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노무현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노무현 신화화에 맞서기 4] 공존을 지향하는 민주적 리더십의 모색을 위하여

등록 2009.06.10 14:16수정 2009.06.1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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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은 억울하게 죽었고, 대북사업은 혼절했다

여기까지 읽어오시던 독자분들께 제안을 한가지 하려고 한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차원에서 정몽헌 의장을 추념하는 시간을 가져 주십사는 말씀이다. 그는 장사꾼이었지만, 목전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쏟아 부어 끊어진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데 헌신했던 사람이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이 성공하는데에 그의 조력은 상당한 힘을 발휘했고, 그의 부재는 남북관계를 답보상태로 빠뜨리는 원인이 되어 돌아왔다. 그만큼 그의 비중은 컸다. 빈자리가 확실히 드러나는 그런 사람.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도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 동시대인들은 그의 죽음에 일정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고 나는 본다. 기억하려 하지 않은 이유도 그게 아닐까. 죄의식.

한나라와 그 응원그룹의 가장 적극적인 책임이, 노무현파에게는 거의 한나라와 동급의 책임이,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최소한 화해의 기반 파괴 행위를 막지 못하고, 방관한 책임이 있다. 그를 아프게 기억하는 것으로 작은 속죄나마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에게 받은 것을 고마워 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에게 '평화'를 빚지고 있다. 그런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다.

정몽헌의 죽음이 지니는 의미

지금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어 가고 있다. 이미 십년 전에 우리 머리속에서 지워졌던 '전쟁'이라는 단어가 다시금 살아나 입에서 입으로 떠돌고 있을 정도로 벽에 막혀 버렸다. 수수방관하는 만만디 정책을 쓰는 미국은 물론이고, 전통적으로 북한과 혈맹관계를 유지해 온 중국까지도 북한의 강경 공세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으르렁거리고 있어 외부 환경 역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명박 무뇌 한국정부는 거론할 가치도 없다.

이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봐야 한다. 노무현 대북정책의 실패에서 연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런 대북정책의 실패가 그의 영남서자의식의 결과물이고, 영남패권체제에 순응하려 한 비겁함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쉽게 다시 키워낼 수 없는 핵심 인물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지금 정몽헌이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가 부재하는 지금과 비교할 때, 그 가치가 얼마나 귀한지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막힌 혈로를 뚫는데 남북을 오가며 가장 의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몽헌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영남패권체제'와 그에 순응한 노무현 세력에 의하여, '정치적으로 타살(요즘 유행하는 말 좀 따라 쓴다.)'되어 금강산에 누워있다.

정몽헌의 죽음과 노무현 대북정책의 실패, 그리고 영남패권체제


노무현은 오연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드러나듯이, 상대방을 지나치게 절대시했다. 우연이 아니고는 대적하기도 어려운 상대로 과대평가했다. 그의 영혼을 지배하는 영남서자의식의 발로라고 나는 평가한다. 착시다. 그들만 그처럼 거대한 벽으로 느꼈을 뿐이다. 변화의 조짐이나, 더욱 더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었지만 '그들만' 알아채지 못했다. 이런 오판에 민주세력, 통일세력이 무너진 것이다.

그의 선의를 전제한다고 하더라도(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노무현은 세력 균형에 대한 진단을 완전히 잘못 내렸고, 그런 잘못된 진단을 근거로 여러가지 알 수 없는 승부를 벌이던 끝에 이곳저곳에 파열음을 내다가 자멸했다. 민주세력, 통일세력은 형체도 알아보기 어려운 몰골로 겨우 연명만 하고 있는 처지로 전락해 버렸다.(노무현 사후의 추모 분위기에 잠깐 뜨는 듯하지만, 지금이라고 근본적으로 달라진건 없어 보인다.)

적대세력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최하의 전략을 들고 나왔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국시대에나 써먹었을 법한 고리타분하고, 우악스럽기 이를데 없는 전략이 그것이다.(최대한 선의로 봐 줄 때 이야기다.) 하지만 그가 살로 알고 잘못 내준 것은 살이 아니라 '심장'이었다.

