울 무교동 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수들' 128명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4․19민주혁명이나 6․10 민주항쟁 때는 명백한 선거부정과 강압적인 통치방식에 대해 항거해야 한다는 지식인들의 공감대가 있었고, 또 이를 위해 촌각을 다투어야 하는 절박성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현 시점에서 일부 교수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태도인가 하는 점에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반정부' 시국선언 교수들의 주장에 대해 "언론과 방송이 정부·여당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또한 지식인들이 개별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써도 과거 권위주의정권 시절처럼 탄압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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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성향 교수들 "시끄러운 소수가 민주주의 위협" ⓒ 박정호
"침묵하는 다수를 무시하고 시끄러운 소수가 민주주의 위협"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자신들의 생각이 지식인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9일 오후 1시 현재 반정부 시국선언에 참여한 대학교수들의 숫자가 2500명에 육박했지만, 불과 128명의 서명을 받은 자신들이 '침묵하는 다수'를 대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는 주장은 좌파·진보진영에서 일관되게 펴온 담론인데, 이러한 담론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다는 증거는 없다"며 "우리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외치는 노예의 목소리가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의 생각과 지성을 대변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도 "침묵하는 다수를 무시하고 시끄러운 소수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어느 쪽이) 다수냐 소수냐의 판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도 교수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잘 알고 있다. 우리와 뜻을 같이하면서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서명하지 못한 교수들도 있지만, 릴레이식 시국선언에 반대하는 교수가 절대 다수라고 생각한다."
이재교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87년 6월항쟁 때도 시국선언 교수의 숫자가 2000명을 넘지 못했는데 1500명이 적은 숫자가 아니다"는 기자의 물음에 대해 "6월항쟁 때의 시국선언은 교수들의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했는데, 지금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그 당시 분위기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답했다.
"광장은 정부 재산... 개방 후 벌어질 사태 누가 책임지나"이들은 정부와 서울시의 서울광장 봉쇄에 대해서도 '당연한 조치'라는 반응을 보였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서울광장을 개방한 후에 벌어질 사태에 대해 누가 책임질 수 있겠나?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광장을 개방해놓고 '민주주의 후퇴'라고 얘기하는 것은 억지"라고 말했고, 이재교 교수도 "광장은 정부의 재산인데, 현저하게 질서를 어지럽힐 시위를 막기 위해서는 (광장 출입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다.
특히 윤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정권 퇴진을 얘기하는 시위대가 있었냐? 지금은 광장 개방만 안 해도 정권 퇴진을 쉽게 얘기하는데, 그분들이 5년 전에도 이리 쉽게 정권 퇴진을 요구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진보(한미FTA 추진)와 보수(국가보안법 폐지 시도)를 막론하고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각종 시위들이 적지 않았다. 2004년 10월 4일에는 반핵반김국민협의회에서 주최한 '국보법 사수 국민대회'가 서울광장에서 끝난 후 주최측이 청와대 행진을 선동하다가 물대포를 쏘는 경찰과 충돌했지만, 폭력사태가 생긴 후에도 보수단체의 집회가 불허된 일은 없었다.
▲유성호
참여 교수 상당수는 뉴라이트 계열 시민단체 소속9일 성명서를 발표한 교수들은 "6일 저녁에 첫 모임을 열었는데, 불과 3일 만에 많은 교수들이 동참했다"(김종석 교수)고 자랑했지만, 성명서에 참여한 교수들 상당수가 뉴라이트 계열 시민단체라는 인적 네트워크로 얽혀있었다.
박효종 교수와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김종석 교수는 같은 단체의 공동대표와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장을 지냈다.
윤창현 교수는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을,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와 최창규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같은 단체의 운영위원을 각각 맡고 있다. 조희문 인하대 연극영화과 교수는 바른문화예술포럼 회장을, 이명희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는 반(反)전교조 성향의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대표를 각각 맡고 있다.
뉴라이트 정책위원장을 지낸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장과 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뉴라이트싱크넷 운영위원장), 이재교 교수(뉴라이트재단 이사)도 비슷한 성향의 교수로 분류되고, 황성빈 세종대 분자생물학과 교수는 '촛불시위 중단', '미디어법 개정 촉구' 등의 성명서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이명박 정부를 지지해온 이들이 반정부 시국선언에 이처럼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낮은 인기를 의식해서인지 "최근의 민심 이반에는 정부의 책임도 없지 않다"고 밝혔다.
박효종 교수는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 (부족이) 그분의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고, 과감한 국정쇄신이 필요하다"며 "(우리의 주장이) 이명박 정부가 정치를 잘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이들의 성명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일부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바라보는 우리의 견해 |
지금 한국사회는 난국에 처해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험난한 고통을 강요하고 있고,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도 안보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사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내외의 엄중한 상황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마음을 합쳐 위기돌파를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이 시점에서 일부 대학교수들이 '릴레이식'으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혼란과 분열,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사태를 깊이 우려하며 유감으로 생각한다. 지금이야말로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라 각자 자신의 뒤를 돌아보고 엄중한 자기반성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할 때이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는 대학교수들이 비판적 지성을 가진 지식인으로 사회와 정치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책무를 지니고 있으며, 과거에도 그런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일부 교수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태도인가 하는 점에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과거 4․19민주혁명이나 6․10 민주항쟁 때는 명백한 선거부정과 강압적인 통치방식에 대해 항거해야 한다는 지식인들의 공감대가 있었고, 또 이를 위해 촌각을 다투어야하는 절박성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정치권이 제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때 약속한 대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섬기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여당은 웰빙 체질을 벗지 못한 채 자신들만의 권력투쟁에 몰두하고 있으며,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하면서 기회만 있으면 국회보다 광장으로 달려 나가려 하고 있다. 이 모두 국민들의 여망을 저버리는 실망스러운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정부 정책에 비판을 하고자 한다면 정상적인 방식을 통해 따지고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가 발전시켜 온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우리는 시국선언문들에 담겨있는 내용이 균형 감각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명한다. 한국사회 다수의 사람들이 이념적 입장을 떠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여와 야 등 정치적 입장에 따라 시각과 견해가 첨예하게 달라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마치 국민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시대적 요구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점은 비판적 지성으로서 공정하고 정직한 태도가 아니다.
