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에겐 몇 명의 남자들이 있었을까?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드라마 <선덕여왕>

등록 2009.06.10 15:05수정 2009.06.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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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여러 명의 남자들을 두고 있는 미실. ⓒ MBC

단독 순행에 나섰다가 백제 암살단에게 포위된 진흥왕(이순재 분)을 화려한 무술로 구출해내고는 가마 안에서 겸손한 미소로 진흥왕에게 차를 따라 올리던 여인, 미실(고현정 분). 그때만 해도 그저 진흥왕이 총애하는 궁중 여인이려니 했다.

죽기 직전의 진흥왕이 은밀히 불러 유훈을 남기면서 "내가 죽거든 너는 불가에 귀의하라"며 "그렇게 하겠느냐?"고 확인하자 어딘지 서운한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맹세한 여인, 미실. 그때만 해도 그저 진흥왕의 명령을 충실히 따를 여인이려니 했다.

그런데 진흥왕의 유훈을 받고 문밖을 나선 미실이 그런 엄청난 대(大)반전을 연출했다. "사람을 얻는 자가 시대의 주인이 된다"는 그 말, 진흥왕이나 할 수 있는 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진흥왕의 사람들은 실상 미실의 사람들이었다. 

진흥왕의 유훈을 조작한 미실은 태손 백정(훗날의 진평왕, 장남 동륜태자의 아들)이 아닌 금륜태자(진지왕, 임호 분)가 다음 왕위를 잇도록 하더니, 진지왕이 약속을 깨고 자신을 황후로 받아주지 않자 이번에는 진짜 유훈("백정에게 왕위를 계승")을 공개하면서 진지왕을 내몰고 백정을 왕위에 앉혔다. 그리고는 툭하면 어린 화랑들을 앞세워 군왕과 정부를 위협하고 폭력적인 독재권력을 행사한다.

그토록 고대하던 황후 자리는 얻지 못했지만, 미실은 황후 아니 제왕보다도 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위쪽에 있는 모래가 다 흘러내리면 모래시계를 새로 뒤집을 날이 온다는데, 미실의 모래시계에서는 앞으로도 그냥 계속해서 모래가 무한정 흘러내릴 것만 같다. 마야부인(윤유선 분)의 쌍둥이 출산으로 "북두의 일곱 별이 여덟 별로 바뀌는 날, 미실을 대적할 자가 오리라"는 예언이 성취되었는데도, 그의 모래시계는 뒤집히지 않은 채 여전히 흘러내리고 있다.

<선덕여왕> 속 미실의 남자관계, 사실일까

드라마 <선덕여왕> 속 실질적인 최고권력자 미실은 종전의 사극에 나온 여성 등장인물들과는 그 성격을 현저히 달리한다. 종래의 사극에서도 막강 권력을 행사하는 여인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개 혼인(황후)이나 혈연(태후)이라는 제도적 끈에 의지하여 권력을 행사했을 뿐이다. 그러나 <선덕여왕> 속 미실은 그런 끈도 없이 화랑세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드라마 속 미실은 여타 남성 권력자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권력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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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의 남편인 세종(독고영재) ⓒ MBC

독자적인 권력기반 외에, 우리를 더욱 더 놀랍게 하는 것을 미실은 갖고 있다. 그것은 하나도 아니고 손가락을 꼽아야 할 정도로 여럿이다. 화려한 남자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도대체 남자를 몇 명이나 둔 것인지, TV 화면상에는 '미실의 남편'이니 '미실의 정부'니 하는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더욱 우리의 눈을 의심케 하는 것은, 미실의 남자들이 서로 질투심도 없이 함께 마주앉아 미실의 다음 결혼문제를 논의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미실과 남자들 사이의 다부(多夫) 상황은 우리의 고정관념으로는 그저 한없이 낯설기만 한 것이다.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고는 있다지만 아직은 그래도 남성 우위를 향유하고 있는 대한민국 남자들로서는, 아내나 여자친구가 <선덕여왕>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 것인지 살짝 고민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드라마 <선덕여왕> 속 다부(多夫) 상황은 과연 어느 정도나 사실관계에 부합한 것일까? 여기서는 미실의 경우에 국한하여 이 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미실의 남자관계는 물론이고 미실의 존재 자체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재 인정된 사료를 기초로 할 때에는 미실의 이야기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단정하고 넘어가기도 쉽지 않다. 왜냐하면, 신라인 김대문이 지은 <화랑세기>를 베낀 것이라고 주장되는 책(약칭 '현존 <화랑세기>')이 1989년 및 1995년에 공개된 바 있고 그 책 속에 미실의 존재와 그의 남자관계가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존 <화랑세기>를 둘러싼 진위논쟁이 진행 중인 데다가 현재까지는 위작설이 다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현존 <화랑세기>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아직은 유보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현존 <화랑세기>가 안고 있는 이 같은 한계를 염두에 두고 미실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미실, 진위 논란 있는 <화랑세기>에만 등장

현존 <화랑세기>의 제6세 풍월주 세종 편에 따르면, 진흥왕의 부인 쪽 조카였던 미실은 세종(독고영재 분)의 어머니인 지소태후(진흥왕의 어머니)가 마련한 며느리 선발대회에서 뽑힌 뒤에 세종의 눈에 들어 우여곡절을 거쳐 정식으로 그의 부인이 되었다. 미실이 세종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은 하종(제11세 풍월주, 김정현 분)이었다. 참고로, 진흥왕과 세종은 한 어머니를 두었지만 아버지는 서로 달랐다.

