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잊어버리지 말자는 것

6·10항쟁 범국민대회에 부쳐

등록 2009.06.11 10:12수정 2009.06.1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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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촛불을 치켜든 시민들 독재를 중단하라며 촛불을 치켜든 대전시민들

촛불을 치켜든 시민들 독재를 중단하라며 촛불을 치켜든 대전시민들 ⓒ 이래헌


사람들이 광장을 찾은 까닭

6·10 항쟁을 기념하는 범국민 대회가 열리는 서대전 시민광장에 꽤 많은 군중이 모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꽤 많다고는 하지만 드넓은 광장이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은 군중이 몰려든 것은 아니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기도 하겠지만 얼마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추모 열기가 이 땅의 민주주의 수호 열기로 이어지기를 희망한 만큼 보다 많은 시민들이 광장을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해 약간은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광장을 찾은 시민들의 다양한 면면이었다. 이제는 기성세대가 된 6월 항쟁의 주역들은 물론이며, 교복 입은 학생들과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 연인과 노부부들, 이제 이 땅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깃발을 들어야할 젊은 대학생들과 넥타이 부대까지 많은 시민이 모여들어 마치 86년 6월 항쟁 당시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만 같았다.

a 풍물놀이 행사시작전 풍물놀이패가 분위기를 돋구고 있다.

풍물놀이 행사시작전 풍물놀이패가 분위기를 돋구고 있다. ⓒ 이래헌


a 촛불을 밝힌 부녀 아이가 행복하기 위해서도 민주주주의 가치는 지켜져야 한다.

촛불을 밝힌 부녀 아이가 행복하기 위해서도 민주주주의 가치는 지켜져야 한다. ⓒ 이래헌


기대만큼 많은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고 했지만, 광장에는 상당히 많은 시민이 몰려들었다. 귀가를 서둘러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광장을 찾는 까닭은 그만큼 현실에 대해 갑갑함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다.

서민경제를 살리겠다고 하기에 지지해 줬더니 4대강 유역에서 삽질만 하는 정권, 일자리 400만 개를 창출하겠다더니 멀쩡한 직장인조차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정권,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걱정조차하지 않았던 전쟁의 공포까지 느끼게 하는 정권, 언론 장악을 '개혁'이라고 말하는 정권, 국세청과 검찰을 동원해 전 대통령의 주변을 뒤지고 급기야는 죽음으로 내 몬 파렴치한 권력에 불만과 갑갑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20여 년 전 뜨거운 아스팔트에 피와 눈물을 뿌리며 민주주의를 쟁취한 민주시민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다시 만났다. 같은 색의 분노를 느끼고 같은 종류의 갑갑함을 느끼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함께 부도덕한 권력의 독재와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광장을 찾은 것이다.


a 집회에 참가한 직장인들 이제는 이들이 주역이다.

집회에 참가한 직장인들 이제는 이들이 주역이다. ⓒ 이래헌


쉽게 잊어버리지 말자는 것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시민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품고 있겠지만, 적어도 독재 반대와 민주주의 수호 그리고 반 한나라당 연대란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 속내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가치 수호나 독재 타도 같은 큰 가치에 동의하면서도, 내면에서는 진보 혹은 중도, 친노 또는 비노, 호남 또는 수도권 등의 입지에 따라 각기 다른 그림을 그려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의에 대한 울분이 아무리 커도 힘을 하나로 결집할 수 없다면 울분이나 분노는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다.

광장으로 몰리는 민심을 하나의 커다란 힘으로 결집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치권이나 지식사회의 몫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오늘날의 분노와 정의에 대한 열정을 쉽게 망각하지 않는 것이다. 너무 쉽게 잊어버려 바보 취급이나 당하는 멍청한 일은 이제는 정말 그만했으면 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6.10항쟁 #범국민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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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 오디오 사진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다양성의 존중, 표현의 자유 억압은 절대 못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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