우리가 오래도록 아프게 기억해야 할 정몽헌

정몽헌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다. 하지만 그럴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그의 역사적 공헌에 비해서 그에 대한 언급이 너무도 부족한게 현실이니까. 그가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했을지를 생각하면 아픔이 더욱 배가된다. 나는 솔직히 노무현의 죽음보다 정몽헌의 죽음이 더 억울하고, 아깝고, 슬프다.

(글에서 호칭이나 경칭을 쓰지 않고 이름만 따서 쓰고 있는데, 정몽헌씨한테만큼은 뭔가 붙여주고 싶다. 하지만 글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름만 쓰고 있다. 읽기에 거북한 분들은 양해 바란다. 물론 다른 분들에게도 공히 해당한다.)

경상도의 이름으로

주의도 환기시킬 겸 짧게 맥을 한번 짚고 넘어가자.

노무현은 경상도 표를 정벌하고 싶어 했다. 영남패권체제라는 인식은 못했다. 해체를 고민한 흔적도 없다. 그저'지역감정싸움'이라는 일차원적 인식에 머물렀다. 정치인들이 만들어 놓은 환영일 뿐이라는 일반인스러운 시각. '체제의 변혁'을 고민하지 않고, '지역 감정의 벽'을 무너뜨리자는 공자님 말씀만 되풀이 했다.

경상도 표의 가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바람에 그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기고 추구해야 할 다른 가치들을 이보다 훨씬 낮은 위치에 배치하여 서열화했다. 남북화해의 대의도, 민주주의의 전국화도 부차적으로 여겼다. 오로지 영남사랑 한길로. 이런 가치들을 희생시킨다고 해도 경상도에서의 성공만 뒤따른다면 별로 아까울게 없다고 보았음직하다. 가치의 위계와 선후가 뒤죽박죽되어 버렸다.

패권세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민주화세력, 통일세력, 반패권세력의 역량을 과소평가했다. 그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너무 지나치게 높게 쳤다. 절대시한 듯도 하다. 도끼병. '내가 아니었으면 다 무너졌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무너졌을것을 내가 살렸으니, 내가 실수해서 무너져도 본전'이라는 심리가 그의 집권기 내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시비 걸지 마.'

민주세력을 자신의 정치 도박의 판돈으로 삼아 마음껏 썼다. 아마 심리적 기저에 '내가 살렸으니 내꺼다'라는 생각이 늘 깔려 있었던 까닭에 별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도박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하챦게 여긴 배경이기도 하다. '시비 걸지 말라니까.'

경상도에서 한나라보다 더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김대중 죽이기와 민주당 헐뜯기라는 부정의 길을 택했고, 특검과 분당을 그 수단으로 썼다.(이 둘은 서로 조응한다.) 그 과정에서 평화의 대로는 막혀버렸고, 민주화세력은 와해되었다. 노무현의 머리를 온통 지배하고 있던 바로 그 경상도의 이름으로.

특검에서 시작된 노무현 대북정책의 실패

노무현 대북정책은 김대중정부의 업적을 계승해 순조롭게 이어져 갔다는게 보통 사람들의 믿음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덮어놓고 그렇게 믿어버린다. 특검이라는 일대 파란과 검찰수사, 그리고 정몽헌의 죽음까지 대 사건의 연쇄였는데도 이상하리만치 이런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한나라와 기득권 연합의 이념공세 영향인가.

하지만 돌아가는 추이를 관심을 두고 지켜봐 온 사람들은 그런 믿음이 틀렸음을 알고 있다. 계속 사업은 추진되었지만 속도가 무척이나 더뎠다. 강력한 철학적 바탕 없이 기술적인 접근에 그쳤다. 현상유지에 머물렀다. 속도와 시간, 기회와 흐름이 중요한 대북정책에서 느림보 행보는 곧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꼭 그렇게 되었다.