셋째, 일부 교수들은 시국선언문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러한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언론과 방송이 정부․여당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또한 지식인들이 개별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써도 과거 권위주의정권 시절처럼 탄압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가하면 경찰은 물매를 맞으면서도 폴리스라인을 넘는 일부 과격폭력시위에도 인내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과연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자유는 방종과는 다른 것이다. 자율과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쇠파이프와 화염병까지 등장하는 불법․폭력을 동반하는 집회․시위마저 허용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자유의 남용에 이른 불법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집행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사회의 평화, 나아가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우리는 믿는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일방적 내용을 담은 시국선언이란 형식을 통해 자기의 일방적 주장을 기정사실화하기보다는 공론의 장에서 건설적 대화와 학문적 소통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이에 우리는 적절한 시점에서 공개적 학술토론회를 개최할 것을 정중하게 제안하는 바이다.
지성은 지성다운 태도를 가질 때 의미가 있다. 소금이 짠맛을 잃는다면 소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지성도 마찬가지다. 지성이 불편부당성과 겸손함을 가질 때, 비로소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자신들만이 공감하는 정파적 내용을 일방적으로 시국선언이라는 형식을 빌어 발표하는 것은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방식이라고 할 수 없다. 사회적 공감대가 없어 쟁점이 되고 토론의 주제가 될 만한 사안들을 굳이 선언문형식으로 발표하여 국민들을 격동케 하는 것은 지성의 바른 표출이라고 볼 수 없으며,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본다. 또 각 대학공동체의 전체 구성원이 아닌 소수 교수들의 의견을 '00대학교수 일동'이라고 하면서 그 대학교수 전체의 의견처럼 사회에 비치게 하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국민 모두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지금은 어느 때보다 통합과 안정이 필요한 시기이다. 모든 이들의 중지를 모아 작금 우리가 처한 심각한 내우외환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때, 자신들만의 정파적인 견해를 정론인 것처럼 강변함으로써 사회에 혼란을 조성한다면 이는 무책임한 비지성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남 탓'을 하기보다 스스로의 잘못은 없었는지 차분히 성찰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함께 힘을 모을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2009. 6. 9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수들
강경근(숭실대) 강규형(명지대) 강신천(공주대) 강용구(공주대) 강철희(연세대) 곽태원(서강대) 곽한병(경기대) 구정모(강원대) 권근원(서경대) 권봉상(경기대) 김경환(성균관대) 김경환(서강대) 김관보(카톨릭대) 김광윤(아주대) 김명수(한국교원대) 김민호(성균관대) 김성수(강남대) 김세곤(동국대) 김세중(연세대) 김영기(경인교대) 김영호(성신여대) 김용직(성신여대) 김용철(부산대) 김원식(건국대) 김정동(연세대) 김종석(홍익대) 김지철(세종대) 김창석(공주대) 김형곤(건양대) 김호섭(중앙대) 남성일(서강대) 노부호(서강대) 류병운(홍익대) 류청산(경인교대) 류해일(공주대) 문선화(부산대) 박동운(단국대) 박상규(연세대) 박영석(조선대) 박인환(건국대) 박형래(강릉대) 박효종(서울대) 배기효(대구보건대) 배진영(인제대) 배호순(서울여대) 변지석(홍익대) 변홍식(계명대) 선우석호(홍익대) 성극재(경희대) 손기형(전남대) 손양훈(인천대) 송호열(서원대) 신도철(숙명여대) 신윤창(강원대) 안세영(서강대) 안재욱(경희대) 안종범(성균관대) 양준모(연세대학교) 엄기욱(군산대) 오성(세종대) 오한진(관동대 의대) 유세희(한양대) 유양근(강남대) 유호열(고려대) 윤석민(서울대) 윤창현(서울시립대) 이경주(홍익대) 이규식(연세대) 이덕봉(동덕여대) 이명희(공주대) 이상복(강남대) 이상훈(재능대학) 이석규(세종대) 이성호(중앙대) 이영철(광주대) 이윤식(인천대) 이은영(한국관광대) 이재교(인하대) 이종남(극동대) 이종호(공주대) 이지환(경인여대) 이채식(우송공업대) 이평우(고려대) 이학식(홍익대) 이한식(서강대) 이형렬(대전보건대) 이훈구(연세대) 임석철(아주대) 임주영(서울시립대) 장명화(호원대) 전삼현(숭실대) 전선영(용인대) 전엄봉(수원대) 전영록(제주관광대) 전용덕(대구대) 전정수(서경대) 전홍찬(부산대) 정규석(강원대) 정기택(경희대) 정승윤(부산대) 정인교(인하대) 제성호(중앙대) 조동근(명지대) 조동섭(경인교대) 조동우(포항공대) 조성환(경기대) 조승호(강남대) 조윤영(중앙대) 조중근(장안대) 조희문(인하대) 천세영(충남대) 최강식(연세대) 최 균(한림대) 최석만(세종대) 최 인(서강대) 최창규(명지대) 하우봉(전북대) 한혜빈(서울신학대) 허원기(인하대) 허 윤(서강대) 홍기칠(대구교대) 홍성걸(국민대) 홍의석(광운대) 홍재욱(인천대) 황성빈(세종대) 황혜정(조선대) 황홍섭(부산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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