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제재? 흉내도 자격을 갖춰야

등록 2009.06.11 09:59수정 2009.06.1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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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가 5공 정권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점은,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탄압에 새로운 요소를 도입했다는데 있다. 실은 법적인 조처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이미지를 풍기는 "금융제재"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투표인구의 60%가량)은 새로운 정부가 경제를 잘 운영해서, 돈도 많이 벌게 해주고, 부유한 나라로 이끌어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경제 대통령", "실용 정부", "불도저"(당사자는 그냥 불도저가 아니라 "컴퓨터 달린 불도저"라고 주장하면서) 운운해가며, 현 정부의 이미지를 돈, 경제, 금융의 그것과 동일시 했었던 것이다. 어떤 점에서 허황되고도 우스꽝스러운 이 바람은 결국 금융사기 용의자(기타 수많은 전과를 비롯하여)에게 권력을 안겨주게 되었다. 이미 태생부터 도덕적 결함 혹은 의구심을 안고 출발한 현 정권이 구 정권의 도덕성을 심판하겠다고 나섰던 최근의 박연차 게이트 조사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굉장히 아이러니하다.   

 

현 정부는 이전과는 그 근본에 있어 성격이 다른 정부이다. 군사계에 기반을 둔 권력도 아니고, 법조계라든가 정치계에 기반을 둔 권력도 아니고, 경제에 대한 우리의 열망에 부응하듯, 완전히 다른 형태의 권력, 즉 재계로부터 형성된 정치 권력이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현 정부는 정치적 테크닉에 의존하는 것 같지도 않고, 또 군사정권 시절이 그랬던 것처럼 권력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며 과시하려는 의지도 없어 보인다. 오로지 경제! (대)기업! 이윤! 이것이 현 정부의 이데아이다. 이는 이미 90년대에 정주영이 대권에 도전하면서 시도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3김) 정치계가 강세였던 당시의 정치 풍토로 인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이데아이다.

 

경제 대통령(?)을 수장으로 둔 현 정부는 기업이 회사를 운영하듯이, 고객을 응대하듯이, 거래처를 상대하듯이 모든 일처리를 한다. 고객이 불만의 탄성을 지르면 모두가 볼 수 있는 함성의 게시판을 없애 버리고 고객 맞춤 1:1 상담을 통해 불만을 개인화 한다든가, 말을 잘 듣지 않는 다른 부서 혹은 기관이 있으면 미디어를 통해 평판을 조성하여 신용도를 떨어뜨린다든가, 거래처가 자신의 요구에 불응하거나 고객이 회사의 규정을 위반하면 금융제재를 가하여 경제적 손실과 불이익을 초래하게 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가령 촛불 집회자나 시위자조차, 과거처럼 경찰의 지휘봉이나 최류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저작권법 위반이나 사기, 기타 등등, 정치적 집회와는 아무 상관없는 저 구석의 경제관련 기록들을 검열하여, 난데 없이 벌금이라고 하는 금융제재에 의해 다스려지고, 그것이 제재와 탄압의 형식으로 전면에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민주화 운동이란 이제 고객이 회사를 상대로 하는 소비자투쟁으로 변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바라마지 않던 CEO 대통령, 실용정부의 바로 그 경제이다. 

 

이를 예증해주는 좋은 기사 하나가 결국은 나오고야 말았다.

 

http://news.kbs.co.kr/article/economic/200906/20090609/1790389.html

 

북한의 도발에 한국 정부가 "금융제재"를 가한다는 보도이다. 얼마전 마카오 은행 구좌를 동결해가며 막강한 금융권력을 과시하던 금융 공룡 미국을 흉내내며, 무늬만이라도 뭔가 제스쳐를 취하고 싶었던 것이다. 북한 관련 뉴스를 접할 때 CNN 등 외신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금융제국의 위상을 넋놓고 부러워하던 CEO-실용 정부가, 드디어 아무도 인정해주지도 권하지도 않은 경제적 대응을 내 놓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금융제재 대상자인 북한의 그 3개 기업(조선광업무역회사, 단천상업은행, 조선용봉총회사)이 제재의 대상으로서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남한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남한으로서는, 아니 그들로서는 전혀 생뚱맞게도 한국의 기업이나 금융기관과 거래도 한 바가 없고, 한국에 무슨 자본을 소유한 것도 아니고, 투자도 한 적이 없고, 그냥 뭐 이건 아무 관계도 아닌, 그냥 그런, . . . 그들은 그냥 그들 나름대로의 기업이고, 또 우리는 그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우리 대로 살고 있는, 계약도 전혀 없던, 아니 할 수도 없었던, 뭐 그런 시답지 않은 관계조차도 아닌, 그들은 그들, 우리는 우리라는 얘기다. 

 

구한말에나 썼을 법한 촌스러운(?) 회사명만 보아도 생소한 그들에게 금융제재를 한다고 나선 것이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 살고 있는 한 숫사자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서 벌금을 통보하겠다는 발상과 아주 멀지만은 않아 보이는 그런 제재를.

 

정부의 저 '찌질'한 태도와 이를 또 정성스럽게 보도하는 미디어에서, 우리는 그들이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는지, 또 무엇에 의존하고 무슨 수단을 사용하고 싶어 안달이 났는지를 알 수가 있다. 금융제재가 어떠한 조건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기본조차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 태도가 대외적으로 조롱이나 당하지 않을까 애처롭다.

2009.06.11 09:59ⓒ 2009 OhmyNews
#금융제재 #북한 #금융권력 #경제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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