그런데 정식으로 세종의 부인이 되기 전부터 미실은 사다함이라는 화랑과도 사랑을 나누었다. 현존 <화랑세기>의 제5세 풍월주 사다함 편에서는, 문노(제8세 풍월주, 정호빈 분)의 무리인 사다함이 미실을 사모했고 미실 역시 그를 좋아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현존 <화랑세기>의 제7세 풍월주 설원랑(혹은 설화랑, 전노민 분) 편에 따르면, 미실은 설원랑이라는 화랑과도 사통했고 이 관계에서 보종(제16세 풍월주, 백도빈 분)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그뿐만 아니라 미실은 진흥왕과 그의 아들인 동륜태자(진지왕의 형)와도 동시에 관계를 가졌다. 현존 <화랑세기>의 11세 풍월주 하종 편에서는 "대개 미실궁주는 세 왕을 차례로 섬겼다"(盖美室宮主歷事三朝)라고 했다. 이는 미실이 진흥왕·동륜태자 외에 진지왕·진평왕과도 관계를 가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미실과 위 3대의 관계가 그저 무도(無道)한 관계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위의 11세 풍월주 하종 편에 따르면, 진흥왕 부인의 추천을 통해 미실은 3대를 모실 수 있는 지위를 얻게 되었다. "황후가 이에 3대를 모시는 자리로서 미실을 황제에게 추천했다"(后乃以三代之席薦美室于帝)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점을 본다면, 미실이 3대와 관계를 맺는 것이 당시 궁중의 법도에 위반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황후 요청으로 세 왕 섬긴 미실, 미실 권유로 부인 2명 둔 설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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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한 장면. ⓒ MBC


그럼, 미실을 둘러싼 위의 남자들이 오로지 미실만 쳐다보고 살았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진흥왕·진지왕·진평왕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세종과 설원랑도 미실 외에 따로 부인들을 두었다. 세종은 첫째 부인 미실 외에 둘째 부인 융명을 두었고, 설원랑은 미실의 권유로 준화낭주·개원낭주를 부인으로 두었다. 미실의 처지에서는 일처다부라고 할 수 있지만, 미실이 상대하는 남자들의 처지에서는 일부다처였던 것이다.

위와 같은 현존 <화랑세기>의 내용을 볼 때, 미실을 중심으로 같은 탁자에 마주앉아 미실을 황후로 만들 궁리를 하는 드라마 속 세종과 설원랑의 모습은 그런대로 현존 <화랑세기>의 내용에 충실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미실을 둘러싼 남자관계를 통해 우리는, 만약 현존 <화랑세기>가 위작이 아닌 진짜라면, 신라 지배층의 성풍속이 상당히 개방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윤리 기준에 따라 작동했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존 <화랑세기>를 둘러싼 진위논쟁이 여전히 진행형이므로, 이러한 다부(多夫) 풍속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직은 유보적이어야 할 것이다.

신라 지배층이 문란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

한편, 드라마 <선덕여왕>과 현존 <화랑세기>에 묘사된 성풍속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은 현존 <화랑세기>의 사료적 가치가 인정될 경우를 전제로 하고서 하는 말이다.

첫째, 미실과 남자들의 관계에서 나타난 성풍속만을 근거로 미실과 신라 지배층을 문란한 사람들로 곧바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시대마다 성풍속이 다 다르듯이, 신라사회 특히 신라 지배층 사회에는 그 나름의 독특한 성풍속이 있었고 또 그것이 사회체제의 유지를 방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둘째, 미실을 둘러싼 성풍속이 신라 지배층을 포함한 신라사회 일반의 성풍속이었을 것이라고 곧바로 추론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어느 시대건 간에 여러 명의 배우자를 둘 수 있는 사람들은 대개 경제력이나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배우자와 함께 갖게 될 경제력이나 권력을 통한 보상이 기대되지 않는 한, 웬만한 사람들은 자신이 여러 명의 배우자 중 한 명이 됨으로써 겪게 될 질투심과 치욕을 감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현존 <화랑세기>의 성풍속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평범한 신라인들까지 그런 성풍속 속에서 살았으리라고 곧바로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선덕여왕 #미실 #화랑세기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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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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