김대중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름까지 바꿔 다는 코메디도 연출했다. 원래 '햇볕정책'은 정책의 이름이라기 보다는 정책기조의 특징에서 연유한 별칭에 불과하다. 하지만 노무현세력은 이 구차하게도 이 용어를 '추방'하기 위해 '평화번영정책'이라는 알 수 없는 내용의 이름표를 새로 붙이고 나왔다. 그 속좁음만큼 망가져간게 남북관계였다.

한마디로 성의가 없었다.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에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는 인식 자체가 별로 없었던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냥 저냥 민주화세력에 욕만 먹지 않는 정도에서 그쳤고, 사실 어떤 때는 지금 이명박 정부가 하는 것보다 더욱 북한에 강경한 태도를 취한 적도 있었다.(1차 핵위기때가 대표적이다.) 현상유지와 교착상태, 몇차례의 위기가 번갈아 나타나던 시절이었다. 북한 역시 노무현 정부를 믿을만한 파트너로 여기지 않았다.

경상도를 향한 구애로 날려버린 귀한 것들

대북정책의 첫 단추를 특검으로 꿴 정부가 실패하지 않으면 이상했겠다. 시종일관 미국의 강경 부시에 끌려다니고, 북한의 맞대응에 허둥지둥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서 5년을 허송세월 했다. 불행은 이명박의 등장으로 더욱 광범위하게 확장되었다. 한반도정책의 주도권을 한번도 놓지 않았던 김대중 정부와는 너무도 대조되는 시간들이다. 아깝게 줄 줄 세나간 귀한 시간들.

김정일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많은 일을 처리해 두어야 했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지금 북한은 후계 문제로 대혼란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이고, 남북 화해에 눈을 돌릴 겨를도 없어 보인다. 이명박 강경 정부도 여기에 죽을 잘 맞춰주고 있다. 그만큼 미래는 어두워지고 있다.

성의를 갖고 꾸준히 밀어갔으면 도달할 수 있었을 미래와 기조가 흐트러지고 망가진채 맞이하게 될 미래는 그 질부터 다를 것이다. 노무현의 균형잡히지 않은 사고가 이끌어 온 불행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상도 환심사기 프로젝트가 달성한 알량한 성과- 영남 두석

더 기가 막힌 것은 대북정책기조를 희생하고, 민주당을 깨가면서 환심사기 공작을 펼친 끝에 얻은 성과가 고작 영남 두석이라는 점이다. 그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대신 얻은 성과라니. 노무현식 계산법으로야 호남 스무석보다 훨씬 값어치 있었을지 모르지만, 두석은 그냥 두석일 뿐이다.

특검으로 대북정책 기조를 죽이고, 정몽헌을 진짜 죽게 하고, 박지원을 감옥에 가둬서 얻은 성과. 분당기획으로 온통 민주화세력을 초토화시키고,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얻은 성과. 자기것도 아닌 것을 판돈으로 내걸고 도박을 벌인 알량한 성과가 고작 두석.

이 두가지 대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는 동안에 민주화세력의 상징적 존재인 김대중의 명예까지 형편없이 망가졌고, 아우라를 깨버렸다. 혐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느끼고 있었을 그에 대한 부채의식을 제거하고, 영남의 혐오를 해방시켜버렸다.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도록, 마음껏 혐오하고, 증오할 수 있도록.

균형감각을 지니지 않은이가 도달할 파국의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어리석은 칼춤으로 마구 베어버린 그로 인해 귀한 것들이 모조리 무너졌다. 나는 노무현을 지켜보면서, 노무현의 승부와 도박을 관찰하면서, 사고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이 후 계속 이어갑니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blog.ohmynews.com/zagnbyul)(zagnbyul.tistory.com)에 동시에 올립니다. 블로그에 들러 주세요.


덧붙이는 글 블로그(blog.ohmynews.com/zagnbyul)(zagnbyul.tistory.com)에 동시에 올립니다. 블로그에 들러 주세요.
#공존의 리더십 #정몽헌 #특검 #노무현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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